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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응답하라, 모스크바 1994: 그 겨울, 우리에게 없고 그들에게 먼저 있던 것들
분류지역문화
국가 러시아
날짜2020-03-23
조회수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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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그 겨울, 당시 우리에겐 아직 없었지만, 러시아인들에겐 있었던 것들이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오리털 파카’로 대표되는 패딩 문화가 80년대 후반부터 몇 년 동안 겨울 패션을 점령하다가 어느새 무스탕과 모직 롱코트로 서서히 그 주도권이 넘어가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어학연수를 떠나기 전, 그래도 눈이 많고 추운 나라이니 편하게 입으려면 패딩이 만만하겠다는 생각에 스포츠 패딩을 하나 장만하고, 혹시라도 중요한 자리에 갈 때 패딩 입고 나가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엄마의 배려 덕분에 무릎 밑으로 한참 내려오는 블랙 롱코트도 덤으로 얻어 ‘눈의 나라’ 러시아로 출발했다.

러시아에 도착하고 보니 러시아 사람들이 입는 겨울 외투는 정말 극과 극으로 대비되었다. 모피 혹은 패딩. 패딩도 우리에게 익숙한 스포츠 브랜드에서 나왔던 화려한 원색과 심플한 디자인이 어우러진 패딩이 아니라, 주로 우중충한 네이비 계열의 다소 얇아 보이는 솜패딩이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가지 특이한 사항이라면, 당시 네이비도 아니고, 파란색도 아니고 뭔가 회색빛이 감도는 우울한 네이비 계열의 패딩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중년을 넘긴 듯한 아주머니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입고 있던 패딩은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롱패딩이 대부분이었다. 한참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던 작년과 재작년, 우리나라에서도 소위 ‘김밥 패딩’이라고 불리는 롱패딩이 유행몰이를 했지만, 90년대 중반을 달려가는 러시아에 롱패딩은 이미 일상화되어 있었다. 아마도 눈비가 잦고 추운 날이 지속되는 러시아의 기후적 특성으로 인해, 아무래도 그곳은 숏패딩보다는 롱패딩이 더 유용했을 것이다. 이에 더하여 1993년까지만 해도 여전히 물자 부족에 시달리면서 ‘패션’보다는 ‘생존’에 더 몰두했던 러시아의 일상이 그들의 의복 문화에도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1990년대 초반 롱패딩을 착용한 러시아인들>

