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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한·러 문화예술 교류, 지난 30년의 발자취
분류지역문화
국가 러시아
날짜2020-05-01
조회수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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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을 통해 대중의 창의력을 신장시키고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려는 노력은 오래전부터 세계 각국에서 이루어져 왔다. 특히 미국 정치학자 조지프 나이(Joseph S. Nye Jr.)가 1990년에 고안해낸 ‘소프트파워’의 개념이 현대 사회의 공공외교에 있어 핵심적인 개념으로 대두되면서, 국제사회 속 경쟁력 강화라는 각국 정부의 주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문화예술 관련 정책들이 전개되었다.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에서도 문화 자원을 기반으로 한 상호교류는 양국이 협력적 동반자로서의 관계를 구축해 나가는데 선행되었던 역사적 출발점으로 작용했다. 양국 교류의 물꼬가 트였던 시기는 1980년대 말의 일이었다. 이 시기는 ‘철의 장막’ 아래서 폐쇄국가를 자처했던 러시아가 서구와의 냉전 체제를 종식해갔던 시기였는데, 러시아가 세계라는 자유의 무대로 나아가려는 그즈음에 접어들어 우리나라에도 낯선 소련 사회와 문화가 그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양극단 체제의 만남이라는 긴장된 정치적 현장에서 한·소 간 문화예술 교류는 양 국민의 적대적 인식을 해소하고, 정서적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론으로서 구심적 역할을 담당했으며, 결국 본격적인 정치, 경제협력에 선행된 문화예술 교류가 한·러 수교라는 역사적 사건의 시작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소련 국적의 예술가가 공식적으로 처음 한국을 찾은 것은 바이올리니스트 일리야 그루베르트(И. Груберт)의 내한으로, 이는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공산권에 대한 개방의 움직임이 뚜렷해지기 시작한 1988년 3월의 일이었다. 그루베르트의 내한에 이어 1988년 6월 22일, 우리 정부는 동구 공산권과의 예술교류를 개방한다는 사실을 발표했고, 이로써 올림픽 기념 문화예술축전에는 다양한 분야의 소련 예술가들이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성사된 소련의 문화축전 참여는 서울올림픽이 역사상 가장 풍성했던 ‘동·서 문화 만남의 장’으로 세계인의 평가를 받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경향신문, 1988.02.13 <그루베르트 내한공연 소식>(왼)
동아일보, 1988.08.08 <볼쇼이 발레단 및 모스크바 필 내한 소식>(오)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된 한-러 문화예술교류는 어느덧 30년이라는 긴 역사를 이어왔다. 그동안 양국의 관계는 ‘전략적 협력동반자’로 격상되었고, 그에 발맞춰 경제 교역량 역시 대폭 증가했으며, 문화·예술 교류도 다양한 성과를 입증하며 끊임없이 이어오고 있다. 그렇다면 30년간 진행되었던 문화예술 교류의 모습과 그 특징은 무엇인가?

문화올림픽으로 일컬어졌던 서울올림픽 문화예술축전에서는 다양한 특이 문화 현상이 나타났지만, 그중에서도 ‘동구권 문화예술의 붐’은 가장 뚜렷했던 현상이었다. 당시 문공부가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공연예술의 경우만 보더라도 소련이 파견한 인원은 발레단 50여 명, 오케스트라 1백 20여 명, 합창단 60여 명 등이었다. 이에 의해 당시 ‘예술을 통한 소련의 평화공세’라는 국내 문화계 일부의 지적이 있기도 했으나, 국내에 불어닥친 소련 문화예술의 바람은 거대하고 새로운 하나의 현상으로 우리 예술계를 관통했다. 무엇보다 모스크바 필 지휘자 드미트리 키타옌코(Д. Китаенко)가 ‘사회주의리얼리즘은 소련 예술에서도 퇴색했다’고 밝힌 점, 볼쇼이 발레단 예술 감독 유리 그리고로비치(Ю. Григорович)가 ‘자신의 예술관이 휴머니즘’이라고 강조한 점 등, 그들이 인터뷰에서 보여준 자유분방한 언행은 그 진실성의 여부를 떠나 국내 문화계에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으며, 국내 ‘소련 예술 붐’을 형성시킨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다.

1988년 올림픽 당시, 소련 예술이 느닷없이 국내 예술계를 휩쓸었다면, 올림픽이 끝난 이후에도 동구로 향해있는 문화예술계에 변화 바람은 종식되지 않았고 오히려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이러한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 예술계가 이전 40여 년 간 심취해 있던 서구 문화 일변도에서 탈피해 또 다른 차원의 동구 문화를 수용, 즉 예술의 다양화를 이뤄 나갈 수 있게 됨을 의미했다. 실제로 1990년대까지 우리에게 러시아 예술은 구미 지역 예술이 국내를 장악한 데 따른 대응책이자 상업주의에 지친 우리 대중에게 정통 클래식 미학의 진수를 선보이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론이 되었고, 그 후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는 보편적 미의 가치나 테크니컬한 표현법에 따른 예술뿐 아니라 급진적이고 자유분방한 현대예술까지도 국내에 유입되어 세계 예술 경향의 다양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물론 장르별로 세분화했을 때 보다 활발한 교류가 진행된 분야와 정체된 경향을 보여왔던 분야가 명확히 구분되기도 한다. 분야별 수용 현황을 그래프로 살펴보자.

