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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베를린의 러시아 디아스포라 문학
분류문학
국가 러시아
날짜2019-12-17
조회수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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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디아스포라史에서 독일의 베를린은 1917년 혁명과 그 이후 발생한 내전으로 인해 유럽전역으로 흩어진 약 300만 명의 러시아 디아스포라인들에게 중요한 도시였다. 왜냐하면 베를린에서 최고 50만 명의 러시아를 탈주한 이주민들이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만들어 러시아 문화를 형성하고 살았기 때문이었다. 러시아 망명객들이 베를린으로 집단적으로 몰린 이유는 러시아와 지리적으로 매우 근접한 지역이었고 전쟁이후 ‘경제적 위기와 마르크화의 붕괴로 보석이나 서구 화폐를 가지고 들어온 러시아인들에게 베를린은 상대적으로 물가가 쌌으며 몰락한 중산층이 거주하던 베를린의 교외에선 크고 값싼 아파트를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를린의 서남부교외 지역에 공동체를 형성한 러시아 이주민들은 공동체의 중심지에 새로운 ‘넵스키 거리’를 만들어 러시아 카페, 러시아 극장, 러시아 레스토랑을 열어  페테르부르크식의 문화를 베를린에 이식하였다.

 
<베를린의 러시아 디아스포라인(1920년대)>

베를린: 디아스포라문학과 소비에트문학의 교류의 공간

최초의 러시아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형성한 베를린은 작가를 포함한 망명문학인들에게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왜냐하면 유럽의 다른 지역에 정착한 러시아 문학 인텔리겐치아에게는 그들을 추방한(아니면 자발적으로 탈주한) 소비에트 러시아의 문화와 문학에 대해서 강한 배척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베를린의 문학인들은 소비에트의 문학과 베를린의 해외 러시아문학을 연대시키려는 문학의 통합에 대한 강한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1920년대 초 독일의 베를린의 문학적 공간에서 소비에트 문학과 디아스포라 문학 사이의 뚜렷한 구분은 없었다. 1921년 베를린의 디아스포라 작가 알렉산드르 야센코(А.Ященко)가 문학잡지 <러시아 책>(Русская книга)의 창간호에서 ‘우리 베를린의 작가들에게는 소비에트의 러시아와 망명객을 구분하는 영역은 없다’라고 강조한 것도 베를린의 자유로운 문학적 분위기를 잘 보여 주고 있었다.

베를린의 러시아 디아스포라 작가들에게는 소비에트는 ‘문화적 전통, 문학, 문어적 언어와 같은 자신 속에 남아 있는 러시아였다. 동시에 러시아는 내면적으로 어떤 지역에 국한되지 않은 하나의 조국’이었고, 소비에트 러시아의 문학과 문학인들은 옛 친구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임시로 거처한 독일의 ‘베를린’은 소비에트 문학과 해외 러시아문학을 연결하는 가교적 공간이면서 소비에트 출신의 작가들과 이미 확립되어 가고 있었던 러시아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문학 동료들을 위한 회합의 장소였다.

스탈린의 러시아 문학과 베를린의 디아스포라 작가들과의 친밀한 교류의 활성화를 촉진한 것은 ‘소비에트의 후원으로 설립한 신문’ <전야>(Накануне)의 ‘문학별지’와 <예술인의 집> (Дом Искусств)이었다. 1922년 7월에 모스크바에서 <전야>의 편집사무소가 문을 열었는데, 1917년 10월까지 고리키의 <새 인생>(Новая Жизнь)에서 일을 했던 신문기자 미하일 레비도프(М.Левидов)가 이 사무실의 책임을 맡았다. <전야>의 모스크바 편집인들의 활동에 대한 상세하고 생생한 이야기는 에밀리 민들린(Эм. Миндлин)의 회상기 <평범하지 않는 대화자>(Необыкновенные собеседники)속에 잘 나타나고 있다.