 
그리고 이런 패딩을 걸친 러시아인은 대부분 패딩 부츠나 펠트화 장화를 마치 세트 상품처럼 착용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패딩 부츠 역시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신박템’이었다. 시간을 잠시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당시 우리나라 겨울철에 유행했던 신발은 군인용 워커를 모델로 제작한 패션 워커, 그리고 등산화를 캐주얼하게 변화시킨 누벅 등산화, 카우보이들이 신던 부츠를 본뜬 웨스턴 부츠 등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간혹 시장에서 마주치는 할머니 중 펠트화 장화를 신은 분들은 다소 추워보이기도 했지만, 정통 마트료쉬카 인형처럼 머릿수건을 동여맨 채 롱패딩과 패딩 장화를 세트로 장착한 분들을 만나면 그렇게 정겨워 보일 수가 없었다. 아마도 호호 할머니의 러시아 버전이 있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나라에도 저런 장화가 들어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연수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서 보니 우리나라에도 어느새 러시아 할머니 장화가 들어와서 유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겨울철 거리를 점령한 아이템은 소위 ‘영의정 신발’로 불리던 어그부츠였다. 러시아식 어그 부츠보다는 훨씬 세련된 디자인으로 탈바꿈하긴 했지만, 러시아 할머니들이 신는 신발이 어째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저렇게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는 것인지 잠시 어리둥절한 채로 대한민국 거리를 점령한 영의정 신발을 바라보곤 했다. 나를 더 깜짝 놀라게 했던 것은 어그부츠의 가격이었다. 지금이야 양털이 아닌 인조 모피로 제작된 어그부츠도 많이 나오고, 해가 다르게 쏟아져나오는 다양한 겨울 부츠 시리즈에 밀려서, 어그부츠는 어느덧 이미 철 지난 아이템으로 취급받고 있다. 시간을 되돌려 다시 1994년으로 돌아가보자면, 당시 러시아에서 본 어그부츠나 패딩 부츠는 아무리 비싸 봐야 최대 30달러를 넘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 러시아에서는 생필품에 속하던 어그부츠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패션 아이템으로 진화하면서 그 과정에서 가격 역시 훌쩍 올라버린 것이다. ‘어그’ 사에서 판매하는 오리지널 양털 어그부츠의 경우,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최소 20만원 가량을 줘야 살 수 있긴 하지만, 러시아 버전 어그부츠의 가격을 알고 있던 나에게 당시 막 수입되어 유행하던 어그부츠의 가격은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한편 어그부츠의 주요 소재인 양털의 주인공, 즉 양과 관련하여 흔히 하는 우스갯소리 중 하나가 바로 “양들은 추우면 떨어지고, 더우면 모인다”라는 말이다. 청개구리도 그런 청개구리가 없다. 원래 양의 습성상 뭉쳐서 생활하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으레 추우면 모이고 더우면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거늘 저렇게 반대로 행동하는 것을 보면 필경 심보 사나운 청개구리 기질을 가졌거나, 혹은 체온 조절에 탁월한 능력을 갖춘 것임이 틀림없다. 실제로 양털은 습도, 온도에 매우 민감하여 주변의 상황에 따라 자신에게 가장 최적화된 맞춤형 환경을 만들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일까? 어그부츠는 원래 방한용이 아닌 전혀 다른 목적에서 제작된 상품이었다.

어그부츠의 탄생은 추운 나라 러시아의 반대편에 있는 호주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60녀대 호주와 뉴질랜드 바닷가에서 ‘서핑’을 즐기던 파도타기 마니아들이 서핑을 마친 뒤에 바닷가 모래사장을 걸어오는 동안 자신의 발을 보호하기 위해 신기 시작한 것이 바로 현재 어그부츠의 기원이라고 한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모래사장, 그렇지 않아도 더운데 양털 신발까지 신어버리면 그야말로 발바닥에 불이 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앞서지만, 신기하게도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양털은 온도 조절 능력이 뛰어나서 추운 지방에서도, 더운 지방에서도 기후에 상관없이, 마치 카멜레온이 주변 환경에 따라 자신의 보호색을 변화시키듯이, 주변 맞춤형 온도를 제공한다. 게다가 어그부츠는 서핑 후에 발에 남아있는 물기를 탁월하게 제거하고, 뜨거운 모래사장으로부터 발을 보호하는데도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서퍼들의 필수품으로 그 역사가 시작된 어그부츠는 어느새 뜨거운 해변가에서 추운 나라 러시아까지 건너와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보다 한참 앞서서, 그것도 젊은 층이 아닌 러시아 할머니들의 발을 시베리아에서부터 몰려오는 혹한으로부터 지켜내고 있었던 것이다.

<‘러시아판’ 어그부츠를 신은 러시아 할머니들>


물론 러시아의 모든 이들이 어그부츠를 신고 다니진 않았다. 지금은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어 러시아에도 몇 년째 ‘따뜻한’ 겨울이 지속되고 있지만, 1월 평균 온도가 영하 15도에서 20도를 넘나들던 1994년, 워커를 신고 다니던 나는 미끄러운 얼음길에 하루에 한 번 이상 엉덩방아를 찧곤 했는데, 러시아 패피들은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니스커트에 뾰족구두를 신은 채 꽁꽁 얼어있는 얼음판 위를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총총걸음으로 빠르게 걸어다녔다.

