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K(인문한국) 사업단 홈페이지

HK(인문한국) 사업단

웹진 문화로(文化路) 내용 시작

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모스크바 지하철역, 지하에 숨겨진 박물관
분류지역문화
국가 러시아
날짜2020-03-02
조회수758
첨부파일

세계 대도시에서 가장 사랑받는 교통수단 중 하나인 지하철...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도 매일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지하철을 이용한다. 모스크바 지하철 홈페이지에 따르면, 모스크바에는 모노레일과 모스크바 중앙 순환선을 포함하여 현재 15개의 노선과 269개의 역이 운영되고 있다. 수많은 모스크바 지하철역은 역마다 독특한 개성에 따라 디자인되었는데, 그래서인지 다른 나라보다 조금 더 특별하고 웅장하여 모스크바 시민들도 그 아름다움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특히 콤소몰스카야역(Ст.Комсомольская), 타간스카야역(Ст.Таганская) 등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하철역으로 꼽힌다.

 

미적(美的)으로 잘 구성된 아름다운 지하철역 외에도 푸슈킨역, 체호프역, 쿠투조프역 등 러시아 위인들의 이름이 붙여진 역에는 흉상과 동상을 설치하여 각 역명에 맞게 꾸며 놓았다. 그중에는 콘텐츠를 녹여낸 기발한 디자인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더욱 강조한 역들도 있다.

 

위 사진은 모스크바 남북을 가로지르는 9호선 회색 라인 세르푸홉스코-티미랴젭스카야 선(線)(Серпуховско-Тимирязевская Линия) 멘델레예프역의 조명과 내부 장식이다. 근처에 러시아 멘델레예프화학기술대학교가 있어 멘델레예프역으로 명명되었으며, 1988년에 개장했다. 드미트리 멘델레예프(Дмитрий Менделеев)는 최초의 주기율표를 만들어 근대 화학의 기틀을 마련한 러시아의 대표 화학자이다. 멘델레예프역의 남쪽 벽면에는 화학원소 이름과 멘델레예프의 두상이 새겨져 있어 이곳이 멘델레예프역임을 직접적으로 알려주기도 하지만, 플랫폼 홀의 조명은 화학자의 이름을 가져온 지하철역의 특징을 더욱 강조한다. 여러 개의 구를 격자무늬 막대로 연결하여 마치 원자(原子)로 이루어진 분자 모형을 연상하게 만든다. 멘델레예프가 어떤 업적을 세웠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러시아인이라는 것과 함께 그가 화학자임을 유추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디자인이 돋보인다.

마야코프스키역은 2호선 녹색 자모스크보레츠카야 선(Замоскворецкая Линия)에 속하며, 1938년에 개통된 오래된 지하철역이다. 역 이름은 과거에 부르주아적 문학 전통에 반항했으며 볼셰비키 혁명에도 가담한 혁명 시인이자 미래주의 시인인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Владимир Маяковский)에게서 가져왔다. 비록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진 시인은 아니지만, 스탈린이 그를 가장 뛰어난 시인이라 평가하면서 러시아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최고의 소비에트 시인이라는 명성을 지니고 있다.

그의 작품세계와 걸맞게 마야코프스키역도 고전주의나 부르주아 양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지어졌다. 혁신적인 건축 재료였던 스테인리스 철강으로 플랫폼 기둥의 아치형을 만들었고, 여러 개의 돔형으로 움푹 파인 천장 가운데는 소비에트 화가 알렉산드르 데이네카(Александр Дейнека)가 <소비에트 하늘의 24시간>(Сутки Советского Неба)이라는 주제로 디자인한 34개의 모자이크화가 자리 잡고 있다. 아치형 구조와 돔형 천장, 그리고 돔 천장 가운데 그림이나 모자이크가 있는 양식은 일반적인 러시아 정교회 천장 구조와 유사하다. 1914년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마야코프스키역은 모스크바 시민들의 방공호로도 사용됐는데, 폭격을 피해 어두운 지하로 피신하여 불안감에 떨고 있을 시민들이 천장에 장식된 희망찬 소비에트 하늘의 모자이크를 보면서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마야코프스키역은 1939년 뉴욕에서 열린 국제 박람회에서 그랑프리를 받을 만큼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역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전에 볼 수 있는 모자이크와 함께 적힌 마야코프스키의 시(詩)다. 역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승객들을 압도하는 천장의 모자이크는 2005년에 완성되었다. 하늘이 담겨있는 원, 삼각형, 반원 모양 등은 마야코프스키가 활동했던 시절 러시아에서 유행했던 미래주의 회화를 떠올리게 한다. 마야코프스키 필체를 재현하여 적은 문구들과 독특한 타이포그래피들은 정돈되어있기보다 흩어져 있는데, 이러한 배치들이 기존의 시 형식들을 파괴한 마야코프스키의 계단시(Лесенка) 형식을 연상하게 하여 마야코프스키의 특징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한다.



