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K(인문한국) 사업단 홈페이지

HK(인문한국) 사업단

웹진 문화로(文化路) 내용 시작

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역사와 미디어의 만남, 러시아 - 나의 이야기
분류대중문화
국가 러시아
날짜2020-05-15
조회수583
첨부파일

러시아 역사에 관한 서적을 읽다 보면 책을 펼 때마다 낯설고 처음 읽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역사적 인물들의 이름과 지명들을 기억하고 그 흐름을 읽기 위해선 생각보다, 적어도 한국사를 익힐 때보단, 더 많은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듯하다. 그래서 종종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역사를 활자로 접하는 것보다 미디어 영상물로 접하게 된다면 조금 더 쉽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획의도였는지는 몰라도 러시아에는 이미 멀티미디어 역사박물관이 운영되고 있었다. 역사는 고리타분하고 지루하다는 나의 편견을 깨는 곳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유레카! 문화가 미디어와 접목하고, 이것이 문화기술이 되어 산업 전반에 활용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그런데 역사와 미디어기술의 융합이라니 그야말로 ‘과거’와 ‘현대’의 만남 아닌가?! 그 모습이 사뭇 궁금해졌다.

멀티미디어 역사공원 또는 역사박물관(박물관의 형태를 띠지만 공식적으로는 ‘멀티미디어 역사공원 Мультимедийный исторический парк’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의 시작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부터 1000년이 넘는 러시아 역사 전체를 다룬 상설 전시의 형태는 아니었다. 모스크바에 위치한 ‘마네쥐(Манеж)’ 전시장에서 민족화합의 날인 11월 4일부터 24일까지 <로마노프, 나의 역사>라는 단일 주제로 무료 전시회가 진행되었다. 이 전시는 2013년 당시 로마노프 왕조 400주년을 맞이하여 모스크바 시정부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 정교회 문화담당 기관(Патриарший совет по культуре)이 준비한 행사였다. 이에 러시아의 역사학자들이 국가기록보관소의 실증자료들을 바탕으로 전시내용을 구성하고, 디자이너, 예술가, 영화감독, 컴퓨터 그래픽 전문가들은 전시의 기술적인 부분을 담당하였다.




<모스크바 마네쥐에서 열렸던 '로마노프 왕조' 전시 포스터 속 역사인물들이 흡사 대서사시 판타지 영화 주인공 같다>

 

전시회는 러시아인이 공유하고 있는 공통된 역사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고 로마노프 왕조를 비롯한 역사적 인물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개막을 앞두고 모스크바 및 전 러시아 총대주교 키릴(Патриарх Кирилл Московский и всея Руси, 이하 모스크바 총대주교)은 “군주제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에는 온도차가 있지만 로마노프 왕조가 러시아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으며, 역사를 분석하고 국가를 이끈 사람들의 노고를 기억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을 사실”이라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로마노프 가의 통치기간 동안 러시아 제국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이 시기에는 시베리아와 극동 영토 흡수와 북해 항로 발견,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새로운 수도 이전 및 설립, 나폴레옹 부대와의 전쟁과 승리, 농노제 폐지, 산업혁명 등 오늘날까지 러시아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역사적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다. 러시아 문화예술 역시 '황금기(Золотой век)'라 일컬어지는 부흥기를 보내며 당시 많은 문인들과 예술가들의 다양한 창작물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리아 노보스티(РИА Новости) 통신지에 따르면 20일 동안 무려 30만 명의 관람객이 전시회를 방문했다고 한다. 민족화합의 날이라는 기념일이 주는 역사적인 분위기와 무료 관람에 힘입은 듯 하다. 이듬해인 2014년에는 <류릭 왕조(Рюриковичи)>, 2015년에는 <20세기. 1917-1945. 대격동에서 대승리로(От великих потрясений к Великой Победе 1914 - 1945)>, 2016년에는 <러시아-나의 이야기 1945-2016(Россия - Моя история 1945-2016)> 그리고 2017년에는 <미래를 향해 나아갔던 러시아(Россия, устремленная в будущее)>라는 주제로 전시는 매해 11월 4일에 시작되었고 약 20여 일 동안 진행되었다. 관람객들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역사의 조각조각들이 시대순으로 한시적으로나마 볼 수 있었다.



