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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글렙 스트루베의 문학적 생애와 그의 저서에 대하여
분류문학
국가 러시아
날짜2020-03-16
조회수631
첨부파일

러시아 문학사에서 글렙 스트루베(Г.П.Струве, 1898-1985)는 러시아 은세기에 활동한 작가와 시인에 대한 날카로운 평론으로 큰 발자취를 남긴 비평가 겸 러시아문학사가로 평가 받는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러시아에서 본격적으로 연구되면서 현재까지도 인문학자들에게 아카데미적인 욕구를 자극하는 ‘러시아 디아스포라 문학’분야에서 스트루베가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1956년 뉴욕과 1984년 파리에서 발간된 스트루베의 저서 <러시아 망명문학: 해외문학의 역사적 고찰의 실험>(Русская литература в изгнании: опыт исторического обзора зарубежной литературы)은 러시아 혁명과 내전으로 본격화된 러시아 디아스포라 문화 및 문학 연구의 가장 중요한 저서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러시아 망명문학: 해외문학의 역사적 고찰의 실험>

스트루베의 <러시아 망명문학>은 다년간에 걸친  저널리즘 활동의 결과에 의해 창작된 것으로, 비록 저자가 1918년 망명 전 짧게 살았던 소련에서 형식주의에 큰 관심을 가졌지만, <러시아 망명문학>에서 그의 글은 매우 간결한 문체로서 가독성이 뛰어났다. <러시아 망명문학>의 가치는 러시아 디아스포라 문학을 포함한 러시아 문학 역사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 그 고찰을 위해 수집한 방대한 자료가 그 저서에 포함되어 있다는 데 있다. <러시아 망명문학>은 러시아 디아스포라역사에서 가장 혼란하고 척박한 시기라고 여겨졌던 1930년대- 1940년대를 끈질긴 생명력으로 연명한 해외 러시아 문학의 연구에 대한 결정판으로 평가 받고 있다. 알려진 대로, 1920년 중반 이후 유럽의 여러 도시(베를린-프라하-파리)에서 러시아 망명 공동체를 형성, 그 속에서 삶을 지탱해온 문학가들은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다. 창작의 영감이 솟아나는 문학적 생명의 땅으로부터의 이탈, 공산화 된 러시아에 남아 있는 가족 및 지인들과의 지속적인 접촉의 부재에서 오는 정신적 우울은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또한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1차 망명물결에 속한 ‘아들세대’ 작가들을 포함한 젊은 세대의 모국어 사용의 회피, 2차 세계 대전의 비극적 충돌로 인한 러시아어의 사용의 축소 등은  러시아 망명공동체가 마주 해야 할 또 다른 슬픈 현실이었다. 여기에 많은 유명 러시아 작가들의 사망은 잡지와 신문의 발간 부수의  큰 폭의 감소를 가져왔다. 이 결과로 낮아질 대로 낮아진 출판 사업의 수익률은 밑바닥까지 내려갔다. 이러한 비참한 시기 망명지인 유럽의 여러 나라의 정치 및 종교단체에서 제공하는 보조금과 개인 후원금은 사장되어 가는 해외 러시아 출판 사업에 한줄기 빛이었다. 스트루베의 <러시아 망명문학>도 이러한 과정 속에서 나온 역작이었다.