한껏 멋을 부린 러시아 여성들이 얼음판 위를 빠르게 걸어다니는 것도 신기했지만, 어그부츠만큼이나 내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눈비에 약하기 그지없어 보이던 그들의 가죽 부츠가 크게 상함 없이 모양새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루는 우연히 지하철 안에서 한 여성이 핸드백에서 뭔가를 꺼내들더니, 마치 파스를 바르듯 구두 위에 바르는 장면을 목격하게 됐다.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의 경우, 전투화 손질을 위해 구두약에 대한 정보를 기본적으로 알고 있겠지만, 구두약을 특별히 사용할 일이 없는 우리에게 눌러서 바르는 ‘액상 구두약’은 그야말로 놀라운 물건의 발견이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대표 구두약 회사인 ‘말표 구두약’에서 액상 구두약을 출시한 것이 1978년이고, 그 액상 구두약이 실제로 일반인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 중반을 지나서이니, 러시아에서 거의 처음 보다시피한 바르는 구두약은 그야말로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한 새로운 물건이었던 것이다. 짐작하건대, 러시아에서는 여성들도 마치 립스틱을 들고 다니듯 구두약을 핸드백에 넣어 다니면서 수시로 구두를 손질하는 것을 보니, 이미 오래전에 액상 형태의 구두약이 보급된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 덕분에 겨우내 살포되는 염화칼륨의 위협으로부터도 구두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어그부츠 외에도 러시아에서 눈길을 끄는 패션 아이템이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모피’였다. 90년대 초중반만 해도 러시아에서 판매되는 모피값은 한국의 절반 가격에도 미치지 않았고, 얼마 전까지 관광차 러시아에 온 사람들이 러시아 황실 도자기를 쇼핑 필수템으로 정하고 휩쓸어가듯, 당시에는 관광객들 사이에서 모피와 호박을 사 가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고 한다. 다만 러시아에서 판매되는 모피와 호박이 모두 디자인이나 세공이 많이 뒤처진 관계로, 한국에 가져와서 다시 ‘재가공’을 맡겨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90년대 초중반까지 모피를 걸친 러시아 아주머니들은 그렇지 않아도 풍성한 몸매에 모피의 부피감까지 더해져서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우량 아기곰 형상이었다.

<1990년대 러시아 여성들이 입었던 다양한 모피코트>

어찌 되었든 간에 아직은 모피나 호박에 관심을 가질만한 나이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철과 거리 곳곳에서 여성들이 걸치고 다니는 각양각색의 모피코트는 어린 나의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오로지 밍크만으로 만드는 줄 알았던 모피코트는 상당히 다양한 동물의 ‘털’로 만들어진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이후 한동안 학교나 시내를 오가는 지하철이나 트롤리 버스 안에서 다양한 모피코트를 볼 때마다 털의 윤기와 색상을 토대로 그 소재를 나름대로 추측해보는 일이 하나의 취미처럼 자리잡기도 했다.

남성들의 경우, 열에 아홉은 대부분 가죽점퍼에 살짝 노란빛이 감도는 커다란 렌즈를 장착한 잠자리 형태의 안경을 많이 쓰고 다녔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학교에 계시던 러시아 선생님께서도 비슷한 형태의 안경을 끼고, 가죽점퍼를 걸치고 다니셨기에, 그 모습은 오히려 익숙했다. 다만 모피코트를 입은 여성과 가죽점퍼를 걸친 남성을 바라보면서, 원래 가죽과 모피는 관리를 잘 해줘야 하는데 저렇게 눈비를 계속 맞도록 방치하면서 입어도 되느냐는 의문이 생겨났다. 무슨 특별한 그들만의 비법이라도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방치하면서 입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생각. 멍멍이도 고양이도, 호랑이도, 사자도, 여우도, 밍크도 다 같이 눈비를 맞으면서 사는 동물이건만, 그들이 눈비를 맞았다고 해서 특별히 뭔가를 관리하진 않는다는 매우 평범한 사실이 떠올랐다. 아마 고양이나 고양이 과의 호랑이 사자 정도는 그루밍을 하면서 비에 젖은 자신의 털을 다듬을 수는 있겠지만, 나머지 동물들은 그저 부르르 몸을 한 번 떨면서 물기를 쳐내는 것이 전부 아니던가. 그러고 보니 러시아인들이 눈이 내리거나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와중에 우산 하나 받치지 않고 외투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쓴 채 아무렇지도 않게 모피나 가죽을 걸치고 다니는 일이 어쩌면 상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5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러시아의 겨울 풍경은 많이 바뀌지 않았다. 25년 전의 칙칙하고 촌스러운 색감에서 탈피한 세련되고 화려한 색상과 디자인을 갖춘 옷들이 거리를 휩쓸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눈과 비를 굳이 피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모피와 가죽 코트를 걸치고 거리를 활보한다. 아마도 이것 역시 우리보다 훨씬 더 예전에 사치품이 아닌 일상품으로 모피를 걸치고 다녔던 러시아인들의 노하우가 아닐까 싶다.


