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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국내 클래식계를 밝힌 러시아 음악 거장들
분류음악
국가 러시아
날짜2019-04-01
조회수1,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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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선지 악보에 색을 입히는 사람들, 음표 하나하나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예술가들을 우리는 지휘자라고 부른다. 1988년 9월, 러시아 지휘의 거장 드미트리 키타옌코(Д. Китаенко)가 러시아 클래식 음악을 국내 무대에 처음 선보인 이래로 어떤 러시아 지휘자들이 국내 음악 무대를 찾았는가? 이들의 무대는 우리 클래식 음악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러시아 지휘자들의 국내 활약은 러시아 클래식 음악을 대표하는 두 단체,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키타옌코가 지휘하고 있던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첫 내한이 있던 88과 89년 총 2번의 공연을 위해 국내에 입국했다. 1988년에는 각각 9월 초와 중순에 전 단원 119명이 내한해 서울과 부산을 찾았고, 두 번째 내한공연은 그 이듬해 6월로, 서울관객들에게 총 3회 연주를 선보인 바 있다. 88년 공연에서 그들이 준비한 프로그램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을 비롯해 쇼스타코비치, 라흐마니노프 등 러시아 작곡가들의 작품과 베토벤 교향곡 9번 등 모두 16곡으로 구성되었고(동아일보, 1988.08.08), 그 이듬해 공연은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교향곡과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 스크랴빈의 교향곡 2번 등 러시아 교향곡 역사의 큰 줄기를 이루는 곡들로 구성되어 있었다(동아일보, 1989.06.19.).

1990년 4월에는 러시아음악계에서 모스크바 필하모닉과 양대 산맥을 이루는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한국을 찾았다. 1772년 페테르부르크 왕립음악협회로 출발해 1938년 레닌그라드 필하모닉(현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 교향악단은 클래식거장 므라빈스키(Е. Мравинский)에 의해 약 50년간 다듬어져 현재 러시아를 대표하는 교향악단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당시 내한에서는 므라빈스키 사망 이후 수석지휘자 겸 음악감독으로 지휘봉을 잡은 유리 테미르카노프(Ю. Темирканов)가 한국을 찾아 서울과 부산에서 공연을 열었다. 그의 주요 프로그램은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와 교향곡 6번,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과 피아노협주곡 2번 등 이었다.(동아일보, 1990.04.04., 연합뉴스, 1992.06.30.)

이처럼 1988년부터 1990년까지 세 차례의 내한 공연을 선보인 두 단체는 각각 다른 레퍼토리로 프로그램을 기획함으로써 소련을 대표하는 단체들로서 그 기량과 색채, 노하우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우리 청중들에게 익숙한 음악이 아니라 그들의 예술성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레퍼토리들로 무대를 구성했는데, 이렇게 슬라브 음악이 갖는 독특한 매력을 국내 관객이 호흡할 수 있도록 한 점은 향후 진행될 음악교류를 위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컸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공연이 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두 단체의 내한이 <한·소 수교 연내가능성>이라는 제목의 언론보도가 나올 만큼 양국의 정치관계가 급속히 진전되고 있던 당시 분위기 속에서 정치·경제 분야에 앞선 실질적이고 가시적인 교류였다는 데 있다.(연합뉴스, 1990.04.01) 거리 곳곳에 휘날리던 소련예술단공연 관련 현수막과 팸플릿은 그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던, 짧은 시일 내에 야기된 변화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1990년 9월, 곧바로 이어진 한·소 수교 공동성명 이후부터는 한국문화재단이 소련과의 문화교류를 본격화하면서 클래식 음악 교류 역시 급속도로 확대되었다. 이후 모스크바 필하모닉과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은 각각 11회, 8회 내한공연을 가졌다. 당시 모스크바 필하모닉을 이끌었던 키타옌코는 88, 89년 내한 이후 국내 관객을 만나지 못했으나,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의 테미르카노프는 2018년까지 약 30년에 걸쳐 7차례 더 내한해 국내 팬들을 만났다.

