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K(인문한국) 사업단 홈페이지

HK(인문한국) 사업단

웹진 문화로(文化路) 내용 시작

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러시아 극동지역 문화기반시설 탐구: 아동예술학교 편
분류지역문화
국가 러시아
날짜2020-05-01
조회수661
첨부파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교환학생 시절을 보낼 당시 우리나라와 달리 클래식 콘서트나 극장의 합리적인 가격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마린스키 극장과 같이 표 값이 비싼 곳도 있었지만, 같은 가격으로 한국에선 꿈도 못 꿀 차이코프스키의 발레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이라던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선율을 즐길 수 있는 극장들이 꽤 있었다. 그것도 예술가들의 본고장에서 말이다. 길지 않은 교환학생 생활이었지만 러시아인의 삶에는 예술이 녹아있고 예술에 대한 진입장벽이 한국에 비해 낮다는 걸 체감했다. 겨울이 유난히 춥고 길어서 실내에서 즐길 만한 걸 선호해서 인지, 걸출한 자국 음악가들이 주는 정서적 공감대 때문인지 갈 길을 가다가도 음악회나 극장의 시간표가 붙어있는 매표소 주변으로 슬쩍 와서 공연 시간표를 확인하고 가는 러시아인들을 자주 보곤 했다. 이런 추억의 한 켠을 돌이켜보다보니 생활에서 이뤄지는 문화예술 향유에는 러시아 교육체계의 영향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러시아의 예술분야 교육은 '아동예술학교-예술 중·고등학교-예술대학' 순으로 이어진다. 조기교육을 전제로 교육시스템의 하부를 지탱하고 있는 아동예술학교가 예술가를 키워내는 씨앗의 발아 역할을 하고 있다.


<소비에트 시절 아동예술학교의 음악수업> (1944) (출처: 스탈리노고르스크 1941)

    
아동예술학교(Детская школа искусств)는 러시아의 6개 교육기관 유형 중 하나인 추가교육기관으로 분류된다. 정규교육기관은 아니다. 이곳에선 미술, 조형, 보컬, 악기 연주 등과 같은 예술 교육이 이뤄진다. 학교마다 나름의 프로그램이나 학제를 갖춰 교육에 임하고 있다. 준비한 서류를 제출하면 수월하게 입학할 수 있는 학교가 있는 반면, 역사가 깊거나 명성 있는 예술학교의 경우 어린이들의 잠재성이나 실력 검증을 위해 면접이나 실기시험을 시행하기도 한다.   수학 기간은 5년 안팎으로 교육을 잘 이수하면 졸업장(수료증)이 주어진다. 아동예술학교에서 배운 활동을 바탕으로 전공에 맞춰 대학에 진학할 경우 졸업장과 수료 받은 학점이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러시아 교육기관은 '연방-지역-도시/지방자치'라는 행정단위로 나뉘어 관리되는데, 아동예술학교는 지방자치단체가 운영 및 관리하고 있다. 이에 수업료는 무료이거나 저렴한 곳이 많다. 연속적이고 일관적인 예술분야 교육의 효율성이 입증되어 오늘날까지 그 체계가 이어져 오고 있지만, 자금부족과 이로 인한 교육진의 임금문제, 교육의 질 저하와 같은 문제를 피할 수는 없었나 보다. 최근 아동예술기관을 기존의 도시 및 지방자치 권역에서 연방 문화부 권역으로 복속시키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기도 하다.

러시아 극동지역에는 총 175개의 아동예술교육기관이 운영되고 있다. 미술 및 조형예술학교 23곳, 음악학교 40곳 그리고 전반적인 예술교육이 이뤄지는 학교 107곳으로 파악되었다. 연해주에 28개로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가장 많은 아동예술기관이 분포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부랴트 공화국이 24개, 자바이칼 주가 22개로 연해주의 뒤를 이었다. 캄차카 주와 하바롭스크 주에 각각 19개, 18개의 아동예술학교가 운영 중이다. 아무르 주와 사할린 주에는 각각 17개의 아동예술학교가 포진하고 있다. 러시아 극동연방관구 내 최초의 아동예술학교는 1924년 블라디보스토크에 설립되었고, 가장 최근으로는 2016년 하바롭스크에 들어섰다.

 

<마린스키 연해주관의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에서 연기하는 학생들(위),
제7회 국제 아동청소년 축제 및 대회 '황금고리'에서 수상한 현악기과 학생들(아래)>
(출처: 프로코피예프 1번 아동예술학교)
 

프로코피예프 1번 아동예술학교(Детская школа искусств №1 им. Прокофьева)는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가 깊은 학교다. 100여 년이라는 아동예술학교 역사를 고려해보면 1924년 블라디보스토크에 설립된 이 학교는 극동지역뿐만 아니라 러시아 내에서도 오래된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학교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해당 아동예술학교는 원래 음악교육을 중점으로 내세운 학교였다. 이곳은 연해주 내 초기 음악교육의 기틀을 마련함과 동시에 한 때 지역 음악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곤 했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이 없고 순회공연이 활발하지 않았던 시기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또는 파리의 음악학교 출신 교사들과 학생들이 콘서트를 열어 지역의 문화생활에 이바지하곤 했었다. 또한, 오래 지속되진 못했지만 극동지역 최초의 뮤지컬 학교가 프로코프예프 1번 아동예술학교를 기반으로 1933년에 조직되기도 하였다.

블라디보스토크 1번 아동예술학교는 2001년에 진행된 러시아 최고의 음악학교를 가리는 랭킹에서 11위를 차지했다. 2007년에는 <예술이 탄생한 곳>이라는 전 러시아 대회에서 극동연방지구 최고의 예술교육기관으로 인정받았다. 2013년 전국대회 <현대사회에서의 아동예술학교>와 2015년 러시아 <톱 50 아동예술학교>를 선발하는 대회에서 수상하기도 하였다. 유능한 교사들을 영입하여 교육의 질을 높이며 과거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나날이 발전하는 양상이다.

