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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소치 동계올림픽에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을 오버랩시키다
분류기타
국가 러시아
날짜2020-05-15
조회수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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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대한민국 스포츠 팬들의 분노를 들끓게 한 장본인이 있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러시아의 피겨스케이팅 선수 소트니코바였다. 분노의 발원지는 바로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 현장. 피겨스케이팅 여자 부문 메달 순위를 놓고 대한민국 내에서 원성이 들끓은 이유는 ‘투풋 랜딩’은 기본이요, 회전수가 한참 부족한 트리플 점프에도 불구하고, 도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홈그라운드의 혜택을 듬뿍 받은 러시아의 소트니코바가 그야말로 여자 피겨스케이팅 부문 금메달을 ‘채갔기’ 때문이었다. 피겨스케이팅을 잘 모르는 일반 시청자가 보더라도 김연아 선수의 우아한 손동작과 새털같이 가벼운 높은 점프, 그리고 빠르고 완전한 회전력에 비해 소트니코바의 몸놀림은 다소 육중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게다가 계속해서 눈에 밟히는 소트니코바의 잘못된 착지와 불안한 회전은 확실히 그가 한 수 아래의 선수, 아니 한참 아래의 하수라는 것을 금세 드러나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바로 이 장면, 소치올림픽에서의 편파 판정으로 아쉽게 금메달을 놓친 김연아 선수의 의연한 모습과 오버랩되는 러시아 선수가 있었으니, 그는 다름 아닌 2002년에 솔트레이트시티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스케이팅 부문에 출전했던 ‘이리나 슬루츠카야’이다.

이리나 슬루츠카야는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개최된 동계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다. 당시 금메달을 차지한 선수는 미국의 사라 휴즈로 올림픽 이전에 개최된 각종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최고 점수가 늘 3위에 머물며, 그 이상의 성적을 내지 못하던 선수였다. 2002년 올림픽 당시, 여자 피겨스케이팅 부문 메달권 안에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됐던 선수들은 중국계 미국 선수 미셸 콴, 우크라이나계 어머니를 둔 미국 선수 사샤 코헨, 그리고 러시아의 이리나 슬루츠카야였다.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당시 사샤 코헨은 마르고 작은 체구의 강점을 최대화한 빠른 회전과 점프를 내세우며 출전했지만, 전설의 미셸 콴과 이리나 슬루츠카야에 비하면 아직 한참 더 성장해야 할 꼬꼬마 아기였다. 사샤 코헨의 경기를 지켜보면서 ‘무슨 팽이도 아니고 조그만 아이가 폴짝폴짝 뛰면서 뱅글뱅글 참 빨리도 돈다’라는 생각이 연신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기술은 습득했으나, 그에 상응하는 예술성을 겸비하려면 아직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이는 특히나 당시 금메달 후보였던 미셸 콴이나 이리나 슬루츠카야의 회전이나 점프를 사샤 코헨의 것과 비교해보면 확연히 드러났는데, 사샤 코헨은 점프도 잘 뛰고 회전도 빨랐지만 미셸 콴의 우아함과 이리나 슬루츠카야의 파워를 따라잡기엔 아직 역부족이었다. 이들의 비교는 마치 시니어와 주니어 선수를 비교하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사샤 코헨은 장래가 매우 기대되지만, 아직은 좀 더 성장해야 할 어린 선수였다. 실제로 사샤 코헨이 메달권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2002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부터이다. 하지만 당시 첫 금메달을 수상하고, 이후 올림픽을 포함한 모든 국제대회에서 만년 2위 은메달에 머무는 안타까운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인성이 좋고 귀여운 외모와 기술력으로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사샤 코헨은 ‘폭스스포츠’에서 선정한 ‘아름다운 여성 스포츠 스타’로 선정되기도 했다. 여하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사샤 코헨은 나이에 비해 기량이 뛰어난 선수임은 분명했지만, 메달권에 들어가기엔 살짝 부족해 보였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사샤 코헨>
 

