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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빼앗긴 나라에서 목숨을 건 축구경기를 펼치다
분류기타
국가 러시아
날짜2019-11-15
조회수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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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손흥민 선수가 유럽의 프리미엄 리그에서 어려움을 딛고 한국인으로써 한국축구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손흥민, 이강인 등 유럽의 유명 축구 클럽에서 활동하는 한국 축구선수들의 선전으로 우리사회에서 축구 열풍이 다시 불고 있다. 축구사랑하면 러시아도 뒤지지 않는다. 2005-2006년 우리나라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1925년에 창단된 제니트 구단에 2006년 부임하면서 함께 활동했던 김동진, 이호를 영입했다. 딕 아드보카드 감독은 제니트는 창단 이후 처음으로 2007-2008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을 이끌었다. 비록 이 경기에서 이호는 부상으로 등판하지 못하고, 김동진은 후반전 마지막 1분을 남기고 투입되어 팀우승에 크게 기여한 바는 없었지만 동료들과 함께 운동장에서 우승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순간을 맞았다. 김동진과 이호가 한국선수로서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을 맞이한 것은 차범근이 독일 프랑크푸르트(1979~1980), 바이에르 레버쿠젠(1987~1988) 활동한 이후 20년 만이다. 딕 아드보카드 감독이 대한민국 대표팀에 재임당시 대표팀이 2006년 독일 FIFA 월드컵에서 유일하게 승점4점을 얻고도 16강 진출에 실패한 유일한 팀이 되어 영예롭지 못하게 우리나라를 떠났으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그 설욕을 씻고, 유럽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을 이끌며 2010-2012년 러시아 대표팀 감독을 맡게되는 인연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누구에게나 경기에서 우승을 한다는 것은 매우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졌다고 해서 크게 좌절할 일도 아니다. 그런데 만약 경기에서 이겼을 때 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경기에 임해야 할까? 과연 경기에 임할 수 있을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죽음을 각오하고 독일군과의 축구경기에 참가한 우크라이나의 축구선수들이 있었다.  

<제니트 유럽 챔피언스 리그 우승 장면>

러시아의 축구열풍은 그 역사가 오래다. 1920년대부터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대도시에 축구클럽들이 생겨나고, 이윽고 축구는 새로 탄생한 소련 시민들을 위한 국민스포츠로 등극하여 소련 전역에서는 축구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축구를 잘하는 선수는 국가와 지역의 전 국민의 영웅으로 국가에서 제공하는 많은 특혜를 누릴 수 있었다. 때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41년 7월 키예프에서는 독일군이 소련 군대를 포위하는 역사상 가장 거대한 포위전인 키예프 전투가 일어난다. 키예프 시민들은 키예프 방어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키예프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축구클럽 디나모, 로코모티프 선수들도 붉은군대의 일원으로 키예프 방어에 전력을 다했으나 결국 키예프는 독일군에게 점령당한다. 비록 독일군에게 점령은 당했지만 1942년 전투가 일단락되자 키예프에도 봄이 찾아와 문화예술활동이 다시 시작되었다. 오페라 극장도 문을 열고, 축구경기도 다시 재개되기 시작하여 여러 축구팀들이 생겨났다. 당시 1번 빵공장 디렉터이며 독일인 카테고리중 폭스도이치 카테고리에 있던 이오시프 아바노비치 코르디치는 키예프 <디나모>에서 골키퍼로 유명했던 니콜라이 트루세비치를 주축으로 <스타트>라는 새로운 축구클럽을 결성한다. 이 후로 니콜라이 트루세비치를 중심으로 키예프의 <디나모>, <로코모티프>, 오데사의 <스파르탁> 축구클럽 출신 선수들이 모이면서 <스타트>팀은 자리를 잡아간다.

<1942년 축구클럽 "스타트" 선수들>

1942년 6월초 정부당국의 키예프에서 축구경기의 개최 허가가 떨어지고, <스타트> 팀의 무적무패의 신화가 시작된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스타트>팀은 8월 6일 독일 공군 대표팀 과 자존심을 건 경기를 하게 된다. 그러나 경기 전 <스타트> 선수들은 이번 경기에서 우승할 경우에 선수 모두 총살시킬 것이라는 협박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콜라이 트루세비치의 진두 지휘 하에 선수들은 우크라이나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목숨을 건 경기에 임하여 5:1로 압승을 거둔다. 이렇듯 독일군 축구팀과의 경기에서 <스타트> 선수들의 뜻밖의 선전은 키예프 시민들을 다시 하나로 모일 수 있게 하는 구심점 역할과 독일군과의 투쟁하여 키예프를 다시 되찾아야겠다는 새로운 희망을 가져왔다.

이러한 전설의 축구팀 <스타트>에는 골키퍼 니콜라이 트루세비치 (Н. Трусевич, 1909-1943) 비롯하여 알렉세이 클리멘코 (А. Клименко 1912-1943), 미하일 스비리도프스키(М. Свиридовский, 1908-1973), 바실리 수하레프 (В. Сухарев, 1911-1944년 이후),  블라디미르 발라킨(В. Балакин, 1913-1992), 레프 군다레프(Л. Гундарев, 1921-1994), 마카르 곤차렌코 (М. Гончаренко, 1912-1997)б 유리(게오르기) 체르네가 (Ю.(Г.) Чернега,1919-1947), 파벨 코마로프 (П. Комаров, 1913-1970년대 이후), 니콜라이 코로트키흐(Н. Коротких, 1909-1942), 미하일 푸틴스틴 (М. Путистин ,1906-1981), 미하일 멜닉 (М. Мельник, 1915-1944), 게오르기 티모페에프 (Г. Тимофеев, 1910-1967), 표도르 튜트체프 (Ф. Тютчев (1907-1959), 이반 쿠즈멘코 (И. Кузыменко, 1912-1943) 후보선수를 포함하여 총 15명이 출전하였다. 그러나 이 경기 이후 1942년 8월 18일 빵공장 소속 <스타트> 축구선수들은 다양한 이유들로 체포당했고, 다양한 형벌이 집행되었다.