마야코프스키역과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10호선 연두색 류블린스코-드미트롭스카야 선(Люблинско-Дмитровская Линия)에 속하는 도스토예프스키역(Ст.Достоевская)이 있다. 수많은 명작을 남긴 작가 도스토예프스키(Федор Достоевский)의 이름을 딴 이 역은 비교적 최근인 2010년에 개통되었다. 회색과 잿빛이 섞인 보라색으로 디자인된 지하철 플랫폼과 홀은 차분하면서도 다소 무거운 분위기를 띤다. 지하철 플랫폼 복도 기둥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백치』, 『악령』의 장면들이 그려져 있고, 그 끝에는 작가의 커다란 초상화가 마치 플랫폼 쪽을 응시하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복도를 따라 길게 늘어진 흑백 기둥들 사이에 있는 장식들과 그 위의 원형 조명은 마치 영화 필름을 펼쳐놓은 것처럼 보인다.

  특이한 것은 장식을 디자인한 화가 이반 니콜라예프(Иван Николаев)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제외한 3개의 작품 속의 자살과 살인 장면을 그린 것이다.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은 이 장면들에 대해 러시아인들의 찬반 논쟁도 존재하는데, 이에 대해 니콜라예프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주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작품세계의 비극과 심연에 부합해야 한다(Если браться за тему Достоевского, то нужно соответствовать глубине и трагичности его творчества.)”고 설명했다. 도스토예프스키역이 왜 어두운 색상으로 디자인되었는지, 자살과 살인 장면이 왜 채택되었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하는 대답이다.

 
<도스토예프스키 역의 『죄와 벌』의 한 장면. 좌측 윗부분에 라스콜니코프의 살인이 그려져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초상화와 마주한 시선에서 바라본 플랫폼 중앙>
 

최근 러시아는 도시계획 사업의 일환으로 도시의 공간구조를 설계하고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추세를 보인다. 특히 각 지역 혹은 국가의 대표적 문화콘텐츠를 이용하여 공간을 조성하기도 하는데, 2005년에 완성된 마야코프스키역의 천장 모자이크와 2010년에 지어진 도스토예프스키역의 디자인을 고려해보면 모스크바도 그 흐름에 적극적으로 합류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이 두 역은 통일된 디자인에 단순히 동상을 설치하거나 기념비를 세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역 전체를 작가의 업적과 작품세계를 표현한 디자인을 적용하여 그들과 공유할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모스크바 지하철은 마야코프스키역과 도스토예프스키역을 문화·예술적 소프트 파워를 이용해 공간을 조성하고 브랜딩하여 역을 단순히 이동할 때 스쳐 지나가는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모스크바의 계획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개통된 지 85년의 역사를 가진 모스크바 지하철은 이제 시민들의 이동뿐만 아니라 박물관들과의 공동 프로젝트인 메트로투어(Metrotour)를 통해 떠오르는 문화관광지로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44개의 문화유산으로 조성된 지하철역들을 대상으로 색다른 투어 코스를 마련하여 모스크바 시민뿐만 아니라 해외 관광객들까지 매료시키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특별했던 지하철역을 투어하는 <모스크바 지하철, 1943-1944>, 다양한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역들로 이루어진 <사회주의 지하 교회>, 그리고 <폐쇄된 지하철역> 등 모스크바 지하 깊숙이 숨어있는 역사와 문화들을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사실 소비에트가 붕괴된 지 30년이 지났건만 러시아의 변화가 흘러간 시간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를 자주 듣기도 한다. 수도 모스크바는 과거에 비해 한층 밝아진 모습이긴 하지만 도처에서 여전히 과거의 음울한 분위기가 감지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여전히 경직되고 딱딱한 분위기의 지상과는 달리 러시아의 찬란한 문화와 아름다움으로 채워져 가는 모스크바 지하철을 통해 변화하는 러시아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꽤나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목록

웹진 문화로(文化路) 내용 끝

TOP

저작권 표시 및 연락처

06974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로 84 법학관(303관) 1420호 / E-mail: fsicau@cau.ac.kr / TEL: 02-820-6355 / FAX: 02-822-00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