<그림 4. 눈 내리는 날에도 변함없는 러시아인들의 모피와 가죽 사랑>

아마 러시아에서 유학한 분들은 누구나 한 번쯤 ‘코트 걸이’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겪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코트 걸이’ 실랑이는 대부분 겨울철에 많이 일어나곤 하는데, 비교적 옷차림이 가벼운 늦봄에서 초가을까지는 옷 보관소에 들려서 옷을 맡길 일이 드물지만, 두툼한 외투를 꺼내입기 시작하는 10월 중순부터는 이미 도서관이나 극장, 미술관에 들어갈 때 옷을 맡기고 들어가는 일이 필수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옷 보관소 문화가 아직 익숙하지 않던 처음에는 옷을 맡길 때마다 옷 보관소의 아주머니가 상당히 불만에 찬 말투로 뭔가 혼잣말을 계속하길래 왜 저러나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머니는 도저히 못 참겠는지 러시아인 특유의 퉁명스럽고도 전혀 화나지 않았지만 화내는듯한 말투로 이렇게 말을 걸어왔다. “왜 네 옷에는 고리가 없니?”. “원래 없어요, 그냥 모자로 거세요”. 그랬더니 되돌아오는 아주머니의 답변. “그러면 네 옷이 망가지잖니, 다음에 올 때는 고리 만들어 오도록 해!!” 행여 내 옷이 망가질까봐 걱정해주시는 건 감사한 일지지만, 결국 나는 고리를 만들지 않고,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고리를 ‘만들지 못하고’ 계속 잔소리를 들으면서 끝까지 버텼다.

<러시아 트레티야코프 갤러리 신관 내 물품보관소>


이후 겨울철에 러시아를 방문할 일이 생기면 먼저 입고 갈 외투 안에 고리가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고리가 없으면 어쩔 수 없지만, 다행히 고리가 보이면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박물관이나 미술곤에서 옷을 맡길 때 그 문제의 ‘고리’를 부여잡은 채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외투를 건넨다. 물론 그 어떤 핀잔도 듣지 않은 채 교환용 번호표를 부여받고 물품보관소를 유유히 걸어 나오는 것은 덤이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꽤 많은 사람이 극장이나 미술관 입구에 있는 ‘물품보관소’에 자신의 옷이나 소지품을 적극적으로 맡기곤 하지만,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만 해도 세종문화회관이나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러 갔을 때 굳이 물품보관소에 별도로 옷을 맡기지 않고 그대로 입장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 역시 우리에겐 여전히 생활화되지 않은 살짝 ‘낯선’ 문화 중 하나이지만, 일상 속에서 문화를 향유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러시아인들 사이에서 먼저 구축된 ‘현명한’ 시스템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렇듯 찾아보면 러시아에는 우리보다 먼저 존재했던, 혹은 그곳에서의 생필품이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로 가서 ‘패션 아이템’이 된 여러 가지 신박한 물건들이 있다. 이제는 러시아에서도 파리나 밀라노 못지않게 수많은 패피들이 매일같이 화려하고 개성 넘치는 옷을 걸치고 거리를 활보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또 10년 후, 혹은 20년 후에 우리보다 러시아에 먼저 존재하던 어떤 신기한 물건이나 시스템이 발견될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일지 지금부터 조심스럽게 관심을 가지고 주변을 관찰해보는 것도 지루한 일상을 잠시 벗어나게 해주는 작은 활력소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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