<멀티미디어 역사공원 개막일에 전시관을 둘러보는 모스크바 시장 세르게이 소뱌닌과 모스크바 총대주교 키릴>
(출처: 모스크바 시 정부 사이트)

이렇게 파편적으로 이어져 오던 전시가 한 데 모여 하나의 역사 파노라마를 완성시키기에 이른다. 2015년 12월 말 <류릭 왕조>와 <로마노프 왕조> 전을 토대로 모스크바 내 전시단지인 베데엔하(ВДНХ) №57 파빌리온에서 <러시아 - 나의 이야기>라는 멀티미디어 박물관으로 거듭났다. 후속 전시였던 <20세기. 1917-1945. 대격동에서 대승리로>와 <러시아 - 나의 이야기 1945-2016>가 <러시아-나의 이야기 1914-2017>라는 하나의 주제로 합쳐지며 드디어 러시아 역사 완전체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현재 멀티미디어 역사공원 <러시아 - 나의 이야기>는 '류릭 왕조 862-1598', '로마노프 왕조 1613-1917', '러시아 - 나의 이야기 1914-2017' 이렇게 총 3개의 전시관으로 구성되어있다. 역사공원 조성에 역사학자와 기술 및 디자인 전문가들을 포함하여 2000명 이 넘는 인력이 투여되었다. 전시장에는 2D 영상을 3차원 실제 공간에 재현하는 프로젝션 매핑 기술이 적용된 전시물들과 더불어 4000미터에 달하는 전시장 코스, 20여 미터에 달하는 와이드스크린, 원형 시네마 홀, 152개의 멀티미디어 관 및 100여 개의 전시 부스와 2750여 개의 일러스트레이션이 관람객을 맞고 있다. 곧잘 인용되는 유명인들의 문구들과 함께 잘 알려져 있지않던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들도 소개돼 있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관람에 단비가 되어주고 있다.





<전시관 백마로 꼽히는 원형 시네마 홀에 투영된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성 삼위일체'(위)와
인터렉티브 기능을 활용한 '류릭 왕조' 전시물(아래)> (출처: 리아노보스티)

 

류릭 왕조에 관한 전시관에는 고대도시들의 형성, 그리스정교의 수용, 200년 간 이어져 온 타타르족의 지배, 모스크바의 팽창 등 국가의 탄생과 관련된 주제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 다음 전시관은 로마노프 왕조 통치 300여 년 동안의 대내외적 역사를 다룬다. 극동과 남부지역으로의 영토확장, 나폴레옹 전에서의 승리와 더불어 문화, 과학, 기술 및 산업 등의 발전상도 보여준다. ‘현대사’ 관은 두 번의 세계대전, 세 번의 혁명 그리고 그에 따른 사회의 변화상을 조명하며 문화·예술·과학 분야에서의 발자취를 103년의 연대기 형식으로 펼쳐놓았다.

베데엔하 №57 파빌리온 입구로 들어가면 입장권을 살 수 있는 매표소가 있다. 매표소 옆으로 무인 발권기가 설치되어 있어 표를 사는데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2020년 3월 현재 50% 인하된 가격인 약 5천원(250루블)로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다. 그리고 점심시간 이후인 12시부터 매시간마다 박물관 견학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어 큐레이터의 설명과 함께 생생한 역사체험을 선사하고 있다. 박물관 견학은 '러시아 - 나의 역사' 사이트를 통해서도 신청할 수 있어 좀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오디오 가이드도 배치돼 있어 시청각적으로 전시를 즐길 수도 있다. '러시아 - 나의 역사'라는 모바일 앱도 있어 박물관 관람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박물관에 가지 않아도 러시아 역사 전반을 훑어볼 수 있다. 해당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총 3가지 테마, 즉 '류릭 왕조', '어린이용 버전 류릭 왕조', '로마노프 왕조'에 대한 짤막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아이폰 OS에서만 구동 가능하다.

<러시아 - 나의 역사> 박물관은 모스크바뿐만 아니라 러시아 방방곡곡에 자리 잡고 있다. 2017년 모스크바에서 통합된 전시관으로 첫 선을 보인 뒤 우파(Уфа), 니즈니 노브고로드(Нижний Новгород), 유즈노사할린스크(Южно-Сахалинск) 등지에 멀티미디어 역사공원이 잇따라 건립되었다. 2019년 12월 수르구트(Сургут)에 조성된 역사박물관을 포함하여 2020년 3월 현재까지 총 21관이 운영되고 있다. 앞으로 더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모스크바로 여행을 간다면 혹은 멀티미디어 역사박물관이 있는 도시를 방문한다면 한번쯤 들러 규모와 콘텐츠를 구경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러시아의 역사를 훑어본다면 러시아인의 정서를 가늠하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동안 우리는 책을 통해 또는 박물관의 고문서나 전시품을 통해 역사를 접해왔고 공부해왔다. 위에서 살펴본 러시아의 멀티미디어 역사공원에서는 다양한 차원을 통해 오감으로 상호작용하며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전시물과 그에 해당하는 설명으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박물관에서 벗어난 ‘역사’를 다루는 미디어 박물관은 아직까지 한국엔 없다. 정보통신 기술이 빠르게 진화하고 보편화 되어있는 오늘날, 정보화 세대를 위한 그리고 그들의 언어에 걸맞는 멀티미디어 박물관 조성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세계적으로 남다른 기술력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도 미디어 기술을 활용한 고유의 멀티미디어 역사박물관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목록

웹진 문화로(文化路) 내용 끝

TOP

저작권 표시 및 연락처

06974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로 84 법학관(303관) 1420호 / E-mail: fsicau@cau.ac.kr / TEL: 02-820-6355 / FAX: 02-822-00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