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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알다노프 역사물에 대한 단상(斷想)
분류문학
국가 러시아
날짜2020-04-16
조회수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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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다우(Ландау)를 필명으로 사용했던 마르크 알다노프(М.А. Алданов, 1886-1957)는 다작으로 유명한 작가, 수필가, 철학가이다. 그는 제정러시아 시기 키예프에서 태어났지만 이국땅 프랑스 니스에서 사망한 망명 작가이기도하다. 알다노프의 삶의 궤적은 숫자면에서 가장 대규모로 진행된 디아스포라 1차 물결의 망명자의 삶을 선택한 여느 디아스포라 작가들과 다르지 않다. 2월 혁명을 환영하고 10월 혁명을 신랄하게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알다노프는 러시아를 탈주하여 콘슨탄티노플-베를린-파리-뉴욕-니스의 루트를 따라 삶의 보금자리를 옮겨 가면서 경계인의 삶을 살았다.


<마르크 알다노프>

알다노프는 1947년부터 1957년까지 11년 연속으로 노벨 문학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지만, 디아스포라 동료 작가였던 이반 부닌이나 블라지미르 나보코프처럼 작가로서 가장 행복하고 찬란한 순간은 누리지 못한, 딱 2프로가 부족한 작가의 생을 산 예술가였다. 이것에 대한 알다노프의 아쉬움을 달래주려는 의도였을까? 2006년에 <새로운 잡지>(Новый журнал)는 올해의 ‘알다노프 문학상’을 제정하였다. 마르크 알다노프 탄생 120주년을 맞아 알다노프의 문학성을 기리고 해외 러시아 문학의 발전을 장려하기 위해 만든 순수 문학상으로서, 러시아 이외의 나라에서 러시아어로 창작된 작품 중 그 해 최고의 소설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역사를 다룬 알다노프의 소설과 에세이의 우수한 작품성을 높게 평가하고, 그의 작품을 통하여 러시아 문학의 위대함을 해외에 널리 알린 것에 대한 공헌을 뒤늦게나마 러시아 국내에서 인정(물론 1990년 이후  알다노프의 작품들은 러시아 국내에서 꾸준하게 출판되고 있지만)한 대표적인 결실이 ‘알다노프 문학상’이다.

알다노프의 역사물: 역사의 복기를 통한 정치 분석

사람들은 정치인이 역사가의 작업을 망쳐 놓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정치가를 역사가와 절대로 분리하지 않는다. 현실생활에서 분리된 역사가는 좋은 연구자는 아니다. 왜냐하면 역사가는 현재를 이해하는 법을 배울 때에만 과거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 있다. 내 생각에 내 안에 있는 역사가는 정치가인 또 다른 나에게 영향을 준다. 그리고 정치적 투쟁에서 나는 과거와 미래를 현재와 연결시키면서, 또 다른 현재를 본다.

위의 인용은 10월 혁명으로 붕괴된 임시정부의 ‘몰락한 영웅’, 역사가 겸 정치가인 파벨 밀류코프(П.Н. Милюков,1859-1943)가 초라한 삶을 유지한 망명지 파리의 어느 모임에서 ‘두 분야의 전문가’인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면서 한 말이다. 이미 많이 알려져 있듯이, 1917년 2월 혁명 이후 탄생한 게오르기 리보프(Г.Е. Львов,1861-1925)대공의 임시정부에서 외무장관을 지낸 파벨 밀류코프는 저명한 정치가이기도 하지만 러시아 문화사(Очерки по истории русской культуры, 1896~1903) 3부작으로 러시아 전역에 널리 이름을 알린 역사가이기도 하다. 역사분야에서 소설과 에세이로서 러시아 밖에서 명성을 쌓은 알다노프(М.А. Алданов, 1886-1957)도 동시대를 같이 살았던 파벨 밀류코프의 상기한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파벨 밀류코프>