스트루베의 <러시아 망명 문학>은  크게 2개의 장으로 구성 되어 있는데, 첫번째 장은 ‘러시아 해외 문학의 형성((1920—1924)’의 제목이 붙어 있고 두번째 장의 주제는  ‘러시아 해외 문학의 발전(1925—1939)’이다.   <러시아 망명 문학>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 내용 및 특징은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스투르베는 혁명 이전부터 넓은 대중성을 가진  망명 1차 물결 구세대 디아스포라 작가들의 작품경향의 연속성에 대해 자세히 분석하고 있는데, 그에 의해서 연구된 작가들은 이반 부닌(И.А.Бунин,1870-1953), 이반 슈멜레프(И.С. Шмелев, 1873-1950), 보리스 자이체프(Б. К. Зайцев, 1881-1972), 알렉세이 톨스토이(А.Н. Толстойб 1883-1945),  알렉산드르 쿠푸린(А.И. Куприн, 1870-1938) 등이다. 둘째, 구소련 붕괴 후, 러시아에서 재평가되어 문학적으로 높은 가치가 인정된 블라지미르 나보코프(В.В. Набоков, 1899-1977), 니나 베르바로바(Н.Н. Берберова, 1901-1993) 같은 러시아 1차 망명 물결의 ‘신세대’ 작가들은 스트루베의 망명문학연구에 있어서 그렇게 중요한 작가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보코프, 베르바로바, 게나지 알렉세예프(Г.И.Алексеев,1932-1987), 로만 굴(Р.Б.Гуль,1896-1986),  이반 루카슈(И. С. Лукаш, 1892-1940)등의  신세대 작가들의 이름들과 작품들은 자주 언급되어, 이후 러시아 망명문학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셋째, 1차 망명물결의 두 세대, 즉 구세대와 신세대의 간의 논쟁을 흥미 있게 다루고 있다. 특히 사실주의적 러시아 문학의 전통을 부정하는 젊은 세대들을 비판하는 구세대들의 고압적이고 훈계적인 태도의 결과는 젊은 작가 중심의 급진적인 정치 단체의 출현 및 러시아로 귀환하는 젊은 세대 작가들의 작가의 증가로 나타났다 언급은 러시아 문화사 <나타샤 댄스>에서 서술되고 있는 마리나 츠베타예바(М.И.Цветаева, 1892-1941)의 소련으로 귀환, 그 이후의 비극적인 자살, 그녀의 남편 에프론의 멍청한 결정을 연상시켜 매우 흥미롭다. 사실 마리나 츠베타예바는 20년간의 처참한 망명 생활을 뒤로하고, 1939년 소련으로 돌아간 것은 러시아 대지를 밟아보고 싶었던 그녀의 욕구와 오래되고 고통스러운 내적 투쟁의 결과였다. 넷째, 1920년대 후반부터 <러시아의 의지>(Воля России), <현대수기>(Современные записки» 같은 저명 망명 학술지를 통하여 망명문학의 형성, 발전, 과제에 대한  논쟁이 타오르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내용이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서술된 책이 바로 스트루베의 <러시아 망명문학>이다. 

다섯째, 모든 형식의 문학적 창작이 어려운 시기였지만 상대적으로 시는 어떤 장르보다  전성기를 누렸는데, 그 중심에 있었던 콘슨탄틴 발몬트(К.Д.Бальмонт, 1867-1942), 지나이다 기삐우스(3.Н.Гиппиус, 1869-1945), 마리나 츠베타예바, 바체슬라브 이바노프(Вяч. Иванов, 1866-1949)뿐만 아니라, 니콜라이 구밀료프(Н.С. Гумилев. 1886-1921)의 <시인 조합>(Цех поэтов)과 관련된 시인들 및 파리시인 그룹도 스트루베는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글렙 스트루베>

