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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코로나가 바꾼 러시아의 일상 풍경
분류지역문화
국가 러시아
날짜2020-03-16
조회수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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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의 확산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는 통에 대한민국 일상 풍경도 많이 바뀐 것 같다. 어디를 가든, 모든 이들에게 마스크는 필수 착용템이 된 지 오래다. 코로나로 인해 쇼핑 문화도 많이 달라졌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고자, 혹여라도 확진자와 동선이라도 겹치면 어쩌나 하는 염려에 오프라인 쇼핑보다 온라인 쇼핑을 더 선호하는 추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오프라인 쇼핑! 온라인 쇼핑에 사람이 몰리다 보니 정작 내일 필요한 물건이 똑 떨어지기도 하고, 여전히 선택의 폭에 제한을 두는 온라인 몰의 운영 방식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며칠을 고민하다가 중무장을 한 뒤에 오프라인 쇼핑에 나서곤 한다.

그렇게 큰맘을 먹고 나서서 마트에 도착하면, 각양각색의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식량을 조달할 카트를 하나씩 앞에 두고 에스컬레이터 양쪽을 오르고 내린다. 아직 주변에서 방독면을 착용한 사람을 마주친 적은 없지만, 초기 중국과 유럽에서는 갑작스러운 코로나 확산세로 인해 미처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아예 방독면을 착용한 사람도 종종 목격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엊그제 급하게 사올 몇몇 음식 재료들이 있어서 답답한 마음에 마스크를 동여매고 마트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면서 또다시 엉뚱한 상상의 나래를 펴 보았다. 지금은 낯설고 다소 두렵기도 한 이 풍경이 어쩌면 아주 가까운 미래의 모습이 아닐까... 마스크를 착용하고 카트를 끌며 에스컬레이터를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콘텍스트는 살짝 다르지만, 흡사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The Wall’에 삽입된 “Another Brick In The Wall”의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아니 오히려 몇 년 전에 개봉했던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 등장하여 그야말로 엄청난 분노를 유발했던 ‘임모탄’을 비롯한 몇몇 인물들을 연상시킨다. 상상했던 미래의 현실화가 어쩌면 더 빨리 다가올 수도 있겠다는 긴장감에 마스크 코 부분의 와이어를 다시 한번 꼭 조여본다. 봄마다 쏟아지는 중국발 황사에 사람들의 건강 염려증, 게다가 코로나 학습효과까지 더하여 이번 사태가 지나갈 즈음이면 각 가정마다 마스크를 상시 비치하는 것은 아마도 매우 일상적인 풍경이 될 것 같다.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질주> 中 한 장면>


그런데 이 마스크도 문화에 따라 착용해야 할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있었으니, 바로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지역이다. 코로나 같은 전염병이 돌기 이전, 유럽과 러시아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세 가지 정도로 정의되었다. 아픈 자와 나쁜 자 혹은 범죄자, 그리고 의료종사자.

이쯤에서 다시 1994년의 상황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전날부터 몸이 으슬으슬 한 것이 어째 감기가 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던 어느 날, 아침에 열이 오르면서 상태가 좋지 않음을 직감했지만, 전날 숙제해 놓은 것이 아깝다는 매우 단순한 이유로, 보통 때 같으면 아프다는 핑계로 당연히 집에서 쉬었을 내가, 그날따라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결의에 찬 채 중무장을 하고 기숙사를 나선 적이 있다. 당시 모스크바국립대 산하 예비학부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나는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타고 수업시간에 맞춰서 등교했는데, 수업 시작 전 오전 조회에서 항상 미소 띤 표정으로 학생들을 바라보던 선생님이었건만, 그 날따라 뭔가 불편한 기색이 느껴졌다. 결국 “수, 너는 오늘 아픈 것 같은데 그냥 집에 가는 게 좋겠다”라는 담임선생님 말에, 당시 러시아 문화를 잘 모르던 풋내기 연수생은 “아니요, 전 수업을 들을 수 있어요”라는 ‘문화적 무지함’을 드러내는 참사를 빚고 말았다. 그 후 이어진 담임선생님의 한마디, “수, 너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감기에 걸리면 안 되잖니? 다른 사람들을 위해 너는 집으로 가는 게 좋겠구나.” 지금은 그 말의 의도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물론이요 100% 동의하는 바이나, 아파도 등교하면 착한 아이라고 칭찬받던 ‘다른’ 문화 속에서 성장해왔던 내게 러시아 선생님의 다소 ‘냉정한’ 말은 당시 내게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알게 되었다. 러시아인들은 전염병에 매우 민감하고, 이미 예전부터 ‘자가격리’가 일상문화로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을.