사샤 코헨에 비해 사라 휴즈는 이미 세계 대회에서 메달권 안에 들어오는 선수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이전에 열린 1998년, 1999년 주니어 세계선수권 및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연속 은메달을 차지했고, 2000년, 2001년에도 ‘그랑프리 파이널’과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줄곧 동메달로 입상했다. 다시 말하자면, 사라 휴즈는 이목을 크게 끌 만한 화려한 개인기가 있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그야말로 ‘꾸준히’ 성적을 내고 그것을 유지하는 선수였던 것이다. 그리고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서 바로 이 ‘꾸준함’의 힘, 그리고 모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난이도가 높은 기술을 구사하기보다는, 난이도는 다소 떨어지더라도 정확한 기술을 구사하겠다는 전략이 제대로 맞아떨어지면서 사라 휴즈가 금메달리스트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후보로 거론되었던 미셸 콴은 쇼트 프로그램에서 최고 점수를 받았지만, 프리 프로그램에서 트리플 회전 실수를 범하는 바람에, 프리 점수만 놓고 보면 3위로 내려앉은 상황이었다. 결국 이로 인해 쇼트 프로그램에서 4위를 차지한 사라 휴즈가 프리 경기에서는 1위로 올라가는 이변(?)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리나 슬루츠카야는 쇼트와 프리에서 모두 2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예술은 미셸, 기술은 이리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두 선수의 프로그램 운영방식과 소위 ‘잘하는 것’에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이 부분에서 다시 한번 오버랩되는 장면이 있으니 바로 한국의 김연아 선수와 일본의 아사다 마오 선수이다. 두 선수 역시 미셸 콴과 이리나 슬루츠카야처럼 예술과 기술로 맞서던 라이벌이 아니었던가. 아사다 마오가 트리플 악셀을 화려하게 성공시키면서 한때 주목받았던 것처럼, 이리나 슬루츠카야는 2000년 1월에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 경기에서 여자 싱글 부문에서 처음으로 트리플 러츠와 트리플 룹 점프를 연속 성공시키는 기염을 토하면서, 자신에 앞서 늘 1위를 차지했던 미셸 콴을 누르고 마침내 종합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아사다 마오가 트리플 악셀을 매번 성공하지 못했던 것처럼, 이리나 슬루츠카야 역시 난이도 높은 기술을 자주 구사했지만, 정확도가 떨어지거나 혹은 실수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꽤 잦아서 정확한 기술 구사 여부가 늘 성패를 가르는 변수로 작용하곤 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여자 피겨스케이팅 부문 메달리스트들>
 

그리고 이 세 선수, 미셸 콴과 이리나 슬루츠카야, 사라 휴즈는 곧 2000년도와 2001년도에 개최된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사이좋게 1, 2, 3위를 연속적으로 나누어 가지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2000년도와 2001년도에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모두 이리나 슬루츠카야가 1위를, 미셸 콴이 2위, 그리고 3위는 사라 휴즈가 차지했다는 점이다. 특히 2001년에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의 경우,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이 개최되기 바로 직전인 2001년도 12월에 열렸기에 그 의미가 남달랐다. 올림픽 개최 불과 2달여를 남겨놓고 열린 피겨스케이팅 부문 마지막 국제 경기였기에 러시아인들이 거는 기대가 상당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작년에도 동일한 경기에서 3명의 선수가 똑같은 성적을 기록하면서 나란히 1, 2, 3위를 차지한지라, 아무래도 그 기록이 올림픽에서도 재현될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되면 이리나 슬루츠카야가 금메달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내심 기대에 차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솔트레이크시티의 결과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쪽으로 흘러갔다. 쇼트 프로그램에서 완벽에 가까운 멋진 경기를 보여줬던 미셸 콴이 프리 프로그램 후반부에서 시도한 회전 후 착지 시 손을 짚고 잠깐 넘어지는 장면을 연출하면서 순위의 지각변동이 감지되기 시작한 것이다. 미셸 콴의 실수에 덕을 본 선수는 다름 아닌 사라 휴즈였다. 미셸 콴에 이어서 경기를 하게 된 사라 휴즈는 쇼트 프로그램에서 4위를 차지했었지만 큰 실수 없이 프리 프로그램을 무난하게 소화하게 되면서 돌연 1위로 올라서게 된다.