 <베를린의 러시아 신문 <전야> (1920년대)>
 

베를린의 망명사회를 본국의 삶과 연결시켜주었던 <전야>의 문학별지(후에 <문학 주간>으로 불림)는 알렉세이 톨스토이(А.Толстой)와 로마 굴(Роман Гуль)이 편집을 맡았다. 이 별지는 디아스포라 작가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미하일 조센코(М.Зощенко), 카타예프, 뜨냐노프 등의 소비에트의 문학도 베를린 공동체에 소개시켜 주었다. 동시에 러시아에서 발간된 책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인쇄된 러시아어로 된 작품들을 출판 및 비평도 했다. 또한 <전야>의 문학 별지는 이탈리아를 떠난 이후 베를린에서 얼마정도 머물렀던 막심고리키(М.Горький)의 <은둔자>(Отшельника), <짝사랑에 대하여>(Рассказ о безответной любви), <영웅에 대하여>(Рассказ о герое), <왕모기>(Карамора) <비범함에 대하여>(Рассказ о необыкновенном)등의 단편들도 소개했다. 특이한 것은 고리키의 단편들에서 나타나는 네오 리얼리즘적 경향은 러시아 해외문학의 간판스타인 부닌(И.Бунин)을 포함하여 슈멜레프, 보리스 자이체프(Б.Зайцев)등 구세대작가들의 산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베를린의 <예술의 집>
1921년 11월 21일 안드레이 벨르이(А.Белый), 알렉산드르 레미조프(А.Ремизов) 야센코가 주도하여 러시아의 수도 페테르부르크에 건설된 것과 유사한 <예술의 집>이 만들어졌는데, 실제로 베를린의 <예술의 집>은 페테르부르크의 동명의 단체와 우정 깊은 서신교환까지 했을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베를린의 <예술의 집>의 행사는 초기에는 특권계층이 사는 지역인 <란드그라프>(Ландграф)카페에서 이루어졌지만, 후기에는 <예술의 집> 모임은 민주 광장에 위치한 <레온>(Леон)카페에서 이루어졌다. 이 모임에 안드레이 벨르이(А.Белый), 알렉세이 레미조프(А.Ремизов), 알렉세이 톨스토이(А.Толстой), 일리야 에렌부르크(И.Эренбург), 블라지슬라프 호다세비치(В.Ходасевич)등의 베를린 디아스포라 작가들이 참석했다. 소비에트측에서는 이 모임을 위해서 세르게이 예세닌(С.Есенин), 블라지미르 마야코프스키(В.Маяковский), 보리스 파스테르나크(Б.Пастернак), 보리스 삘냑(Б.Пильняк)등이 베를린으로 왔다. <예술의 집>은 또한 소비에트 작가인 막심 고리키와 블라지미르 코롤렌코(В.Короленко)의 기념일을 성대하게 축하할 정도로 소비에트 문학과 문학인에 대한 예우를 갖추었다.   

베를린의 러시아 출판사

베를린의 러시아 디아스포라 공동체는 전성기 시절은 1918년에서 1928년 이었는데, 이 시기에 독일에 등록된 러시아 출판사 수는 자그마치 188개였다. 이렇게 많은 수의 출판사가 문을 연 이유는 베를린에서의 출판 비용이 매우 낮았기 때문이었는데, 심지어 본국의 물가 상승과 출판 비용의 상승을 견디지 못한 소비에트 출판업자가 베를린에서 출판사를 열 정도였다.  1923년에 베를린의 러시아 출판사들이 펴낸 책의 양은 모든 독일 출판사가 출판한 책의 수보다도 많았다.

베를린에서 가장 큰 러시아 출판사는 <페트로폴리스>(Петрополис)였다. 이 출판사는 다양한 작가들의 책을 펴냈는데, 특히 러시아에 노벨문학상을 처음으로 선사한 이반 부닌의 전집을 해외에서 처음으로 발간하는 등 러시아 고전문학작품을 주로 인쇄하였다. 동시에  혁명시기까지 그리고 콘슨탄틴 페진(К.Федин), 바체슬라프 이바노프(Вл.Иванов),  삘냑, 아나톨리 마리엔고프(А.Мариенгоф), 니콜라이 니키친(Н.Никитин) 같은 젊은 소비에트 작가들의 책들도 디아스포라 사회에 소개했다. 또한 고리키의 주도로 만들어진 지노비 그루제빈(З.Гружебин)의 출판사는 망명 작가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소비에트에 거주한 발레리 브류소프(В.Брюсов), 표도르 솔로구프(Ф.Сологуб), 예세닌, 파스테르나크, 오시프 만젤슈탐(О.Мандельштам)등의 소비에트 작가들의 작품들도 세상에 내놓았다.

슬라브 민족을 다룬 작품과 농민 문학과 관련된 창작품은 좌익계열의 출판사 <스키타이>(Скифы)에 의해서 출간되어서 망명객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또한 <스키타이>는 알렉산드르 블록(А,Блок)의 장시(Поэма) (Двенадцать), 시, 논평 <러시아와 인텔리겐차>(Россия и интеллигенция), <사랑, 시, 국가적 봉사에 대하여>(О любви, поэзии 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й службе)등도 펴냈다. <세기>(Эпоха)는 러시아 문학을 두 진영, 즉 본국과 망명문학으로 분리하지 않는 대표적인 러시아 출판사였다. 이 출판사는 블록의 10권짜리 전집, 벨르이의 <페테르부르크>(Петербург), <은색 비둘기>(Серебряный голубь), 미하일 조센코의 <나자르 시네브류호바의 이야기들>(Рассказы Назара Синебрюхова), 마리나 츠베타예바(М.Цветаева)의 <차르-처녀>(Царь-девица) 그리고 니콜라이 티호노프(Н.Тихонов)의 시, 예브게니 자먀찐(Е.Замятин)의 책 <소년 에라즘은 어떻게 완치되었나>(О том, как был исцелен отрок Еразм)를 발간했다. 
  