이와 관련된 또 다른 에피소드 하나. 역사를 강의하던 여선생님 중 러시아어로 ‘병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자발렐라(Забалела)’를 별명처럼 달고 다니시던 분이 계셨다. 워낙 마르고 작은 분이시기도 했지만, 연세도 많아서 수시로 잔병치레가 많은 할머니 선생님이셨다. 그래서인지 한 번 수업하시면 다음번 수업은 거의 거르시고, 다음 주에 얼굴을 뵙는 것이 다반사였다. 학생들끼리는 우스갯소리로 “‘Забалела’ опять забалела”라는 농담 섞인 말을 주고받곤 했다. 철모르던 시절에 그런 농을 주고받긴 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당시 ‘자발렐라’ 선생님은 나름 철저한 ‘자가격리’를 실천하고 계셨던 것이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아무리 독감이 유행하고 날씨가 추워도 마스크를 착용한 러시아인들을 일상에서 찾아보기는 힘들다. 여성들의 경우, 마치 정교회 예배를 드리러 들어갈 때처럼 머플러로 머리를 완전히 감싸고 다시 목 전체와 코까지 이중으로 머플러를 두르고 다니곤 한다. 예나 지금이나 러시아 여성이 머플러를 머리부터 감싸 두른 모습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어딘지 모르게 옛날 영화에 등장하는 여주인공과 같은 은근한 분위기와 청초함이 느껴진다. 한편 남성들의 경우 샤프카를 쓰면 썼지 마스크를 하는 경우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나마 시대가 변하고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따뜻해진 겨울 덕분에 젊은 사람들은 두껍고 투박한 샤프카를 벗어던지고 대신 야구모자를 더 많이 착용하고 다니는 추세이다. 이제 일상에서 샤프카를 착용하는 사람은 나이가 지긋한 노신사나 군인들만 남게 될 듯하며, 아마도 머지않은 시기에 샤프카는 과거 소비에트를 추억하는 유물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시 마스크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역시 중국발 황사가 심해지기 이전에는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그다지 일상화되어 있지 않았던 것 같다.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초등학생 시절 유난히 감기에 잘 걸렸던 내가 학교에 갈 때마다 엄마가 귀에 걸어주시곤 했던 하얀색 ‘방한대’가 성인이 되기 이전 일상에서 마스크를 착용했던 전부가 아니었나 싶다.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코로나 확산세가 강해지던 1월 말과 2월 초 뉴스를 보더라도, 러시아에서는 중국과 국경을 맞댄 극동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마스크가 뭐예요?”라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

하지만 2월 중순을 지나면서 예카테린부르크 서쪽의 러시아 내 유럽지역에서도 코로나에 대한 경계심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우리나라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정점을 찍은 2월 말부터, 염려했던 바대로 러시아는 연해주를 비롯한 극동 지역을 중심으로 하나둘씩 아시아에서 온 입국자들의 발열 체크와 격리 조치를 시행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모스크바를 유일한 입출국 통로로 지정하며 실질적으로 하늘길마저 걸어 잠그기 시작했다. 설령 무사히 입국하더라도, 3월 3일부터 실시된 14일간의 자가격리 조치는 입국을 무색하게 만들며 손발을 꽁꽁 묶어버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철저한 사전 조치 덕분인지, 아니면 러시아 유럽지역이 이태리를 중심으로 코로나 확산세가 날로 강해져 가는 중부유럽과 최초의 진원지인 중국으로부터 떨어진 ‘중간’ 지대에 위치해서인지 몰라도, 3월 14일 기준 러시아 내에서 코로나 확진자는 총 52명으로 확인된다. 그중 수도 모스크바와 모스크바주(область)에 총 29명의 확진자가 있으며, 3월 12일에 안타까운 첫 번째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다지 상기하고 싶은 수치는 아니지만, 3월 14일 기준, 전 세계적으로 14만 5,257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5,424명이 사망자가 발생한 것을 고려해 볼 때, 한편으로는 이제 시작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상당히 긍정적인 수치라 말할 수 있다. 같은 날, 체코 철도청의 요청으로 ‘모스크바-프라하’ 구간의 철도운행도 중지되었다. 하지만 ‘프라하-모스크바’ 구간의 직행열차는 원래대로 운행된다. ‘우랄 항공’ 역시 약 30편에 이르는 국제 항공편을 모두 취소시켰으며, 취소 명단 속에는 이태리, 스페인, 독일, 프랑스, 인도발 비행편이 포함되어 있다.