당시 피겨스케이팅 점수 산출방식은 지금과 다소 차이가 있었는데, 쇼트 프로그램의 점수는 기술점수와 예술점수 6점을 각각 부여하고, 이를 토대로 다시 투표를 통해 순위를 결정, 쇼트 프로그램에는 순위에 0.5를 곱하여 최종 점수를 내고, 프리 프로그램은 순위 그 자체가 최종 점수가 되는 다소 복잡미묘한 방식이 사용되었다. 복잡한 산출 방식에 대한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이 점수 산출방식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최종 점수 산출 시 심판의 ‘주관성’이 상당 부분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미셸 콴의 안타까운 실수 이후 프리 프로그램 순위는 1위 사라 휴즈, 2위 미셸 콴, 3위는 사샤 코헨의 순으로 정해졌고, 마지막으로 경기를 앞둔 이리나 슬루츠카야의 연기에 따라 최종 메달의 색이 결정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드디어 이리나 슬루츠카야의 프리 프로그램 연기 시간이 다가왔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프리 스케이팅을 선보이는 이리나 슬루츠카야>

푸치니의 토스카 선율에 따라 연기를 시작한 슬루츠카야는 이미 초반부에서 트리플 살코에 이어서 뛴 더블 룹에서 착지 실수를 연출했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도 트리플 플립 이후 기우뚱하면서 순간 넘어질 뻔한 장면을 연출하게 되는데, 당시 러시아 해설자들 역시 “아, 넘어지지 않았어요, 서 있네요!”라고 말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일단 실수의 횟수로만 따져도 미셸 콴은 1번, 슬루츠카야는 2번이었고, 미셸 콴의 경우 완전히 넘어지거나 중심이 무너져서 흔들린 것이 아니라, 팔꿈치로 아이스링크를 살짝 짚은 뒤 바로 연결 동작을 연출했기에, 살짝 과장해서 말하자면, 마치 동작 중 일부인 것으로 볼 수도 있는 정도의 실수였다. 물론 슬루츠카야 역시 첫 번째 실수에서는 회전수가 살짝 부족한 상태로 불안정하게 착지했고, 두 번째 실수에서는 중심이 크게 흔들리면서 기우뚱하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좋은 연기를 펼쳤다. 개인적으로 이리나 슬루츠카야를 매우 좋아했고, 또 그녀의 금메달 획득을 적극적으로 응원했지만, 경기가 끝난 후 아무래도 이번에는 슬루츠카야가 미셸 콴에게 밀리겠다 싶었다.

그런데 결과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치달았다. 쇼트와 프리 프로그램 결과를 합산하여 최종 점수를 산출한 결과, 사라 휴즈 1위, 이리나 슬루츠카야 2위, 미셸 콴 3위로 예상 순위가 뒤바뀐 것이다. 미셸 콴은 물론이요, 슬루츠카야에 대한 판정을 놓고 심사단 뇌물 수수 가능성과 외부 압력부터 점수산출방식의 문제 제기에 이르기까지 경기 후 여자 피겨스케이팅 결과를 두고 여러 가지 시비가 많이 일어났다. 결국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이후 피겨스케이팅 점수 산출방식은 변경되었지만, 솔트레이크시티의 금메달 순위는 변경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슬루츠카야의 은메달도 안타깝지만, 기술과 예술적 측면만 놓고 볼 때 결코 밀리지 않는 연기를 보여줬던 미셸 콴의 동메달도 안타깝다.

슬루츠카야의 쇼트 프로그램 역시 만만치 않은 경쟁력을 보여줬지만, 아무래도 미셸 콴의 우아함과 여유로운 착지를 따라잡기엔 2%가 부족해 보였다. 사실 쇼트 프로그램을 제외한 프리 프로그램만 놓고 보더라도, 개인적으로는 두 선수 모두 작은 실수가 있긴 했지만, 미셸 콴에게 1위를, 이리나에게 2위를 주고 싶다. 쇼트 프로그램만 놓고 봤을 때 미셸 콴의 연기는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었다. 일본 해설자들은 연신 “스고이!! 스고이!!”를 외쳐댔고, 미국 해설자들은 “고저스~~ 고저스~~”를 연발했다. 러시아 해설자 버전 영상도 찾아보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찾지 못했다.