                            <드미트리 키타옌코>                                    <유리 테미르카노프>

거장 예브게니 스베틀라노프(Е. Светланов)는 1992년 11월 초, 그가 사망한 2002년까지 몸담고 있던 러시아국립교향악단을 이끌고 내한해 세종문화회관대강당에서 공연을 갖은 바 있다. 1936년 소련정부의 특별법에 의해 창립된 이 악단은 전 단원이 각종 음악콩쿠르 우승자 또는 저명 솔리스트들로 구성되어 옛 소련을 대표하는 최고의 단체로 지금까지도 인정받고 있는 단체였다.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클래식 명곡들로부터 비교적 최근 등장한 곡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레퍼토리를 구사하는 이 교향악단은 섬세하고 서정적이며 세련미 넘치는 연주로 정평을 얻고 있었다. 내한 프로그램은 글린카의 <루슬란과 류드밀라(Руслан и Людмила)> 서곡, 무소르그스키의 <호반치나(Хованщина)> 중 ‘모스크바 강가의 새벽’,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스페인 카프리치오(Испанског каприччио)>, 보로딘의 <이고르공(Князь Игорь)> 중 ‘폴로베츠인의 춤’ 등 러시아 오페라 곡들로 채워져 있었다.(연합뉴스, 1992.10.27.) 다른 어떤 공연보다 이들의 공연은 우리 관객에게 러시아 클래식의 전통성과 순수성을 살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당시 소련연방 해체 이후 적잖은 단원들이 러시아에서 서유럽 등지로 이탈했던 까닭에 옛 러시아의 순수성과 전통성이 퇴색되어가고 있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 교형악단에는 명성 있는 연주자들이 대부분 그대로 남아있었고, 그들의 레퍼토리 중 상당부분이 러시아 음악의 정통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듬해인 1993년에는 모스크바 방송교향악단이 또 한 명의 지휘 거장을 필두로 내한무대를 펼쳤다. 바로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В. Федосеев)가 국내 무대를 찾은 것이다. 교향악단이 창단된 1930년대만 하더라도 오페라 반주로 생명력을 이어왔던 이 악단은 초대지휘자 오를로프(А. Орлов), 골로바노프(Н. Голованов)에 의해 기초를 다진 후, 1974년 현재의 지휘자인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를 영입했다. 그가 30여년에 걸쳐 ‘차이코프스키 전문’이라는 연주단체의 정체성을 구축한 결과, 1993년에는 국제차이코프스키협회로부터 ‘차이코프스키 심포니 오케스트라’라는 칭호를 부여받기도 했다. 그 명성답게 첫 내한 연주회는 ‘차이코프스키 사후 1백주년 기념 콘서트’라는 타이틀로 기획되었고, 프로그램 자체도 차이코프스키의 작품만으로 구성되었다. 이 연주회는 우리 관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우선 우리 관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러시아 작곡가가 바로 차이코프스키였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지휘자 페도세예프가 유럽에서 얻고 있던 명성이 가히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페도세예프는 당시 클래식계에서 힘찬 지휘기법으로 ‘정열을 담아내는 마에스트로’로 불리며 베를린 필, 빈 필, 뮌헨 필 등 세계 유수의 교향악단들을 객원 지휘한 바 있다. 따라서 모스크바 방송교향악단이 우리나라에 직접 방문한 것은 1993년이 처음이었지만, 일본의 빅터나 러시아의 멜로디아 레이블로 이 악단의 CD 19종이 국내 시장에 이미 수입되어 있었던 만큼,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에게 그들은 그 어느 지휘자나 단체보다도 친숙한 단체였다.(연합뉴스, 1993.06.23.) 페도세예프는 첫 무대를 선보인 1993년부터 2014년까지 총 5회 국내무대를 찾았다.