 

<장르별 러시아 예술의 국내 수용 현황>

위의 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다양한 예술 장르 중 국내 유입이 가장 활발히 진행된 분야는 영화와 미술이었다. 영화의 경우, 과거 40여 년간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소련 영화 수입이 철저히 통제되어 왔던 1980년대 말의 상황에서, 동아 수출공사가 일본을 통해 소베크스포르트(Совэкспорт) 영화사와 계약을 체결한 1988년 시점부터 1990년 수교 직전까지 총 16편의 영화가 수입되면서 시작되었고, 그 후 러시아 영화의 유입은 크게 세 가지 경로를 통해 진행되었다. 교류 초반, 대학 및 각종 단체가 진행했던 소규모 영화제를 통해 ‘고전 예술영화’가 들어왔다면, 1990년대 중반 정부의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각종 국제영화제가 개최되면서 ‘현대예술영화’가 유입되었다. 그리고 2010년대로 진입한 후로는 진지한 예술영화보다 대중성을 염두에 둔 헐리우드식 블록버스터급 영화들이 대거 수입되었다. 수치로 보면, 지난 30여 년간 러시아 영화를 소개한 소규모 영화제 26회, 각종 영화제를 통해 유입된 독립영화 205편, 상업영화관에서 공식 개봉한 작품이 93편에 이른다. 즉 1988년까지 굳게 닫혀있던 소련 문화예술이 우리 사회에 개방됨으로써, 고전을 중심으로 한 영화 수입이 점진적으로 확대되었고, 2000년대 이후로는 현대독립영화와 상업영화로까지 그 외연을 확장해 나갔다고 볼 수 있다.  미술 역시 한-러 교류전 34회, 개인전 포함 러시아 미술전 및 거장전 약 82회, 러시아 작가들이 참여한 국내 미술전 약 77회가 개최되었으며, 여기에 참여한 러시아 작가의 수는 120여 명에 달한다. 이처럼 영화와 미술 분야는 발레, 오페라, 뮤지컬, 클래식 음악 등 공연예술 분야와 비교할 때 매우 활발한 교류를 이어온 장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영화와 미술에 대한 국내 러시아 연구자들의 노력과 열정, 러시아 작품의 예술적 독창성과 그 가치를 높게 평가했던 국내 예술계의 안목이 적용된 결과로 보인다.

반면, 교류가 가장 활발하지 못했던 분야는 뮤지컬로, 다른 공연예술 장르에 비해 양적 교류가 현저히 적은 양상을 보였다. 2000년대 이후, 뮤지컬계의 동향을 살펴보면, 우리는 전통적으로 뮤지컬의 중심지로 간주되어 왔던 영국 웨스트엔드나 미국 브로드웨이뿐 아니라, 러시아, 폴란드, 중국 등 유럽 및 아시아 권역 국가들과 프로덕션 투어를 지속적으로 이어가며 그 외연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그중 슬라브 특유의 음악적 색채를 지닌 러시아는 우리 예술단과의 공동 작업으로 한-러 합작 뮤지컬을 창작하거나 국내 관객을 위한 라이선스 뮤지컬을 협력 제작하는 등 내실 있는 교류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나라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대와 달리 러시아 뮤지컬이 국내 관객들에게 소개된 횟수는 지난 30년간 총 7회에 불과했다.

국내 최초의 러시아 뮤지컬 공연은 1994년 서울시립가무단이 러시아 록 뮤지컬 <유노나과 아보스(Юнона и Авось)>를 레닌콤소몰극장과 합동 공연의 형식으로 선보이면서부터다. 그러나 1994년 이후 15년간 그 어떠한 형태의 교류도 진행된 바 없었다. 긴 공백을 깨고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 러시아 팀 한국 무대를 찾은 2009년 이후 지금껏 러시아 팀은 이 대회에 총 6회 참가했는데, DIMF의 14년 역사에서 러시아의 참여율을 다른 나라들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였다. 예컨대 발레나 클래식 음악, 오페라는 세계 예술 역사에서 러시아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이 우리나라와 견주기 힘들 만큼 우세했던 터라 다양한 형태의 국내 유입이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러시아 뮤지컬 역사는 불과 50여 년 남짓한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양국의 길지 않은 뮤지컬 역사와 상응하게 양국이 보유하고 있는 창작 뮤지컬 작품의 수도, 양국 간 교류의 횟수도 매우 적은 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아마도 양국 측 모두 우위를 가리기 힘들 만한 뮤지컬 변방국 간의 교류를 활발히 진행해야 할 이유도 명분도 찾지 못했던 것이 엄연한 현실이었던 듯하다. 

