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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우리를 안전한 곳으로 안내할 푸른기차는 언제 올 것인가?
분류공연예술
국가 러시아
날짜2020-02-17
조회수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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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의 1월부터 중국 후베이성(湖北省) 우한(武汉)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이하, 코로나19)는 우리 사회를 단숨에 패닉상태에 빠뜨렸다. 바이러스의 감염에 대한 두려움도 문제지만,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인한 나비효과는 사회‧경제적 그리고 심리적인 불안과 피해로 그 후폭풍이 매우 심각하다. 국가 감염병 대응단계가 위기에서 경계로 격상되며, 각 대학들은 개강의 2주 연기, 학술대회, 입학식, 졸업식 등 교내 주요행사의 취소 및 연기, 교원들의 해외학술대회 참가의 자제 등의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마치 우리의 일상이 일시정지되어 공황상태에 빠진 듯하다. 어느새 마스크와 손세정제는 생활필수품이 되었고, 홈쇼핑에서 단 6분 만에 마스크가 품절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였으며, 마스크를 구매하지 못해 불안해하는 시민들의 심리를 이용한 마스크 판매사기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매일 뉴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코로나19의 확진자의 수와 상태 그리고 그들의 동선을 확인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가 코로나19의 불안감에 떨고 있다. 언제쯤 이 코로나19 신드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20세기 초 파리지앵들을 뜨거운 태양과 푸른바다가 있는 지상낙원 프랑스 남부의 코트 다쥐르의 휴양지로 인도해주었던 푸른기차(Le Train Bleu)가 있다면 이것을 타고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떠나고 싶은 2020년의 2월이다.

일상을 벗어나 지상낙원으로 향하는 푸른기차(Le Train Bleu)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 사람들은 고급스러운 침대칸이 있는 기차를 타고 편안하고 럭셔리한 장거리 여행이 가능해졌다. 국제침대차회사(CIWL)이 1883년 파리와 이스탄불을 오가는 오리엔트 특급열차와 같은 해 12월 프랑스 북부항구도시 칼레(Calais)를 출발하여 파리를 경유해 니스를 비롯한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들이 밀집해 있는 리비에라지역을 거쳐 로마까지 가는 푸른기차(Le Train Bleu)가 개통했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의 상류사회에서는 이러한 호화로운 특급열차를 타고 여행하는 것이 대유행처럼 번져나갔다. 푸른기차는 유럽 북부의 싸늘하고 침침한 곳을 벗어나 뜨거운 태양이 있고 푸른 바다가 있는 아름다운 에덴의 동산으로 안내해 주는 환상적인 특급열차의 대명사로 인식되었다. 영국의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Agatha Christie, 1890-1976)는 오리엔트 특급열차와 푸른기차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 『푸른기차의 미스터리(The Mystery of the Blue Train)』(1928), 『오리엔트 특급살인(Murder on the Orient express)』(1934)을 발표하여 이 기차들이 더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이 기차들은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더불어 평생 꼭 한번은 타보아야 할 버킷리스트에 포함되는 기차로도 손꼽힌다. 20세기 초 시대를 풍미하던 특급열차들의 리즈시절도 잠시 비행기 등의 교통수단의 발달로 오리엔트 특급열차과 푸른기차는 그 운행구간을 점점 축소하다가 각각 2009년과 2007년 운행을 중단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현재 파리에 리용역에는 푸른기차(Le Train Bleu)라는 동명의 레스토랑이 운영되고 있다. 이 곳은 벨에포크 시대 양식으로 디자인되어 당대의 푸른기차의 화려함을 느껴볼 수 있다.

<다리우스 미요의 발레음악 <푸른기차>(1922) 음반 표지>
 

20세기 초를 대표하는 새로운 기술혁신 시대의 아이콘인 푸른기차는 1922년 12월 9일 강철이라는 신소재로 한층 업그레이드되어 유럽에서 가장 성공한 상위 1%의 부유층들만 탈 수 있었던 초호화 기차, 즐겁고 화려한 바캉스 그리고 고상한 여행을 즐기는 상류층들을 상징이 되었다. 따라서 푸른기차는 유럽 사람들에게 그들을 아름다운 휴양지로 인도해 줄 것이라는 꿈과 환상을 심어주는 럭셔리 특급열차를 대표하며 발레, 소설, TV 시리즈물의 주요 배경과 소재로 등장하였다. 특히 당대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세르게이 디아길레프가 이끄는 발레뤼스는 푸른기차의 목적지인 프랑스 남부의 휴양지에서 파리 상류층들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그린 단막발레 <푸른기차>를 1924년 6월 20일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초연하여 파리지앵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이끌었다.

발레뤼스의 작품으로 탄생한 발레 <푸른기차>(1924)

발레뤼스의 단막발레 <푸른기차>는 대본 장 콕토, 안무 브로니슬로바 니진스카, 음악 다리우스 미요, 무대미술 파블로 피카소, 무대장치 앙리로랑, 의상 가브리엘 샤넬(코코 샤넬)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참여한 협업 작품이었다.