스트루베의 문학적 생애

스트루베는 1898년 4월 19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표트르 베른하르도비치 스트루베(П.Б. Струве)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마르크스주의자에서 보수주의  성향으로 사상적인 급선회를 한 표트르 스투르베는 아들이 전통적인 고전 교육을 받기를 바랐지만, 그의 희망과는 반대로 아들 스트루베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8년 과정으로 이루어진 뷔로브크(Выборг)의 상업학교에 입학하여 1916년에 졸업했다. 인문학 및 고전 문학과는 전혀 관련 없는 상업학교의 시절 동안 형성한 문학적 취향과 문학인들과 교류는 스트루베의 문학적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실제로 스트루베는 이시기에 블록과 벨르이의 시, 아포론(Аполлон)의 단편을 읽으면서 문학적인 소양을 길렀고, 학생들이 편집하는 학생신문에 시와 기사를 기고했다.  또한 스트루베는 상업학교 동료 니콜스키(С. А. Никольск)의 형을 통해 페트로그라드 대학교(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의 헝가리토론회 및 푸시킨 학회와 관련된 시인들의 연합과 알게 되었다. 그 시기 알게 된 대표적 시인으로는 즐로빈(В. А. Злобин), 오쭈프(Н. А. Оцуп), 로줴스트벤스키(В. А. Рождественский), 마이젤스(Д. Л. Майзельс), 네이스네르(Л. М. Рейснер), 아브데예프(Н. А. Авдеев)등이 있다. 이 시인 연합의 시인들은 광적으로 푸시킨을 숭배했고, 이러한 자신들의 성향을 작품에 강력하게 반영했다.  연합에서 푸시킨은 상징적인 인물이었고 매우 고전적으로 강조되었다. 러시아에서의 짧은 젊은 시인들과의  교우는 아버지와 함께한 영국여행, 그 이후 발발한 1 세계대전시기 전투의 참가로 아쉽게도 막을 내렸다. 1918년 망명 시기 초기 문학적 경력은 시 분야에서 시작되었는데, 그의 시는 <조정간>(Руля), <부활>(Возрождения), <러시아 사상>(Русская мысль), <러시아와 슬라브인들>(Россия и славянство), <사슬>(Звена), <현대수기>(Современные записки), <오늘>(Сегодня)등의 망명학술지 및 신문에 실렸다. 스크루베는 이 시들 중에서 스스로 질적으로 높게 평가한 시들을 발췌하여 시집 <초라한 집>(Утлое жилье)을 발간했다. 이 시집은 두 판권으로(1965년, 1978년) 출판되었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다음의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 상징주의자들의 영향 아래 작성된 시들(<그림자>(Тени), <거대한 유혹의 도시>(Город великих соблазнов), <우리는 불명료한 기다림에 살고 있다>(Мы живем в туманном ожиданьи), 둘째, 비극적인 경향의 시들(<무질서한 정원의 나무들>(Дерев неубранного сада), <나는 갑자기 안도감을 느낀다>(Я вдруг почую облегченье), <아는가: 세계는 단지 불안정한 삶...(Знай: мир лишь утлое жилье..), <나는 눈 위에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적었다...>(Я на снегу писал любимой имя. .), 셋째, 인간 영혼의 해방과 신과의 재결합에 관한 시들이다. 기교의 완벽함을 특징으로 하는 스트루베의 시는 동시대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러시아인들에게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았다. 시 창작 이외에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스트루베의 문학 활동은 저널리즘과 출판 분야에서 이루어졌는데, 이 활동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자료를 수집 정리하였고 편집에서는 최고가 되었다. 이러한 경험은 러시아 망명문학에서 전문가가 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특히 작가들의 사적인 편지가 <러시아 망명문학>의 가치를 높였다.

   1922년 봄 옥스퍼드에 있는 바리온 칼리지(Баллион колледж)졸업 한 후, 스트루베는 프라하를 거쳐 베를린에 정착하여 1924년 봄까지 아버지가 편집하는 <러시아 사상>(Русской мысли)을 인쇄하는 일을 담당했다. 1924년 이후, 스트루베는 파리로 이주하여 망명 공동체내에서 러시아 청소년 국외 교육 촉진위원회 사무국장과 러시아 국가위원회 사무 총장을 지냈다. 그리고 1925년 여름 스트루베는 구카소프(Гукасов А. О.)가 설립한 <부활>(Возрождение) 신문 편집 일원으로 일했고, 1927년 8월에는 아버지와 함께 신문 <러시아>(Россия) 창간했다. 1928년에 <러시아와 슬라브인들>(Россия и славянство)을 출판한 이후, 스트루베는 1932년부터 런던 대학에서 강사로 일했다.

1946년 미국 대학에서 강사로 초청된 이후, 스트루베는 1947년부터 버클리에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 교수로 1967년까지 일했다. 1960년 스트루베는 <캘리포니아 슬라브 연구>(California Slavic Studies)의 편집자가 되었는데, 이 학술지는 그 당시 가장 권위 있고 내용이 풍부한 학술지 중의 하나였다. 또한  스트루베는 10년 동안 <국제 문학 연맹>(Международное литературное содружество)의 출판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71년에는 스트루베는 토론토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1973년에는 슬라브 학문에 공헌한 업적을 인정받아  미국 슬라브 연구 진흥 협회에서 제정한 상을 받았다. 1977년에는  미국에 있는 러시아 학술협회 명예 회장으로 선출된 스트루베는 1978년에는 슬라브 연구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중의 하나인 캘리포니아 대학교 표창장을 수상했다.

러시아 문화를 포함한 슬라브학의 뛰어난 학자로 평가받는 스트루베는 미국의 슬라브 학문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연구결과를 내고 있는 대표적인 슬라브 연구자들(게르만 예르몰라예프(Герман Ермолаев), 로버트 휴즈(Роберт Хьюз), 시몬 카를린스키(Симон Карлинский), 블라지미르 마르코프(Владимир Марков), 알렉스 슈테인(Алекс Штейн), 에르빈 투틸니크(Эрвин Тутыник)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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