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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하얼빈의 러시아 디아스포라 문학
분류문학
국가 러시아
날짜2019-10-15
조회수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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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동양의 페테르부르크

만주어로 ‘그물을 말리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동양의 ‘하얼빈’은 러시아인에게는 러시아 문화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물론 하얼빈에 존재하는 러시아 문화의 흔적은 러시아의 동방정책의 정치적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1900년대 초반 제정 러시아가 동으로의 진출과 동청 철도 건설을 위해 하얼빈을 그 중심지로 정하면서 아주 작은 인구의 농촌 마을 ‘하얼빈’은 러시아 문화의 도시 ‘페테르부르크’식으로 건설되었다. 실제로 ‘하얼빈’에는 페테르부르크에 현재 존재하는 거리와 똑같은 이름의 거리(<사도바야Садовая>, <1번가Первая линия>, <2번가Вторая линия>, <큰 광장Большой проспект>)가 만들어졌고 러시아인들의 인구도 급격하게 늘어나(1918년 6만 여명에서 1922년 15만 명)면서 페테르부르크식의 코스모폴리탄적인 화려한 문화적인 삶을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이 ‘하얼빈’에 이식되었다. 이러한 ‘하얼빈’ 에 그 당시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인 샬랴핀(Ф. Шаляпин)과 베르틴스키(А. Вертинский)의 순회공연, 성소피아 성당의 건설은 그 시절 ‘하얼빈=페테르부르크(러시아 도시)’라는 과장된 등식을 가능 하게 하는 기막힌 알레고리가 아닐 수가 없다.

하얼빈, 러시아 디아스포라문학의 동방의 중심지

그런데 ‘동방의 페테르부르크’라고 불린 하얼빈이 러시아 디아스포라 문학, 특히 1차 디아스포라 물결을 타고 러시아를 건너온 망명 문학가를 품은 러시아 디아스포라 역사의 동방의 중심지 역할을 한 극동 도시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하얼빈이 러시아 1차 디아스포라의 물결의 중요한 동양의 도시였다는 문학사적인 사실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러시아문학 전공자들에게는 잘 알려진 내용은 아니었다. 이러한 유의미한 정보가 세상에 드러난 것은 1990년대 ‘동양에서의 러시아 디아스포라 문학’을 다룬 두 권의 책의 출판과 관련이 있다. 두 권의 책 중, 첫 번째 작품은 타스키나(Е. Таскика)와 셀키나(Д. Селькина)가 공동으로 1991년도에 노보시비리스크에서 발행한 시집 <하얼빈 – 러시아 나무의 가지Харбин- Ветка русского дерева>이고, 두 번째 도서는 모스크바에서 1994년도에 인쇄된 <미지의 하얼빈Неизвестный Харбин>이다.  이 두 권의 책은 동양의 자연과 중국의 일상생활, 즉 동양의 문화가 러시아 디아스포라 공동체로 접속과 이식과정에 동방의 도시 ‘하얼빈’의 역할에 대한 역사적 회고를 문학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두 권의 책은 하얼빈이 러시아 문학의 동양에서의 발전과정의 역사적 흔적을 찾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극동의 도시 ‘하얼빈’ 속에서 태동된 ‘동양의 러시아 문학’의 발전과정에서 큰 역할은 한 작가는 민속학자이기도 한 니콜라이 바이코프(Н.А. Байков, 1872-1958)였다. 1901년부터 1956년까지 하얼빈에서 거주했던 바이코프는 1914년에 페트로그라드(Петроград)에서 그의 첫 번째 작품인 <만주의 밀림 속에서В дебрях Маньчжурии>를 발간하는데, 이 도서는 1934년에 하얼빈에서 재출판 되었다. 그의 주요작품은 <위대한 반Велий Ван 1936, 1938>, <백색 불빛을 따라서По белу свету 1937>, <타이가가 소리친다Тайга щумит 1938>, <장작불 옆에서У костра 1939>, <타이가의 노정Таежные пути 1945>등이 있다.    