러시아는 아직 ‘국경 봉쇄’라는 극단의 조치를 취하진 않았지만, 입출국 통로를 모스크바 셰르메티예보 공항으로 일원화시키고, 14일간의 자가격리라는 ‘우회적인’ 입국 금지 조치를 시행함으로써 아직은 나름 선방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참고로 러시아 정부령은 아니지만, 모스크바시에서 3월 5일 자로 내려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확산 위협에 따른 상향준비단계 도입’ 조치에 따라, 해외에서 입국하는 러시아 자국인은 물론, 러시아에 입국하는 모든 외국인은 14일간 자가격리 조치를 실시해야 하며, 설령 여행 일자가 14일 미만에 해당하더라도 원래 계획했던 여행 기간 내내 무조건 자가격리 지침에 따라 정해진 장소를 이탈하면 안 된다. 소위 ‘모스크바 목록’으로 불리는 명단에 포함된 ‘입국 후 무조건 14일간 자가격리’ 조치에 해당하는 국가는 총 7개국으로,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이란, 프랑스, 한국, 중국‘이다.


 <'중국-모스크바' 구간 아에로플로트 승객 대상 기내 체온 검진>

<셰르메티예보 공항 내 코로나 검사를 위해 대기 중인 의료진과 승객들>

코로나 바이러스는 러시아와 모스크바 내의 마스크 수급 상황에도 영향을 줬다. 불과 3개월 전인 작년 12월까지만 해도 약 20루블에 3겹짜리 일회용 의료마스크 3장을 살 수 있었고, 지역 약국에서는 심지어 2루블도 안 되는 가격에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20루블에 한 장을 사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러시아에서도 마스크는 기존 가격 대비 적게는 7배, 많게는 10배씩 가격이 올랐다는 후문이다. 2루블도 안 되는 가격에 마스크를 구매하던 러시아인들에게 이는 분명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이 분명하다.
    

<모스크바 약국 앞에 붙여진 '마스크 없음' 메모>


원래 문화적으로 마스크를 사용할 일이 매우 드물고, 이러한 전염병 확산 상황이 아닌 이상 헤어샵 같은 곳에서나 사용하던 마스크가 갑자기 ‘금스크’가 되어버린 지금, 러시아에서도 결국 우리와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뉴스마다 어디서 만들어진 것인지 서류도 갖추지 않은 마스크들이 포장도 되지 않은 채 몇백 장씩 큰 상자에 담겨 방치된 모습을 비춰준다. 어느덧 우리에게 나름 ‘친근해진’ ‘마스크 없음’이라는 메모는 이제 모스크바 시내 곳곳에서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내일까지 바로 배송’이라는 문구를 내세워 마스크를 판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전화를 해보면 기존 물량은 모두 소화되었고, 신규 주문은 더이상 받지 않는다는 대답만 돌아온다. 어딘지 모르게 데자뷔가 느껴진다. 이를 두고 러시아 언론에서는 기존에 워낙 마스크를 사용하는 장소와 수요가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병원과 살롱이라는 안정적이고 확실한 고객만 대상으로 마스크가 판매되는 바람에, 정작 일반인들에게는 마스크 ‘순번’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스크를 바라보는 문화적 시선이 우리와 다른 탓인지, 현지 언론을 통해서 나오는 모스크바 시내 모습은 의료진과 승객들이 뒤엉켜 부산스럽게 돌아가는 공항 풍경과 달리 전반적으로 매우 안정적으로 비춰진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 출현 이후 모스크바 시내 및 지하철 풍경, 2020년 3월 14일>


마스크 문제로 속앓이를 하던 러시아 정부는 결국 지난 3월 4일, 의료용 마스크와 마스크용 필터, 수술용 장갑과 솜 등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대비 의료용품의 해외 반출을 5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금지하는 법령을 내리기에 이른다. 러시아에 내에서 첫 번째 코로나 확진자가 1월 31일에 처음 보고되었고, 수도 모스크바에서 첫 번째 확진자가 나온 것이 3월 2일이란 점을 고려해 볼 때, 상당히 발 빠른 조치라 할 수 있다.하지만 이런 강력한 격리 조치가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이미 몇몇 굵직한 국제 행사와 스포츠 경기가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 게다가 이제 곧 성수기에 들어가는 관광 시즌을 앞두고 관광객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관광업계의 타격 역시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인들의 경우, 이미 2월 20일 자로 학생, 관광객, 심지어 사업목적 방문객까지 모두 러시아로의 입국이 전면 금지되었다. 금지 조치 이전에도 이미 러시아를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현저히 감소하여 중국인 전용 지불수단인 Alipay의 사용량이 2020년 1월 기준 전년도 동일시기 대비 31.2% 감소하고, 2월 초에는 무려 73.4% 감소된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중국이 재채기하면 전 세계가 감기에 걸린다”는 말이 실감하는 요즘, 모쪼록 러시아를 비롯하여 전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워지는 날이 하루속히 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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