사라 휴즈의 경우 그야말로 ‘무난하게’ 실수 없는 연기를 펼쳤다. 기존의 ‘그랑프리 파이널’ 경기에서 늘 그랬듯이, 사라 휴즈는 크게 눈길을 끌만 한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지 않았지만,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연기를 펼쳤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미셸 콴이 팔꿈치로 링크를 짚는 실수만 하지 않았더라도, 사라 휴즈의 메달 색은 바뀌었을 것이다. 사라 휴즈는 예술성은 떨어지지만 ‘클린’한 연기로 금메달을 획득했고, 미셸 콴은 예술성이 겸비된 ‘클린’한 연기를 펼쳤지만, 중간에 작은 오점을 하나 남기는 바람에, 가장 뛰어난 연기를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동메달로 미끄러졌으며, 이리나 슬루츠카야는 약간의 실수가 있었지만, 기술점수로 이를 극복하여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피겨스케이팅은 기술력도 평가의 대상이지만 예술성도 그 평가의 대상이기에, 늘 판정에 대한 시비가 붙기 마련이다. 선수들 역시 평가와 판정을 대비하여 어느 것에 더 집중하는 것이 자신에게 더 유리한지 고민한다고 한다. 모험을 건 난이도 높은 기술을 구사할 것인가, 혹은 난이도는 약간 낮아도 모험없이 클린한 연기에 집중할 것인가. 평가를 담당하는 판정단은 물론 관객들 역시 선수들의 연기를 바라보는데 있어서 누군가는 예술성을 더 높이 사기도, 또 누군가는 기술력을 더 높이 사기도 한다. 그만큼 피겨스케이팅은 주관성이 많이 개입되는 스포츠이기에, 선수들은 늘 판정의 시비를 잠재우기 위한 ‘완벽한’ 연기를 펼치기 위해 노력한다.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갈라쇼를 펼치는 미셸 콴>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미셸 콴은 갈라쇼에서 은은하게 반짝이는 골드 빛 의상을 입고 나와서 그야말로 ‘물 흐르는듯한’ 부드러운 연기를 펼쳤고, 아무래도 은퇴 이전에 출전한 마지막 올림픽을 두고 여러 생각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듯, 연기를 마친 후 살짝 눈물을 보이면서 관객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이는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을 찡하게 만들었다. 슬루츠카야는 경쾌한 붉은색이 감도는 카우보이 복장으로 등장하여 그녀 특유의 장난스러우면서도 천진난만한 일명 전매특허 ‘보조개 쏙’ 미소를 연신 지어대면서 빠르고 힘찬 스케이팅을 선보였다. 또한 프리 스케이팅에서 나왔던 점프 실수를 만회하기라도 하듯, 멋진 트리플 점프를 과감하게 성공시키면서 “역시 슬루츠카야!!”라는 관객들의 탄성과 환호를 자아냈다.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갈라쇼에 참가한 슬루츠카야(좌)와 사라 휴즈(우)>

 
그런데 이상하게 재방송까지 열심히 시청했던 갈라쇼 중 정작 금메달리스트의 갈라쇼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이번에 다시 찾아봤다. 다시 찾아본 영상에서 확인해 보니, 사라 휴즈는 아마도 자신의 최고 기량을 끌어올렸던 프리 스케이팅에서의 ‘좋은 기운’을 이어가고 싶은 듯, 프리 경기에서 착용했던 의상을 그대로 입은 채 꽃다발을 가슴에 안은 채 등장했다. 그리고 2001년 ‘911 테러’ 희생자들에게 바치는 연기를 펼쳤다. ‘911 테러’ 희생자에게 바치는 갈라쇼였으면 나름 특별한 의미가 있으니 기억이 날만도 한데, 미셸 콴과 슬루츠카야의 갈라쇼와 달리 기억 속에서 가물거리는 걸 보면, 확실히 사라 휴즈의 연기는 앞선 두 명의 선수들에 비해 큰 감동을 불러일으키진 못했던 것 같다. 실제로 이번에 다시 확인해 보니, 그녀의 공연은 딱히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그냥 무난한 연기로 마무리됐다. 유일한 특징이라면 아마도 갈라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무대 위에 울려 퍼진 ‘나는 자랑스러운 미국인입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뉴요커입니다...’라는 멘트와 더불어 911 테러 희생자들에게 자신의 공연을 바친다고 하는 헌정사 정도랄까...