하얼빈의 러시아 디아스포라문학의 전성기: 추라예프카(Чураевка) 태동과 활동

1920년대 하얼빈 지역의 러시아 디아스포라 문학의 새로운 조류는 상대적으로 이름이 어느 정도 알려진 작가들이 주관하는 예술 모임의 활성화였다. 이러한 경향을 처음으로 형성한 이들은 스키탈레츠(С. Скиталец), 구세프-오렌부르스키(С. Гусев-Оренбургский)였다. 이 두 작가는 하얼빈에 일시적으로 체류하면서 1922년에 사적인 문학모임을 만들었는데, 이 문학 단체는 자신들의 학술지 <송화강의 밤들Сунгарийские вечера. 1923>도 발간하였다. 이러한 유행을 쫓아 평소 문학에 관심 있는 러시아의 청년 망명객들을 대상으로 조직된 모임이 바로 <녹색램프Зеленая лампа>였다. 이 단체는 하얼빈 디아스포라 작가들 중에서 비교적 젊은 세대에 속하는 시인 알렉세이 그릐조프(А.А. Грызов, 필명은 알렉세이 아차이르(А. Ачаир)가 주도했다. 그리고 이 <녹색램프>를 주축으로 하여 1926년에 하얼빈 지역 러시아 디아스포라 문학 최대 인기 조직인 <추라예프카Чураевка>가 태동 되었다. <추라예프카>라는 이름은 디아스포라 작가 게오르기 그레벤쉬코프(Г. Гребенщиков)의 대하 장편소설 <추라예프의 형제들Братья Чураевы. 1913-1936>의 주인공의 이름에서 나왔다. 이 작품은 알타이 지역의 러시아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첫 번째로 발간된 작품이었다.

하얼빈의 <추라예프카> 설립의 주요 목적은 기본적으로 2가지였다.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이 문학 단체 회원들을 대상으로 문학 수업을 진행하는 ‘소학교’의 적극적인 활동과 수업의 지속이었다. 이 학교의 실제적인 지도자는 상기한 알렉세이 그릐조프였지만, 대외적으로는 젊은 문학가들(니콜라이 키치(Н. Кичий), 니콜라이 슈골레프(Н. Щеголев), 블라지미르 스로보드치코프(В. Слободчиков)이 학교 대표를 맡았다. 이 학교의 수업의 커리큘럼에는 뷰류소프(В.Брюсов)의 <시학 개론>, 토마셉스키(Б. Томашевский)의 <문학이론>, 지르문스키(В. Жирмунский)의 <시 이론>, <운문의 역사와 이론>, 슐콥스키(Н. шулькговский)의 <시 창작의 이론과 실습>등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이 학교의 가장 중요한 수업은 학생들의 창작품을 분석하는 것이었는데, 수업에 참가한 모든 학생들은 자신의 시를 읽고 토론을 하면서 편견 없는 비판을 수용해야 했다. <추라예프카> 설립의 두 번째 목적은 하얼빈 지역 러시아 디아스포라 공동체 내의 문학과 예술의 발전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이 목적의 실현을 위해 <추라예프카> 작가들은 하얼빈의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범위를 넘어서 소비에트에 거주했던 파스테르나크(Б. Пастернак), 셀빈스키(И. Сельвинский), 삘냑(Б. Пильняк)등의 저명한 작가뿐만 아니라 러시아를 탈출해서 서구에 머물면서 활동을 한 메레쥐콥스키(Д. Мережковского), 부닌(И. Бунин) 등도 함께 연구하였다. <추라예프카>는 또한 일주일에 두 번의 정기 모임도 가졌는데, 매주 화요일에는 공개강연, 매주 금요일에는 이 단체의 회원들의 작품을 분석하였다. 특히 화요일 모임은 인기가 많아서 강연을 듣기 위하여 최대 천 명의 청중들이 운집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금요일 모임의 마지막은 항상 <추라예프카> 시인들의 시 낭송으로 마쳤다.

<추라예프카>는 1932년 7월부터 매주 2쪽 분량의 간단한 속지 형태의 학술지 <젊은 추라예프카Молодая Чураевка>를 발행했는데, 이것은 하얼빈에서 발간되는 <하얼빈 데일리 뉴스Harbin Daily News>의 부록 형태로 출판되었다. 서서히 몸집을 키운 <추라예프카>는 1932년 12월 말부터 18쪽 분량의 신문을 매월 발행하였는데, 신문의 이름은 단체의 이름과 같은 이름인 <추라예프카Чураевка>였다. 이 월간 신문의 편집인은 하얼빈 디아스포라 사회에서 발레리 뻬레레쉰(В. Перелешин)이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시인 발레리 살라트코-페트리쉐(В.Ф. Салатко-Петрише)였다. 그리고 <추라예프카>는 하얼빈에서 자신들의 존재 기간동안 네 권의 시 전집, <구름으로 가는 계단>, <일곱>, <철쭉꽃>, <굴곡들> 등을 발간하였다.