베를린의 러시아 디아스포라 문학의 분열과 쇠퇴

소비에트의 문학적인 경향을 공유했던 베를린의 러시아 디아스포라 문학은 1923년에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는데, 가장 중요한 원인은 독일의 경제적 위기였다. 1920년대 초반부터 바이마르공화국 경제는 인플레이션 공황으로 인하여 피폐해지고 있었는데, 그 인플레이션은 상당히 심각해서, 보통 독일의 소비자 물가의 200배에서 300배까지 상승하기도 했다. 이러한 독일경제의 쇠락은 베를린의 러시아 디아스포라 문학에도 타격을 주었다. 한때 독일 출판사보다도 양적인 면에서 훨씬 우위에 있었던 베를린의 러시아 출판사들은 줄줄이 폐업을 했고, 그 출판사에서 인쇄되어 러시아 디아스포라 사회를 하나로 묶는데 큰 역할을 했던 문학잡지를 포함한 정기적 간행물들도 연쇄적으로 발행이 중단되었다.

경제적 위기가 초래한 여러 출판물과 정기간행물의 발행 중단 이외에 베를린의 디아스포라 문학세계를 움츠러들게 하는 사건이 1922년에 발생하였는데, 디아스포라 작가 그룹이 두 개의 진영으로 ― 소비에트 러시아를 인정하는 진영과 여전히 소비에트 러시아와 화해를 못하는 진영으로 ― 갈라졌다. 이 분열은 <예술의 집>에도 영향을 주어서, 이 단체의 회원들 중에서 벨르이, 레미조프, 호다세예비치, 니나 베르베로바(Н.Берберова) 등은 모임에서 탈퇴하여 <작가 연합>(Клуб писателей)을 만들었다. <작가연합>에는 추가로 자이체프, 무라토프(П.Муратов), 아이헨발트(Ю.Айхенвальд), 베르쟈예프(Н.Бердяев) 등도 가입하였다.

그러나 상기한 여러 난관들이 베를린의 러시아 디아스포라 문학을 갑작스럽게 막다른 길로 내몰지는 않았다. 1920년대 중반까지 베를린의 러시아 디아스포라 공동체는 전성기에 비해서 그 규모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유럽 내에 존재한 그 어떤 러시아 디아스포라 공동체보다도 여전히 존재감은 있었다. 그 베를린 공동체 속의 해외 러시아 문학의 생명도 여전히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었다. 1920년 11월 블라지미르 나보코프(В.Набоков)의 부친이 중심이 되어 만든 신문 <조종간>(Руль)은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계속해서 발행되었고, 출판사 <페트로폴리스>는 여전히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책 시장에 내어 놓고 있었다. 그리고 1928년부터 1932년 사이 당시 소비에트 문학의 상징인 페진은 매년 베를린을 방문했다. 또한 작가 띄냐노프, 에렌부르크 등도 베를린에 손님으로 초청되어 페진과 함께 베를린의 러시아 해외문학과 교류하였다.  

<베를린의 러시아 신문 <조정간> (1920년대)>


그러나 1920년대 말 베를린은 러시아 디아스포라의 수도의 지위를 상실하고 동시에 베를린의 디아스포라 문학도 본격적인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래서 베를린의 러시아 디아스포라 작가들은 지리적 인면에서도 심리적면에서도 조국 러시아와 가장 가까운 베를린을 탈출하여 제 3의 망명국을 찾아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정처 없이 떠도는 디아스포라적인 삶에 염증을 느낀 베를린의 일부 러시아 디아스포라 작가들 중에서 러시아 땅을 밟아보고 싶은 그들의 소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소비에트로의 귀환이라는 위험한 도박을 강행한 인물도 있었다. 스탈린의 러시아로 귀환한 작가는 알렉세이 톨스토이, 안드레이 벨르이, 일리야 에렌부르크, 이반 소콜로프-미키토프(И.С.Соколов-Микитов), 루크야노프(С.Лукьянов), 알렉세예프(Г.Алексеев), 베누스(Г.Венус)들이다. 그 중에서 루크야노프, 알렉세예프, 베누스는 스탈린의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비극적으로 최후를 맞이했다.
상기했듯이 베를린이 1920년대까지 가지고 있었던 ‘러시아 해외 문학의 가장 중요한 도시’적 상징과 지위는 1920년대 말부터 파리에게 점진적으로 양도되기 시작했고, 그 지위는 경제적 불황기에 러시아인들이 히틀러의 독일로부터 프랑스의 수도로 이주하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그 이후 러시아 디아스포라 문학사에서 베를린(독일)은 ‘러시아 디아스포라 문학의 주변도시’로 그 역할이 상당히 축소되었지만, 문학적인 생명은 1960년대까지 연장되는데, 미약하게나마 생명을 근근이 이어간 시기의 가장 상징적이고 대표적인 문학 활동은 문학, 예술, 과학과 사회-정치적 분야들을 다루는 잡지 <경계>(Грань)의 발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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