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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그 시대의 저항, 스틸랴기
분류지역문화
국가 러시아
날짜2020-07-16
조회수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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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말, 가수 윤복희는 한국 최초로 대중사회에 미니스커트를 소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한국은 여자가 다리를 드러낸다는 것 자체가 터부시되는 사회였고, 언론에서도 미니스커트를 입은 윤복희에 대한 비난을 감추지 않았다. 날달걀 투척 사건이 있을 만큼 상당한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어느덧 미니스커트는 한국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어버렸다. 이렇듯 기성 문화에 다른 문화를 들여와 대중들에게 선보인다는 것은 날카로운 비난과 많은 부작용을 감내해야만 한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느 국가든 이러한 과정을 겪었을 터... 그렇다면 이와 관련하여 사회주의 국가였던 러시아에서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20세기 소비에트 시기에 국민에 대한 많은 제한과 압력이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국민 통합과 획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경제뿐만 아니라 일상의 삶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국가의 통제 아래 이루어졌다. 그런데 어디든 한쪽에서 강한 압력이 들어오면 다른 한쪽에서는 터져버리기 마련이다. 공동주거지 코무날카(Коммуналка)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같은 옷을 입고 서로를 감시하는 개성과 자유가 제한된 사회는 인간의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했고, 결국 규범과 질서로 무장한 소비에트의 획일적 문화에 저항하는 젊은이들이 생겨났다.

194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까지 소비에트 대도시를 중심으로 유행한 젊은이들의 하위문화(Subculture) 혹은 반문화(counterculture)인 ‘스틸랴기’(Стиляги)가 바로 그러했다. 스틸랴기들은 정치적으로는 대부분 무관심했지만, 소비에트 규범에는 부정적이거나 중립적이었다. 이들은 소비에트 사회의 정형화된 삶에 대한 저항으로 획일화된 옷이 아닌 밝고 다양한 색상의 옷을 입고 자신들만의 슬랭을 사용했으며, 재즈와 같이 외국에서 들어온 음악과 춤을 즐겼다. 



<1950년대 소비에트 스틸랴기들의 모습>

이런 문화 현상이 나타나게 된 주된 이유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의 국제사회 접촉이 늘어난 것에 기인한다. 점차 소비에트 규범을 따르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으며, 특히 젊은이들에게 스틸랴기 문화는 전후 시기의 빈곤과 가난으로부터의 심리적 탈출구였다. 전쟁 이후 유입되기 시작한 철 지난 유행의 외국 물품들은 스틸랴기들의 옷장 속 ‘필수템’이 되었는데, 대체로 통이 넓은 바지와 챙이 넓은 모자, 헐렁한 재킷, 알록달록한 양말과 넥타이가 특징적이었다.


<러시아 영화 ‘스틸랴기(2008)’에서 재현한 패션 스타일>

‘스틸랴기’라는 명칭은 잡지 <크로코딜(Крокодил)>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고, 소비에트의 ‘테디보이 모방자’라는 의미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1949년 <크로코딜>에 실린 벨랴예프(Д. Беляев)의 칼럼에 따르면, 학교 파티에서 우스꽝스럽게 ‘외국식으로’ 차려입고, 허영심에 가득 찬 젊은이들이 ‘외국식으로’ 능숙하게 춤추는 모습을 보여 다른 학생들에게 혐오감을 유발하고 비웃음을 받았다고 한다. 




<1950년대 유럽의 ‘테디보이’들>

소비에트의 ‘회색 군중들’ 사이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스틸랴기들은 밝고 화려한 패션뿐만 아니라 사용하는 언어까지 차별을 두어 자신들을 대중으로부터 분리했다. 일반적으로 남자, 여자를 지칭하는 ‘추박, 추비하’(Чувак, Чувиха)라는 단어로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을 지칭했으며, 아파트를 ‘크바르티라’(Квартира) 대신에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에서 전통 가옥을 뜻하는 ‘하타’(Хата)라는 단어로 대체했다. 이처럼 본 단어의 의미와 다르게 사용하는 단어 외에도 양말을 뜻하는 ‘속스’(Соксы), 돈을 뜻하는 ‘마뉴쉬키’(Манюшки), 아버지를 지칭하는 ‘파제르’(Фазер) 등 영어에서 유래된 외래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예상대로 소비에트 시기에 스틸랴기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었다. 1950년대에는 끊임없이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친사회주의자들은 길거리에서 야유와 조롱을 보내거나, 심지어 강제로 옷을 벗겨버리고 찢거나 머리카락을 자르는 등의 폭력적인 행위를 가하기도 했다.




<영화 ‘스틸랴기(2008)’에서 재현한 스틸랴기를 단속하는 학생들과 단속 장면>

1960년대 중반에 이르면 스틸랴기 운동이 다소 둔화하지만, 대신에 이들의 스타일과 생활 모습이 자주 캐리커처로 그려져 묘사되었다. 잡지 <크로코딜>에서도 이들의 생활상을 풍자하는 캐리커처를 1980년대까지도 자주 다루었는데, 이는 스틸랴기가 反소비에트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회자하는 것을 보아 스틸랴기에 대한 관심이 일시적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1974년 크로코딜의 스틸랴기() / 허수아비로 묘사된 스틸랴기(右)>

한편 스틸랴기는 소비에트 시대부터 최근까지 문학과 연극, 특히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특히 2008년에 개봉한 뮤지컬 영화 <스틸랴기>는 공식적으로 1억 2천만 명의 관객 수를 기록하는 히트작이 되었다. 또한, 2014년 소치올림픽 개막식에서는 소비에트 시대의 문화와 업적을 소개하는 목적으로 밝은 옷을 입고 자유롭게 춤을 추는 스틸랴기를 등장시키기도 했다. 이는 ‘혐오감을 유발하고 비웃음의 대상이었던 허영심 가득 찬 젊은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넘어, 이제 한 세대를 관통한 문화 현상으로 자리매김하는 새로운 시선이 형성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비록 스틸랴기 운동이 과격한 시위를 동반한 정치적 운동은 아니었지만, 인터넷의 발달과 국제화로 인해서 모든 것이 급격하게 변하고 공유되는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고려해 본다면, 과도기적 상황에 놓인 러시아에 출현할 ‘21세기형 스틸랴기’는 어떤 모습일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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