하얼빈의 러시아 디아스포라문학의 쇠퇴

하얼빈의 러시아 디아스포라 삶도 역사의 파도에 휩쓸리기 시작했는데, 그 시작은 1932년 2월 6일 일본군의 하얼빈 점령이었다. 그러나 일본군의 하얼빈의 진입 초기는 러시아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삶과 문학 활동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아서, 1932-1935년 사이에 <추라예프카>는 자신들의 문학적인 역할을 계속 수행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 밖의 고요함은 얼마가지 않았다. 하얼빈의 <추라예프카>의 첫 번째 시련은 일본 점령자와 일부 소수의 러시아 파시스트에 의해서 자행된 불법행위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들은 <추라예프카>의 회원을 어용 문학 단체인 <국가-쇼비니즘 학파>에 가입시키려고 시도했는데 다행히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1942-1943년에 러시아 파시스트들은 강제적으로 <추라예프카> 젊은 문학가들을 자신들의 무장된 군대에 편입시키고자 했기 때문에, 하얼빈의 디아스포라 젊은 시인들은 하얼빈을 떠나 상하이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중국 상하이에 1943년에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이라는 러시아 디아스포라 문학 단체들이 존재하기 시작했는데, 이 문학 연합체에 이미 하얼빈에서 이주한 <추라예프카> 회원들도 가입되어 있었다. 상하이의 <추라예프카> 회원들은 가난과 기아에도 불구하고 젊은 시인들의 사기는 매우 왕성하였고 활기에 차 있었다.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상하이에서 문학 잡지 <오늘Сегодня>, <세기Эпоха>가 출판되었고 시집이 다수 발간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전쟁기간동안 하얼빈과 상하이의 러시아의 디아스포라 문학가들의 대다수는 소련 인민들의 상황에 공감했다는 점이다. 전쟁 후 <추라예프카> 작가들의 운명은 갈라졌다. 어떤 작가들은 미국과 호주로 떠나서, 또 다른 망명지에서 창작 작업을 계속해서 자신들의 작품을 책으로 출판했다. 2000년까지 생존한 <추라예프카Чураевка>회원 5명중에서 4명은 외국에서, 1명은 러시아에 남아있었다.

1945년 소련 군대가 하얼빈에 들어갔을 때, 도시에 남아있던 러시아 망명객에게 언론을 통해 집회에 참가할 것을 공지했고 러시아 디아스포라 작가들에게는 개별적으로 초청장이 전해졌다. 그러나 집회에 참가한 작가들을 포함한 1만 3천여 명의 러시아 망명객들은 집회현장에서 곧바로 소련내무성인민위원회(НКВД)에 의해서 체포되어 군용열차에 실려져 집단 노동수용소로 끌려갔다. 많은 하얼빈 망명객들은 그 차디찬 노동수용소 바닥에서 죽어갔다. 수용소 지옥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이들은 수용소에 나온 이후 변변치 않은 직업을 전전하면서 오랫동안 소련 당국의 의심, 경시, 망명객에 대한 소련사회의 은근한 따돌림 속에서 생존해야만 했다.

상하이의 러시아 망명객들의 운명도 하얼빈 망명객들의 운명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1945년 전쟁 승리 이후, 상하이 망명객들의 대부분은 소련의 여권을 받았고 진심으로 소련 체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들 중의 공산당의 프로파간다를 믿은 망명객들은 러시아로 귀환하였지만, 러시아 디아스포라 문학의 비극의 상징인 ‘마리나 츠베타예바’ 같은 숙명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얼빈의 러시아 디아스포라문학의 평가

하얼빈의 러시아 작가들은 프랑스로 망명하여 창작활동을 한 호다세비치, 아다모비치, 이바노프의 시를 잘 알고 그 문학적 가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시린의 창작품에도 매우 흥미를 보였지만, 대체로 파리의 침울하고 우울한 정서와 침체된 분위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하얼빈의 디아스포라 작가들은 소련 땅에 남아있던 마야코프스키(В. Маяковский)와 파스테르나크(Б. Пастернак)의 역동적이고 정력적인 분위기와 러시아의 상징주의 대가 안드레이 벨르이(А. Белый)에 더 열광하였다.

하얼빈의 러시아 디아스포라 문학은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도 ‘준엄한 용감성’으로 무장하여 끈질기게 자신들의 생명을 연장하면서 1950년대 중엽까지 존재하였다. 그들의 활동기간동안 총 60여 권의 시집이 발행되었다. 하얼빈 러시아 디아스포라 문학 및 하얼빈 러시아 작가들이 러시아 문학과 러시아 문화의 획기적인 발전에 크게 공헌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동양의 극동지역에서 러시아문학의 전파에 기여한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하얼빈 디아스포라 문학의 핵심 5인방(니콜라이 바이코프, 아르세니 네스멜로프(А. Несмелов), 알렉세이 아차이르, 발레리 뻬레레쉰, 바체슬라프 이바노프(Вя.Н. Иванов))은 러시아 디아스포라 문학의 황금시대의 지분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을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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