이리나 슬루츠카야가 아쉽게 놓친 금메달은 이후 러시아에서 자체적으로 수여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리나 스스로도 인터뷰 자리에서 “나는 내가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할 정도로 판정의 불공평함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갈라쇼에서는 메달의 색깔에 개의치 않고, 모두가 축제의 피날레를 장식하듯 즐거운 표정으로 무대를 즐기는 것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특히 슬루츠카야의 ‘아기아기한’ 천진한 미소와 더불어 경쾌하게 흐르는 음악, 그리고 그녀의 통통 튀는 동작은 완벽한 삼위일체를 이루면서 공연을 지켜보는 내내 나도 함께 덩달아 미소짓게 했다. 이렇듯 약간의 아쉬움과 판정시비가 살짝 일긴 했지만, 그래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서 여자 피겨스케이팅 부문 금, 은, 동을 차지한 선수들이 하나같이 경기 현장은 물론 갈라쇼에 이르기까지 다들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최고의 무대를 보여줬기에, 그들의 공연은 지금도 여전히 피겨 명장면으로 회자되곤 한다.

동일하게 판정시비가 있었던, 하지만 그 정도에 있어서 다소 수위가 높았던(!)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갈라쇼에서는 두 명의 선수가 펼친 연기가 유독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다들 예상하시다시피, 그 주인공은 바로 대한민국의 김연아 선수와 러시아의 소트니코바 선수이다. 당시 소트니코바 선수는 소위 ‘연두벌레의 꿈’으로 패러디되곤 하는 상당히 이상하고도 어설픈 깃발춤을 선보이며, 그렇지 않아도 편파 판정으로 인해 좋지 않았던 여론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녀는 이상한 연두색 깃발 두 개를 들고나와서 이리저리 휘젓더니 한동안 깃발이 얼굴에 휘감겨 버둥거렸다. 그러더니 엉킨 깃발의 한쪽 끝을 스스로 즈려밟고 잠시 당황하는가 싶더니, 종국에는 깃발을 내팽개친 채 아이스링크를 뒹구는 그야말로 ‘해괴한’ 춤사위를 연출했다.

한편 깨끗한 푸른 물빛 의상을 차려입고 소치 올리픽 갈라쇼에 등장한 우리의 김연아 선수는 비틀즈의 ‘이매진’ 선율에 맞춰서 평소와 다름없이 물 흐르는듯한 완벽한 연기를 보여주며, ‘링크 위의 여제’답게 우아하고 여유로움이 넘치는 몸짓으로 팬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하지만 솔트레이크시티에서의 미셸 콴과 달리 우리의 김연아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 역시 어쩌면 소치올림픽이 은퇴 전에 참가하는 마지막 올림픽일 수도 있고, 금메달을 놓친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연아 선수는 나이에 걸맞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무대를 내려갔다. 메달 시상식에서도 그녀는 내내 그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고,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는 없다’라는 표정처럼 읽혔다.

 

<소치 동계올림픽 갈라쇼에서 연기를 펼치는 김연아 선수>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당시 러시아인들은 이리나 슬루츠카야가 “금메달을 강탈당했다”라는 표현을 쓰며 편파 판정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한 바 있다. 개인적으로 보기엔, 당시 피겨스케이팅 편파 판정을 놓고 여자 싱글 부문보다 페어 스케이팅 부문 관련 시비가 워낙 강하게 논의되고 있었기에, 이리나 슬루츠카야 관련 판정시비가 다소 묻혀버린 경향도 있다. 하지만 마치 동일한 상황이 러시아에서 전개되면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것 같이 분개했던 이들이, 12년 후 소치에서 유사한 상황을 만들어 낸 것에 대해서는 유감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 없다.

이제 2년여 후면 베이징에서 다시 동계올림픽이 개최된다. 중국에서의 피겨스케이팅 판정은 좀 나으려나... 걱정 반 기대 반의 마음과 더불어, 얼마 전 ‘4대륙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쉽’에서 트리플 악셀과 트리플 토룹, 트리플 살코를 연이어 멋지게 성공시키면서 은메달을 획득, 스케이팅 속도와 회전력에서 월등한 모습을 선보이며 대한민국 피겨스케이팅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유영 선수가 모쪼록 다음 올림픽에서는 편파 판정에 휘둘릴 틈을 아예 주지 않는 ‘완벽한’ 기술력과 예술성으로 김연아 선수에 이어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 할 선수로 우뚝 서 주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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