대본을 쓴 장 콕토가 처음 구상한 <푸른기차>는 발레라기 보다는 오펜바흐풍의 대사가 없는 일종의 오페레타였다. 그는 당시의 세태를 풍자하고 싶어 몇 년간 프랑스 남부의 리비에라의 해변에서 여름을 보내면서 휴양지의 젊은 여성들과 스포츠맨처럼 보이는 남자들을 관찰하며 그들을 작품 주인공의 모델로 삼았다. 무대의 배경으로 1920년대 초 미국의 자본가 프랭크 제이굴드(Frank Jay Gould, 1877-1956)가 개발한 프랑스 앙티브의 쥬엉 레 빵(Juan-les-Pins)의 휴양지를 선택했다. 무대 배경으로 피카소의 <해변을 달리는 두 여인(1922)>을 확대하여 사용하였다.

 

<발레 <푸른기차>의 한 장면과 의상 그리고 주인공들(왼쪽부터 리디아 소콜로바, 안톤 돌린, 장 콕토, 레온 보이치코프스키, 브로니슬라바 니진스카)> [출처_ Hulton Archive Collection, London (United Kingdom)]


새로운 장르의 발레 의상을 맡은 샤넬에게도 큰 도전이었다. 그녀는 과거 도빌(Deauville)에서 보냈던 시기를 회상하며 탄성이 있고 땀을 쉽게 배출 할 수 있어 운동복 제작에 많이 쓰이는 저지(Jersey)원단을 사용한 의상을 제작한다. 남자주인공에게 휴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운동선수용 수영복을 입히고, 골프선수 역을 맡은 보이치코프스키에게는 세련된 영국황태자를 모티브로 하여 트위드 골프 바지와 스웨터에 가로줄무늬 양말 그리고 흰셔츠를 입혔다. 여자주인공인 테니스 선수는 15세에 윔블던 대회에서 우승하여 당시 프랑스와 영국에서 스포츠 스타였던 수잔 랭글런 (Suzanne Lenglen, 1899-1938)을 모델로 삼았다. 여자주인공은 니진스키의 동생이자 이 작품을 안무가한 브로니슬라바 니진스카가 맡았다. 등장인물들이 휴양지에서 테니스, 수영, 골프를 즐기는 귀족과 운동선수이다 보니 기존의 발레 움직임에서 탈피하여 테니스, 골프, 수영 등의 스포츠 움직임을 모티브로 한 사실적인 움직임을 발레화하는 특별한 작업이 필요했다.


<여자주인공의 모델 테니스선수 수잔 랭글런>


이렇듯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의 협업으로 탄생된 <푸른기차> 1924년 6월 20일 샹젤리제 극장에서 초연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공연을 보기위해 파리 사교계 유명인사들이 총출동하여 열광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푸른기차>의 성공은 샤넬이 의상 디자인을 맡으며 프랑스 사교계의 샤넬의 팬들이 대거 참석하여 샤넬 효과도 한 몫 한 듯하다. 이 작품의 성공이 계기가 되어 샤넬은 장 콕토와의 협업으로 발레 작품의 의상을 맡기도 했다.

유럽 예술의 중심지 파리에 아류(俄流)를 이끈 공연기획자_ 세르게이 디아길레프

20세기 초에 유럽문화의 중심지 파리에서 세르게이 디아길레프가 이끄는 러시아 발레단 발레뤼스(Ballets Russes, 1909-1929)는 러시아 발레 공연으로 서유럽에 러시아류(아류(俄流))의 돌풍을 일으켰다. 세르게이 디아길레프(С.П. Дягилев, 1872-1929)는 유럽의 문화 중심지 파리에 러시아 문화‧예술 플랫폼을 형성한 공연기획자이다. 그는 1872년 노브고로드에서 태어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유학 와서,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법과대학 재학 시, 1890년 알렉산드르 베누아, 레옹 박스트 등 예술가들과 만나면서 예술에 눈을 뜨게 된다. 1893년 유럽여행에서 에밀졸라, 샤를 구노, 주세페 베르디와의 조우를 통해 유럽의 예술과 문화에 대한 견문을 넓히게 된다. 대학졸업 후, 디아길레프는 림스키 코르사코프 컨서바토리에서 음악수업을 받고,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에게 개인교습을 받으며 음악을 비롯한 예술에 대한 소양을 깊이 쌓게 된다.1899년 황실극장 부감독 세르게이 볼론스키의 소개로 이사도라 덩컨의 춤에 큰 영향을 받은 미하일 포킨(М.М. Фокин, 1880-1942)을 시작으로 황실극장에서 일하는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인맥을 쌓는다. 같은 해, 알렉산드르 베누아와 함께 잡지 <예술세계(Мир Искусства)>를 창간하며 러시아 예술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졌으며. 러시아 예술을 서유럽에 소개해야 한다는 뜻을 확고히 하게 되었다.