한편 러시아 발레와 클래식 음악은 국내 예술계의 지형도를 바꿔놓을 만큼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친 장르들이라고 볼 수 있다. 1988년 볼쇼이 발레단이 최초 내한한 이후, 1990년대 중반부터는 볼쇼이와 마린스키뿐 아니라 노보시비르스크, 예카테린부르크 등 러시아 중소도시를 대표하는 발레단의 내한으로 점차 확대되었고, 지금까지 총 40회가 넘는 러시아단체의 공연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세계 최고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볼쇼이와 마린스키가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외국 발레단으로 등극했고, 러시아식 발레 교수법과 교육시스템이 도입되면서 무용수들의 훈련이 체계화되었다. 또한 그리고로비치와 비노그라도프(О. Виноградов)와 같은 저명 러시아 안무가들의 내한활동이 빈번해지면서 국내 단체의 레퍼토리와 안무는 더욱 다양화되어 갔다. 그리고 발레 교류를 30년간 지속해온 오늘날 우리는 김주원, 김기민, 유지연과 같은 유능한 인재들을 배출해냈고, 2010년 이후로 현재까지 한국인들이 세계적 권위의 국제콩쿠르들을 석권하고 있다. 이와 같은 오늘날의 성과를 볼 때, 한국은 그야말로 세계 예술 시장에서 발레 강국으로 급부상했다고 볼 수 있으며, 한국 발레는 70년의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찬란한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국제콩쿠르 한국인 입상 현황>
발레(왼) / 클래식음악(오)

클래식 음악 역시 발레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30년간 38개의 대규모 관현악단과 13개의 실내악단이 방한해 총 108회의 클래식 공연을 선보였고, 각종 악기를 다루는 126명의 솔리스트들이 한국을 찾았다. 급기야 러시아 클래식 음악은 한국 진출 30년 만에 영미·유럽권 단체들을 제치고 가장 많은 내한공연 횟수를 기록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러시아와 이어온 지난 시간의 교류는 국내 클래식 대중화뿐 아니라, 우리 음악계가 양적·질적으로 성장세를 보이는 작금의 상황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 클래식의 성장세는 한국인들이 국제무대에서 이루어내고 있는 다양한 성공사례들로 충분히 증명된다. 확연한 성장세의 시작은 2011년 제14회 차이코프스키 국제콩쿠르에서 한국인들이 각종 상을 휩쓸다시피 하면서부터였다. 그 이후로도 줄곧 한국은 국제적 권위를 인정받는 콩쿠르를 통해 젊고 유능한 음악가들을 배출해냈고, 2019년에는 한국인 음악가가 입상한 국제콩쿠르만 해도 9개나 된다. 

정리하자면, 장르별로 러시아 문화예술 수용 현황 볼 때, 영화, 미술, 클래식 음악, 발레, 오페라, 애니메이션, 뮤지컬 순으로 교류의 빈도수가 높았다고 볼 수 있다. 영화의 경우, 세계적으로 가장 애호되는 문화상품이자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매체라는 영화의 특성 상 경쟁력 확보를 위한 러시아의 노력의 결과라고 보이며, 미술 교류의 빈도수가 높았던 것은 예술가가 직접 방문해야만 하는 공연예술에 비해 작품의 이동만으로 성사되는 미술전의 특성과 함께, 2000년대 들어 우수죽순 생겨난 국제비엔날레에 러시아 작가들의 참여율이 높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발레의 경우는 러시아가 세계 최강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분야로 국내 수요가 그만큼 높았다고 볼 수 있으며, 클래식 음악과 오페라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개런티로 유럽 종주국에 버금가는 고품질의 무대를 볼 수 있는 까닭이었다고 생각된다. 반면 애니메이션과 뮤지컬 장르는 교류의 횟수가 현저히 적은 편이다. 해당 분야의 교류 정체 이유는 아마도 한국과 러시아 양국에서 이어온 그 역사가 짧기도 하거니와, 언제나 세계 무대에서 주류의 주변부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정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러시아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이에 대한 국내의 수요도 적은 편이다. 다른 한편으로, 발레와 클래식 음악 장르는 국내 예술계에 미친 영향과 전문가들의 평가를 고려할 때, 질적 측면에서 교류의 긍정적 성과를 얻어낸 분야라고 볼 수 있으며, 영화 분야는 가장 많은 작품이 수입된 분야임에도 전체 국내 영화시장에서 인지도를 확보하지 못한 채, 수익률과 스크린 점유율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어가지 못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조망해보면, 지난 30년간 각 분야의 러시아 예술은 한국문화예술계에서 상향그래프를 그리며 점진적으로 그 비중을 높여갔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거치며 정체기를 맞았던 예술계에서 러시아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개런티와 고품질의 무대를 앞세우며 호황을 누렸고, 2000년대와 2010년대를 관통하면서 인적, 물적 교류의 규모를 더욱 확대해가며 국내 입지를 공고히 했다. 그리고 오늘날 국내 예술계에서 러시아는 우리 문화예술계를 지탱하는 하나의 큰 축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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