비록 음악학교로 시작하였지만 현재 프로코피예프 1번 아동예술학교에서는 음악과 미술 분야 교육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음악과에는 440명의 학생들이 피아노, 현악기(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합창, 민중악기(바얀, 아코디언, 돔라, 발랄라이카, 기타), 관악기와 타악기(플루트, 색소폰, 실로폰, 드럼) 교습을 받고 있다. 미술과에는 65명의 학생들이 그림, 회화, 공예, 조각, 예술사, 컴퓨터 그래픽을 배우고 있다. 두 과 모두 수학기간은 5년이다. 신입생 모집은 매년 진행되고 있고 공석이 생길 경우 추가모집을 하기도 한다. 지원자는 입학시험을 치르게 된다. 음악과의 경우 동요를 연주하고 미술과의 경우 주어진 시간 동안 그림을 그려 제출한다.

가장 최근에 설립된 하바롭스크 예술학교(Школа искусств Хабаровского района)는 기존에 운영되고 있던 아동예술학교 3개가 통합되면서 하바롭스크 시 정부 산하 추가교육기관으로 2016년 9월 출범하였다. 현재 6개의 프로그램에서 450여명의 학생들이 수학하고 있다. 피아노, 민중악기(기타, 바얀, 아코디언), 합창, 미술, 연극, 관악기 프로그램에 따라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교육기간은 8년반과 4년반으로 나눠져 있다. 6세 아동부터 17세 미만 청소년까지 입학할 수 있다. 2017년부터 교사들의 지도아래 학생들은 지역이나 전국 단위 대회에 정기적으로 참가하여 기량을 키워가고 있다. 이처럼 학교는 아동들에게 예술교육을 제공하면서 영재 발굴에도 힘을 쏟고 있다.


<하바롭스크 시에서 열렸던 미술대회에 참가한 미술과 학생들>
(출처: 하바롭스크 예술학교)
 

한편 사할린 주에서는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아동예술학교도 있어 눈길을 끈다. 1991년에 유즈노사할린스크에 설립된 아동예술학교 '에트노스(Этнос)'인데, 이곳은 러시아와 한국의 예술문화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2019년 기준 400여명의 수강생이 러시아의 전통음악예술(민중악기연주, 안무, 노래)와 한국예술, 미학 교육과정을 밟고 있다. 러시아 민족 전통노래 및 민중악기 수업이 진행되는 '민속 음악반'은 심화반으로 연수기간만 8~9년을 필요로 한다. 심화반에는 해당 예술분야로 진로를 정해 전문학교로 진학하기를 희망하는 아동들이 주로 수강한다고 한다.

 

<러시아 민속 콘서트에서 노래와 전통춤으로 기량을 뽐내는 학생들>
(2019)(출처: 아동예술학교 '에트노스(Этнос)')
 

러시아 전통예술반과 나란히 한국예술반에는 한국의 전통예술을 가르치는 4개 반이 운영되고 있다. 한국의 전통무용, 장고와 가야금, 타악기는 보통 7~8년, 민요나 창은 4년 프로그램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거시적으로 바라보면 한국의 전통문화를 익힌다는 건 고려인들에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갈증을 부분적으로나마 해소시키는 출구가 될 수 있고, 러시아인들에게는 한국의 예술을 알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한국 문화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듯 싶다. 정체성 강화와 문화교류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가져다 주는 프로그램인 것 같다.   


<2019년 '한국의 예술'이란 주제로 열렸던 콘서트 (위),
2020년 2월 갈라 콘서트에서 한국 전통춤을 선보이는 학생들 (아래)>
(출처: 아동예술학교 '에트노스(Этнос)')
 

'일반음악반'은 음악에 대한 기초 및 음악사 프로그램으로, 이 반에서 어린이들은 4년동안 음악예술을 배운다. 또한 음악뿐만 아니라 2년이라는, 상대적으로 다른 반에 비해 짧지만, 춤을 배울 수 있는 '안무 창작반'도 있어 예술교육의 다양한 선택권을 보장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반들은 시 정부의 예산으로 모두 무료로 수업이 운영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사비로 운영되는 '미학반'도 있는데, 여기에선 4~7세의 아동들이 미술을 배운다. 시 정부의 지원을 받는 교육프로그램에 입학할 수 있는 어린이들의 연령대가 보통 7~10세 인 것을 감안하면 꽤 어린 아동들을 대상으로 조기미술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또한,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는 턱이 없고 폭이 넓은 출입구와 휠체어 전용 리프트 시설도 갖추는 등 장애학생들을 배려하는 편의도 제공하고 있다.

이와 같이 러시아의 독자적인 예술분야 교육체계에 대해 알아보면서 극동지역 아동예술기관 현황을 살펴보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음악과 미술 등의 예술교육은 어린이들에게 심미안과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관 형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미술과 심리치료를 연계하는 대체의학도 활용되고 있는 만큼 정서적 안정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서는 종합적이고 전인격적인 교육이 가능해진다. 경제적인 요인으로 예술교육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은 한국 국민으로서 러시아의 교육시스템이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다. 창의적 사고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예술교육이 창의성을 키워줄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추가예술교육기관이 부재한 우리나라의 교육체계상 국·공영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조기에 이뤄지는 예술수업이 좀 더 강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목록

웹진 문화로(文化路) 내용 끝

TOP

저작권 표시 및 연락처

06974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로 84 법학관(303관) 1420호 / E-mail: fsicau@cau.ac.kr / TEL: 02-820-6355 / FAX: 02-822-00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