<"푸른기차" 초연 당시, 장 콕토와 디아길레프>

디아길레프는 1906년 이 아이디어를 실현시킨다. 1906-1908까지 3년에 걸쳐 러시아 예술을 서유럽에 소개하는 세종 뤼스(Saison Russe, 러시아 시즌)를 파리에서 기획하여 성공을 거뒀다. 3년에 걸친 세종 뤼스의 성공으로 디아길레프는 1909년 황실발레단에서 활동하는 무용수들의 여름휴가를 이용하여 파리 샤틀레(Châtelet) 극장에서 러시아 발레를 미하일 포킨 안무한 <아르미드의 별장>, <왕자 이고르>, <라 실피드> 그리고 <향연(Le Festin)>이라는 제목으로 기존의 러시아 오페라와 발레의 하이라이트 작품들을 갈라 콘서트 형식으로 선보여 대성공을 이룬다. 이 첫 번째 공연의 성공은 발레뤼스가 정식으로 창단하는 계기가 된다. 1909년부터 1929년까지 약 20년간 유럽에서 활동한 디아길레프의 발레뤼스는 유럽사회에서는 러시아 문화‧예술의 대유행을 이끈다. 샤넬과 랑방은 자신들의 의상에 러시아 자수를 활용하였으며, 루바슈카를 응용한 디자인을 내놓기도 했다. 특히 1910년에 공연된 <세헤라자데>의 무대의상인 터번, 통넓은 바지 그리고 긴 목걸이는 패션에 민감한 파리지앵들의 눈을 사로잡아 1910년대 유럽을 대표하는 패션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이렇게 유럽사회에서 러시아류를 이끌던 발레뤼스는 1929년 디아길레프의 사망과 함께 해체된다.


<발레 "세헤라자데"에서 바슬라브 니진스키>

디아길레프와 코코 샤넬

디아길레프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당대 최고의 예술가과의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했다. 미술가 바실리 칸딘스키, 파블로 피카소, 장 콕토, 앙리 마티스, 알렉산드르 베누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클로드 드뷔시,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모리스 라벨, 의상 디자인 코코 샤넬, 레옹 박스트 등 디아길레프의 라인업은 화려했다.특히 우리에게 명품 디자이너로 익숙한 샤넬과 협업은 이채롭다. 디아길레프는 샤넬이 예술계에 입문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지금의 샤넬의 작업이 단순한 의복제작으로부터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여 예술로 승화할 수 있었던 것도 디아길레프의 영향이 크다. 샤넬은 절친 미샤 세르(Misia Sert, 1872-1950)를 통해 디아길레프와 장 콕토, 스트라빈스키, 니진스키, 리파르 등 러시아 예술가과 친분을 쌓으며 예술의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디아길레프가 <봄의제전>의 재공연을 기획할 당시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을 때, 30만 프랑을 후원하는 것을 시작으로 샤넬은 디아길레프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그녀는 디아길레프의 천재적인 예술적 재능과 좋은 공연제작을 위해 열정을 쏟는 모습에 깊이 감동했으며, 디아길레프는 그녀의 가장 매력적인 친구였다고 회상한다. 샤넬은 디아길레프가 베니스에서 10년간 당뇨병으로 투병하다 1929년 마지막 임종의 순간을 지킨 그의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나였다. 그녀는 디아길레프를 시작으로 스트라빈스키, 세르주 리파(Сергей Лифарь, Serge Lifar 1905-1986), 장 콕토 등 당대의 러시아 예술가 및 프랑스 예술가들의 후원자로 그들의 예술활동을 지원했다. 특히 샤넬은 <푸른기차>공연에서 키예프 출신으로 프랑스로 망명한 무용수 세르주 리파의 타고난 재능을 알아보고 스스로 그의 대모가 되어 그의 유럽 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 이후로 그는 샤넬이 가장 신뢰하는 친구들 중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러시아 예술가들과의 교류에서 얻은 러시아 감성은 그녀의 디자인에 큰 영감을 주었다.

<샤넬과 세르주 리파>


2020년 연초에는 코로나19의 공포도 있었지만 굵직한 문화계 이슈들도 함께했다. 그래미 어워드에 방탄소년단(BTS)이 초청되었고, 아카데미 어워드에서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작품상을 비롯하여 4관왕에 오르는 쾌거를 올렸다. 현재 세계 약 202개국의 영화관에서 봉감독의 영화가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한류문화가 대한민국과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인의 공감을 얻고 있는 증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0세기 초 디아길레프가 이끌었던 발레뤼스가 프랑스에서 일으킨 러시아 열풍은 어느 정도였을지 궁금해진다.

입춘이 지난 2월의 중순 어서 따뜻한 봄이 오고 코로나19 사태도 하루빨리 진정되기를 기대해 본다. 20세기 파리지앵들을 지상낙원인 니스로 인도하던 희망과 꿈의 상징인 푸른기차가 간절히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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