알다노프의 창조적 유산 중 많은 부분은 역사적 주제에 관한 소설과 에세이로서, 이 작품들의 특성은 과거를 다루는 역사 속에 현대의 정치적 내용이 많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현대 정치’를 과거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역사의 일부로 판단한 알다노프의 신념이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소설의 창작과정에서 인용된 알다노프의  정치 논평, 정치 에세이, 정치인들과의 교환한 서신 등은 소설의 서사에 아주 중요한 자료들이다. 특히 망명지 프랑스 거주시기에 <최신 뉴스>(Последние новости)에 기고한 에세이는 알다노프가 해외에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글로서, 역사와 정치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알다노프는 에세이를 통해서, 프랑스 혁명, 혁명의 뛰어든 인물, 개별적인 사건들을 현대 정치 및 정치가들과 연결해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으며, 이 작업과정에서 자신의 회고록에서 발췌 한 적지 않은 양을 재창조해서 조밀하게 덧붙인다. 독자들은 알다노프의 역사-정치적인 에세이를 통해서 역사적 사건에 대한 현대적 풍자 글을 접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하면 알다노프의 글은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인지(認知)를 통해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민낯을 독자들에게 정확하게 알리려는 목적을 가진  창작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알다노프가 사망하기 몇 개월 전에 ‘우리 망명공동체의 구세대가 적어도 몇 가지 역사적 흔적을 남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956년의 소련의 상황에 대한 늙은이들의 생각을 남겨야 한다. 이러한 것이 갑자기 누군가에게 필요하고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마크라코프(В.А. Маклаков)에게 보낸 편지 속에 언급한 내용은 알다노프가 역사를 보는 관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일다노프의 책 "톨스토이와 롤랑">

알다노프의 역사물: 레프 톨스토이의 흔적

알다노프의 역사 소설에는 레프 톨스토이의 흔적이 나타난다. 즉 톨스토이가 자신의 작품에서 허구의 단순한 주인공(<이반일루치의 죽음>의 하인 게라심, <안나 까레니나>의 플라톤)의 주장을 통해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은 알다노프의 소설에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이러한 톨스토이의 소박하지만 의미 있는 영향 속에서 알다노프의 역사 소설들은 창조되어진다. 즉 창작자의 견해를 역사적-철학적 대사를 통해 표현하는 순수한 주인공의 형상이 알다노프의 작품에서도 등장한다. 사실 작가 톨스토이는 알다노프에게 있어서 중요한 인물로서, 1915년에 알다노프가 작가로서 처음으로 출판한 책도 톨스토이에 대한 것이다. 첫 작품 제목은  <톨스토이와 롤랑>(Толстой и Роллан)이다.

원래 알다노프의 계획에 따르면,  <톨스토이와 롤랑>은 두 명의 작가를 비교하는 방향으로 저술되어야 했지만, 롤랑에 관한 내용이 주로 기술된 두 번째 원고는 혁명과 내전 중에 사라졌다. 망명 후 알다노프는 <톨스토이와 롤랑> 개작하여 <톨스토이의 수수께끼>라는 제목으로 재출판 한다. 이렇게 톨스토이에 대한 문학 작업으로 시작된 알다노프의 작가로서의 삶에서 톨스토이는 창작의 동반자였다. 비록 철학적 사고와 문학적인 지향점에서 톨스토이와 알다노프가 상당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다노프는 평생 동안 톨스토이의 창의성과 개성을 좋아했다.

알다노프의 역사물: 망명의 정당성 설파

알다노프의 역사물은 러시아를 공산화 시킨 볼셰비키의 역사적 정당성에 대한 러시아에서 추방당한 망명객들의 선택에 대한 역사적 정당성을 우위에 두고자 한 연속된 작업이었다. 그래서 소련 정부가 조국을 버린 문학인들에 대한 비판의 정당성에 대한 일련의 역사적인 증거를 제시하면, 알다노프는 길고 자세하게 늘어놓은 문체로 조목조목 강하게 반박하고 논파하는 창작물을 만들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때 망명공동체와 등지려고 했던 저명한  망명예술가들의 체면을 살려주고 그들의 잘못된 선택을 이해하려고 한 것은 알다노프에게는 10월 혁명 이후 러시아로부터의 탈주를 결정한 그들의 역사적인 결정에 대한 존중을 볼셰비키에 대한 또 다른 투쟁의 연속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소련 대사관을 방문한 부닌에 관한 소식을 들었을 때, 알다노프는‘엄청나게 화가 난 상태였고 그러한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지만, 부닌을 너무나 존경하고 사랑한 알다노프는 육체적으로 쇠약하고 정신적으로 향수병에 지친, 이미 자신의 행동에 대해 회한의 감정에 빠져 있던 부닌을 결국 용서했다. 물론 망명지에서 ‘완벽한 신사’로 명성을 얻은 알다노프의 성격도 이러한 너그럽고 품위 있는 행동에 반영되어 있는 듯하다.