1990년대 우리나라에 소개된 또 하나의 의미 있는 단체는 1996년 첫 내한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7회의 내한공연을 펼친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이다.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 미하일 플레트뇨프(М. Плетнев)가 1990년 창단한 이 단체는 ‘내셔널’이라는 이름이 붙긴 했지만, 사실 러시아 역사상 최초의 민간 교향악단이었다. 1980년대 구소련 내 개방화 물결의 산물인 이 악단은 매우 짧은 역사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개별 솔리스트들이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모스크바 필하모닉 등의 수석급 연주자들로 이루어져 국내 클래식 전문가들에게 명성을 얻고 있었다. 이 악단이 탄생 직후부터 급성장 할 수 있었던 데에는 동구권 최고권위를 자랑하는 차이코프스키 국제콩쿠르의 역할이 컸다. 각 분야 1등 수상자를 비롯한 입상자의 모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입상자 연맹’이 악단 창립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내에 모스크바 교향악단, 러시아 국립교향악단, 볼쇼이 극장 관현악단 등 러시아 1급의 주자들을 영입할 수 있었던 것도 입상자 연맹의 조력 덕분이었다고 볼 수 있다. 1996년 우리나라 공연에서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 서곡과 교향곡 41번 ‘주피터’, 피아노협주곡 15번 Bb장조 등 러시아 작품이 아닌 모차르트와 생상스의 곡만으로 레퍼토리를 구성해 다른 러시아 단체들이 보여준 공연과는 차별화 된 무대를 선보였다.(경향신문 1996.05.17., 한겨레 1996.05.23.) 뿐만 아니라 이 공연은 유럽 클래식 음악을 해석하는 러시아 예술가들의 시각이 반영되어 유럽관현악단의 연주회와도 변별되는 독자적 음악세계를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플레트뇨프는 작년까지 총 14회 공연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8차례 러시아 내셔널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6차례 단독 내한무대를 선보였다. 그중 5번은 지휘자가 아닌 피아니스트로서 국내 무대에 서기도 했다.

           <예브게니 스베틀라노프>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           <미하일 플레트뇨프>

2000년대에 개최된 수차례의 러시아 클래식 음악 공연 중 현대 유럽 클래식계를 이끌고 있는 유리 시모노프와 발레리 게르기예프(В. Гергиев)의 공연은 주목할 만하다. 시모노프는 2002년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게르기예프는 2005년 마린스키극장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한국 무대를 찾아 러시아 선율의 아름다운 세계를 국내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먼저 시모노프는 1990년대에 모스크바 필을 이끌고 내한한 바 있는 키타옌코와 에르믈레르(М. Эрмлер)의 뒤를 이어 1998년부터 이 악단의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를 맡았다.(연합뉴스, 2002.09.24.) 당시 모스크바 필은 1990년대 소련의 붕괴 이후 주요 연주파트의 수석음악가들이 미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서방세계로 이탈하는 큰 손실을 입은 상황이었는데, 이 단체가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러시아 정상의 교향악단으로 재도약하게 된 것은 강력한 리더십으로 이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던 시모노프 덕분으로 평가된다. 그는 2002년 모스크바 필 내한에서 차이코프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Ромео и Джульетта)> 환상서곡,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교향곡 4번 등 모두 차이코프스키 작품들로만 프로그램을 꾸며, 러시아 고전주의 음악의 세계를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 공연에 대해 음악평론가들은 시모노프를 “차이코프스키를 탁월하게 해석하여 호화스러운 낭만적 기풍을 고양하면서도 설득력을 잃지 않는 훌륭한 지휘자”로 설명하는가하면, 그의 공연에 대해 “차이코프스키의 환생”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그가 펼친 공연의 전반적 분위기를 묘사했다. 사실 이전의 모스크바 필 지휘자들이 야성미 넘치는 폭발적 사운드로 우리 청중을 충격에 몰아넣었다면, 시모노프는 유럽 지향적인 부드러운 음색을 선호했기 때문에 그의 차이콥스키는 아름다운 앙상블을 빚어내던 소련 이전의 러시아 오케스트라의 시대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동아일보, 2006.03.08.)

2005년에는 영국의 선데이 타임즈(2004년 11월)가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지휘자’로 선정한 게르기예프의 내한이 있었다.(한국경제, 2012.08.13.) 세계 예술계는 게르기예프에 대해 마린스키극장을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한다. 소련이 붕괴로 빚어진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궁핍으로 러시아 문화예술계가 절망에 빠져있던 시절, 마린스키극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1978년 처음으로 마린스키극장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던 그는 1996년에는 수석지휘자이자 예술 감독을 맡아 이전의 명성과 기량을 다시금 확보해 놓았다. 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 개인적인 업적과 명예 역시 최정상급이었다고 볼 수 있는데, 2005년 내한 당시 그는 네덜란드 로테르담 필하모닉과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수석지휘자, 상트페테르부르크 백야축제 및 모스크바 부활절축제 음악감독 등을 겸하면서 클래식 분야에서 독보적인 지휘자로 손꼽히곤 했다. 이처럼 세계적 명성의 게르기예프가 이끄는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이 2005년 9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렸다. 바그너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Кольцо нибелунга)> 4부작을 위해 한국을 찾은 게르기예프는 오페라 공연이 부재한 이틀 동안 오케스트라 공연을 마련했던 것이다. 이 음악회에서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스페인 기상곡’,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과 6번 등이 연주되었다.(연합뉴스 2005.09.05.) 이후 게르기예프는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함께 5차례 내한한 바 있다.