1943년 레프 카실이 “이즈베스찌야”에 이 사건을 “죽음의 축구경기”라고 이름하여  그러나 15년후 1958년 11월 21일 신문 “저녁 키예프”에 표트르 세베로프는 축구경기에 참가한 모든 선수들이 1943년 겨울에 총살당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위에 제시된 <스타트> 선수들의 생몰년도만 보아도 이들이 1943년 겨울에 총살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이후에도 이 축구경기에 대한 내용은 여러 언론에 보도되면서 미화되었다. 그러나 1974년 함부르크 검잘에 의해 “죽음의 축구경기”에 대한 사건이 재개되어 2005년에 최종판결에서 <스타트> 축구선수들의 집단 총살에 대한 정확한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이 결정되었다.

이 역사적 사실은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 그리고 예술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20주년 기념으로 1962년 “뜨레찌 타임(Третий Тайм)” 2012년 70주년 기념으로 “매치 (Мятч)”가 러시아에서 개봉되었다. 영화“매치”는 안드레이 말류코프 (А. Малюков) 메가폰을 잡고 연극과 영화계를 종횡무진하며 활동하고 있는 안드레이 베즈루코프 (А. Безруков)와 러시아의 국민배우집안의 엘리자베타 바야르스카야 (Е. Боярская)가 맡아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이 영화는 2013년 4부작 티비 시리즈로도 방영된 바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서는 영화 개봉을 금지시켰다. 왜냐하면 우크라이나는 2012년 6월 8일부터 유러피안 챔피언십 축구대회 공동주최국이기에 이 기간에 우크라이나 축구선수들이 독일군에게 학살당한 사건을 다룬 영화를 개봉한다는 것이 적절치 못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리고 당시에는 우크라니아가 소련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독립국이기에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다른 영화를 제작한 것에 대해 신문화제국주의라고 비판하며 유감을 표명했다. 특히 독일군에 맞서 경기에 임했던 선수들은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독일군 부역자들은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했던 사실이 우크라니아에서의 개봉 금지에 힘을 더했다. 이렇듯 역사적인 사실을 다루고 있지만 축구에 대한 영화 한 편이 러시아 및 CIS인들의 미묘한 국제분쟁까지 야기한 사실은 이 사건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다.

<영화 "매치" 포스터>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오는 2019년 11월 28일 모스크바 <디나모>와 소련 대표팀에서 활동했던 전설적인 골키퍼 레프 야신(Л. Яшин, 1929-1990)에 대한 영화 “레프 야신_ 나의 꿈 골키퍼)(Лев Яшин_ Вратарь моей мечты)”가 개봉을 앞두고 있어 이에 대한 러시아 축구팬들의 기대가 매우 크다. 그는 1963년 축구계의 오스카라고 불릴 수 있는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가 받는 발롱도르상을 골키퍼로서는 최초로 수상하였고, 소련선수 중에서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 상을 수상한 주인공이다. 야신은 1964년 10월 영국에서 개최된 올스타전에서 영국을 상대한 그의 수비는 마치 거미가 골대에 거미줄을 치고 수비하는 것처럼 단 하나의 골도 허용하지 않았던 철벽수비에 흑거미 또는 흑표험이라는 별명을 붙을 정도였으니 그 실력은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가능하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홍보 포스터에도 야신의 모습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 소련을 대표하는 축구선수 임에 틀림없다. 그는 패널티 킥 수비의 신공으로 펠레의 패널티킥을 막아낸 전력을 가지고 있다. 한 때 레알 마드리드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았으나 “백지수표를 준다 해도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디나모”라며 스카웃 제의를 단칼에 거절하고 20년동안 디나모에서 활동을 지속한 의리의 사나이기도 하다. 이러한 러시아 국민들 뿐만 아니라 전세계 축구팬들의 사랑을 한 모에 받았던 야신은 영화속에서 어떻게 그려질지 기대된다.

 <영화 "레프 야신 _ 나의 꿈 골키퍼" 포스터>

축구를 비롯하여 스포츠 경기를 보고 있으면 무한한 감동이 밀려올 때가 있다. 손흥민 선수가 절묘하게 골을 넣었을 때, 김연아 선수가 실수하나 없는 클린 연기를 펼칠 때 등등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의 순간의 실수를 득점으로 연결시키거나, 내 바로 앞 순서에서 완벽하게 연기하는 라이벌 선수 본 다음에 극도의 압박감을 이기고 출전하는 선수들을 보면 그 경지에 도달하기까지 그들이 흘렸던 수많은 땀과 노력은 그 어떤 것으로도 바꾸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그 경기가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대항전이라면 관람객들로 하여금 무한한 애국심을 불러 일으키키도 한다. 그것이 아마 스포츠의 잠재력이 아닐까 한다.

문득 일제강점기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동메달을 딴 남승룡 선수가 떠오른다. 비록 그들도 나라를 빼앗겨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달릴 수 밖에 없었지만, 그들은 어떤 각오로 42.195km를 달렸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아마도 우크라이나 <스타트> 축구선수들의 마음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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