알다노프가 창조한 역사물은 어떤 작품이 있나?

작가 알다노프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그는 산문작가 이외에 수필가, 철학가 이면서 특이하게도 두 권의 화학에 관한 책 - , <화학에서 새로운 개념의 가능성에 관한 문제>(К вопросу о возможности новых концепций в химии) -을 저술한 화학자 기이기도 한다. 특히 알다노프가 1936년에 출판한 는 유럽 화학자로부터  찬사를 받은 책이다. 알다노프의 역사물 중 1917년과 1918년에 출판된 <아마겟돈>(Армагеддон)은 화학자로 일한 경험이 녹아있는 작품으로, 사회-정치 및 철학 주제에 관하여 ‘화학자’와 ‘작가’사이의 대담을 다룬 두 권으로 구성된 창작물이다.

알다노프는 1919년에 인민 사회당에 가입 했는데, 지적이고  부유한(설탕공장을 경영한 사업가 집안) 유대인 가정출신이 이 당에 들어가는 것은 격동기 당시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흥미 있는 것은 인민 사회당에서 알다노프를 프랑스 파리로 파견하였는데, 출장으로 간 파리에서의 삶은 뜻하지 않게 끝없는 망명생활로 이어져서 1922년부터 1924년까지 베를린에서, 그 이후 다시 파리에서 살았다. 결과적으로 알다노프에게는 이 출장으로 인해 -이고리 스트라빈스키의 표현처럼- 러시아를 잠깐 떠나게 된 것이 아니라 영원히 러시아를 잃게 되었다.

 <일다노프의 프랑스 혁명에 관한 4부작>


망명 생활 중 처음으로 출간한 역사소설은 소위 대박을 쳤는데, 유럽 역사에 대한 알다노프의 집요한 관심, 역사를 체험한 증인들의 지인들과의 교류, 정치인들과의 소통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알다노프에게 큰 명성을 안긴 데뷔 작품은 4부작으로,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에 대하여 역사적이고 철학적인 의미를 찾으려는 사상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순차적으로 출간된 4개의 작품은 <9번째 혁명>(Девятое термидора, 1923), <악마의 다리>(Чёртов мост, 1925), <음모>(Заговор, 1927), <성헬레나, 작은섬 >(Святая Елена, маленький остров, 1921) 등이다.  엄청난 갈채를 받은 데뷔 이후, 알다노프는 1차 세계 대전과 러시아 혁명, 디아스포라를 다룬 3 부작, <열쇠>(Ключ,1929), <탈주>(Бегство,1932), <동굴>(Пещера,1934—1936) 등을 출간한다. 이 작품들은 세계 24 개 언어로 번역 된다.
1940년 파리가 함락 된 후, 알다노프는 러시아 망명객들로 도떼기시장처럼 북적 거린 미국의 뉴욕으로 이주하였다. 알다노프는  50만의 구독자를 소유한 ‘미국 내 러시아의 문학 자본인 러시아어 일간지 <새로운 러시아어>(Новое русское слово)와 <새로운 잡지>에 2차 세계대전과 관련 있는 주제로 정치 칼럼을 기고했다.
전쟁 후 프랑스로 돌아온 알다노프는 몇 개의 규모가 큰 소설 세 편을 창작한다. 첫 번째 작품 <기원>(Истоки, 1950)은 1870년대 후반의 혁명적 움직임과 알렉산더 2세의 암살에 관한 이야기이고, 두 번째 작품 <자살>(Самоубийство)은 러시아 혁명에 관한 것이다. 1848년에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한 세 번째 작품 <죽음의 이야기>(Повесть о смерти)는 문학적인 텍스트 안에 알다노프가 신랄한 비판을 쏟아낸 작품이다. 그리고 알다노프가 1953년에 창작한 <울름의 밤. 철학적 사건>(Ульмская ночь. Философия случая)은 작가의 초기 작품처럼, 알다노프의 두 가지 상반된 자아의 대화 형식으로 서사가 진행되는 역사적이고 철학적인 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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