                              <유리 시모노프>                                  <발레리 게르기예프>

그밖에도 국내 무대를 찾은 단체들로는 바이칼 심포니 오케스트라, 유즈노 사할린스크 시립실내악단, 러시아 국립 타타르스탄 오케스트라, 블라디보스톡 팝스오케스트라, 중앙 러시아 국립극장 오케스트라, 러시아 국립 UFA 오케스트라, 사할린 시립오케스트라, 볼고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이 있고, 내한 무대를 선보인 러시아 지휘자들로는 마르크 고렌슈테인(М. Горенштейн), 알렉산드르 드리트리예프(А. Дмитриев), 발레리 폴랸스키(В. Полянский), 자우르벡 구그카예프(З. Гугкаев) 등이 있다. 이처럼 러시아의 다양한 관현악 단체들과 저명 지휘자들이 국내 관객들을 만나면서 클래식 강국으로서 러시아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기회들이 꾸준히 제공되었고, 국내 공연계는 ‘러시아 클래식 붐’을 이루어갔다.

특히 지휘자들의 내한공연은 국내 클래식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이는 2010년대로 진입하면서 악기 연주자들뿐만 아니라 지휘자들의 단독 내한이 잦아졌다는 사실로도 입증된다. 1988-1999년 2명, 2000-2009년 9명으로 21년간 총 11명의 지휘자들의 내한했던 데 반해, 2010년대부터 약 8년간은 무려 23명의 러시아 지휘자들이 초청되어 국내 연주자들과 함께 호흡했다. 특히 불가리아에서 그의 이름을 딴 국제 지휘 콩쿠르가 개최될 만큼 세계적 명성을 갖는 겐나디 로제스트벤스키(Г. Роджественский)와 모스크바 1세대 피아노학파 리흐터(С. Рихтер)나 니콜라예바(Л. Николаева)를 잇는 2세대 대표주자 미하일 페투호프(М. Петухов) 등의 내한은 국내 클래식 음악계에 지휘자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인식토록 한 계기가 되었다. (제주일보 2005.03.24., 경향신문 2012.01.11.)

사실 2000년대 초중반까지 지휘자의 중요성에 대한 음악계의 인식 부족은 여러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부분이다. 하지만 정명훈 예술 감독이 부임했던 2006년 이후 서울시향의 기량이 월등히 성장하고, 키타옌코나 에르믈레르와 같은 해외지휘자들이 이끌었던 국내관현악단이 가시적 성과를 확인시켜주면서 점차 지휘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이에 대해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는 “정명훈 감독의 부임 이후 해외에 이름 있는 지휘자들의 내한이 잦아지고, 여러 교향악단 관계자들이 그 효과를 체험하면서 시스템에 변화가 생겼다”고 언급하기도 했다.(뉴시스, 2018.03.27.) 그 후 매년 내한 지휘자의 수는 증가했고, 가장 최근인 2017-2018년 사이에는 무려 11명의 러시아출신 지휘자들이 국내 무대를 찾았다. 특히 2017년, 클래식 곡에 대한 남다른 이해와 해석으로 1973년 카라얀 지휘 콩쿠르에서 금상을 수상하고 라트비아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 및 모스크바 필하모닉 지휘자를 맡으며 보다 생동감 있는 음악세계를 서구에 알린 바실리 시나이스키(В. Синайский)의 내한은 국내 지휘계를 다시 한 번 자극하는 사건이 되기도 했다.

                       <바실리 시나이스키>                                 <겐나디 로제스트벤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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