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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하얀색’ 백만송이 장미에 얽힌 사연
분류회화
국가 러시아
날짜2019-03-15
조회수1,137
첨부파일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처음에는 가수 심수봉이 부른 <백만송이 장미>가 범상치 않은 사연을 지닌(!) 트로트 여가수가 부른 노래인 줄만 알고 있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백만송이 장미>의 원곡이 러시아 노래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서야 이 노래의 제대로 된 원전, 즉 <백만송이 장미>가 본디 러시아 노래이기 이전에, 1981년에 라트비아 방송국이 주관하고 개최한 가요제에서 1위로 입상한 <마라가 준 소녀의 인생>에서 시작된 노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라트비아 신화에 등장하는 최고 여신이자 대지 모신인 ‘마라’가 ‘라트비아’라는 딸을 낳고 보살폈지만, 행복을 가르쳐주지 못하고 떠난 탓에 딸이 끔찍한 운명에 처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노래의 주된 내용이다. 러시아어 버전은 이후 구소련 시인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가 작사한 가사에 라트비아 원곡의 멜로디를 붙여서 완성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러시아어 버전의 <백만 송이 장미>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러시아 국민가수 알라 푸가초바가 불러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라트비아 원곡에서 러시아어 버전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노래 가사 역시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개사 된다. 라트비아 원전에서는 마라의 딸이 겪게 되는 불행한 운명은 독일과 소련에 의해 점령당하는 라트비아의 운명을 암시한 것이라고 한다. 구소련 정치인의 입장에서 볼 때 그리 편치만 않은 내용을 담고 있는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어로 개사를 감행해서라도 자기들 노래로 만든 점을 보면, 비록 가사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 노래의 멜로디만큼은 러시아적 감성에 딱 들어맞은 것이 아닌가 싶다.

당시 보즈네센스키는 조지아 출신의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가 프랑스 출신 여배우 마르가리타를 짝사랑 했던 실화에서 모티프를 얻어 <백만송이 장미>의 개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심수봉이 부른 <백만송이 장미>를 포함하여 라트비아 버전과 러시아 버전의 <백만송이 장미>는 그 가사의 내용이 제각각이지만, 노래를 감싸고 흐르는 애잔함과 응답받지 못한 사랑으로 인한 슬픔의 강도는 동일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음악 배틀 프로그램 <복면가왕>에서 ‘우리동네 음악대장’으로 분한 ‘국카스텐’의 리더 하현우가 심수봉 버전의 <백만송이 장미>를 리메이크 하면서 중장년 세대는 물론 젊은 세대에게 새삼 주목받은 바 있다. 당시 하현우의 선곡 자체도 매우 의외였지만, 하현우의 날카로운 음색에 최대한 감정이 절제된 애절함을 입힘으로써 나름 성공적인 리메이크 버전으로 탄생되었다.

좀 더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한국어 버전과 러시아어 버전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참고로 한국어 버전의 가사가 러시아어 버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잦은 후렴구를 반복하는 이유로 인하여, 비교 대상이 되는 두 가지 버전의 노랫말 사이에 부분적으로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 백만송이 피워 오라는

진실한 사랑 할 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진실한 사랑은 뭔가 괴로운 눈물 흘렸네

헤어져 간 사람 많았던 너무나 슬픈 세상이었기에

수많은 세월 흐른 뒤 자기의 생명까지 모두 다 준

비처럼 홀연히 나타난 그런 사랑 나를 안았네

 

이젠 모두가 떠날지라도 그러나 사랑은 계속 될거야

저 별에서 나를 찾아온 그토록 기다린 이인데

그대와 나 함께라면 더욱 더 많은 꽃을 피우고

하나가 된 우리는 영원한 저 별로 돌아가리라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옛날에 한 화가가 살았네

       작은 집 한 채와 그림들이 전부였네

       그러나 그는 여배우를 사랑했네

       꽃을 사랑하는 여배우를.

       그래서 화가는 자기 집을 팔았네

       그림도 팔고 피도 팔았지

       그리고 그 모든 돈으로

       꽃으로 넘치는 바다를 샀다네

 

       백만 송이, 백만 송이, 백만 송이 선홍빛 장미

       그대 창가에서 창가에서 창가에서 보고있는지

       사랑에 빠진 사랑에 빠진 진정 사랑에 빠진 그 누군가가

       그대를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내던져 꽃으로 바꿔버리려 한다네

 

       아침에 그대가 창가에서 일어나게 되면

       아마도 그대는 정신이 혼미해질걸?

       마치 계속 꿈을 꾸는 것처럼

       광장이 꽃으로 가득 차 있을 테니...

 

       정신을 차리게 되면

       대체 어떤 부자가 저기에 저렇게 많은 꽃을 뒀을지 궁금해 하겠지?

       하지만 창문 아래엔 간신히 숨을 내쉬면서

       가난한 화가 한 명이 서 있을 뿐

 

       만남이 있었고 시간은 흘러갔지

       한밤에 기차가 그녀를 태우고 떠나버렸네

       그러나 그녀의 삶에는

       제정신으로는 믿기 힘든 장미의 노래가 남았다네.

       화가는 홀로 남은 삶을 살아갔고,

       수많은 불행을 견뎌냈지만,

       그의 삶에는

       꽃으로 가득한 광장이 남았다네...


한국어 버전에서는 여전히 응답 없는 사랑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여인에게 자신의 모든 마음을 바치려는 남자 주인공의 모습 속에서, 지고지순함의 정도를 넘어서 다소 집요함까지 느껴지는 사랑에 대한 갈구가 엿보인다. 러시아 버전에서 사랑의 주체로 등장하는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는 자신을 떠나버린 사랑에 맹목적으로 집착하지 않고, 고단한 삶에 단비 같은 존재로 간직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듯하다.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사랑을 받았던 여인이 오히려 자신이 버리고 떠난 사랑을 뒤늦게나마 그리워하며 아쉬워하는 것처럼 비춰진다.

러시아어 버전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서 <백만송이 장미>를 구입한 화가에게는 그 사건이 아름다운 시절의 추억으로만 남겨졌지만, 현실의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에게는 사랑하는 여인의 형상이 남겨졌다. 실제로 니코 피로스마니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의 이름을 그대로 제목으로 사용한 <여배우 마르가리타>라는 작품을 완성하게 된다.

                                            
<여배우 마르가리타> (니코 피로스마니 作, 1909年)


그런데 작품 속에 그려진 여배우 마르가리타는 매우 평범하게 생긴 모양새이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마르가리타는 때로는 무대에 서고, 필요할 경우 홀에서 서빙을 보기도 하면서 뭇 남성들의 시선을 잡아 끌었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행동하진 않는 도도한 매력을 풍기는 여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림 속 여인의 모습에서 성숙한 여인의 매력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이제 막 발레를 배우기 시작한 어린 아이처럼 다소 어정쩡한 포즈를 취한 모양새에 아이들만 신을 것 같은 줄무늬 스타킹, 다소 유치해 보이는 팔찌와 한 손에 움켜쥔 꽃다발은 다소 우스꽝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앞섶이 깊게 파인 의상마저 여배우의 성숙미를 드러내거나 풍만함을 강조하기보다는 오히려 몸을 평면적으로 보이게 하는데 일조할 뿐이다. 하지만, 대신 여배우를 온통 감싸고 있는 흰색과 배경으로 사용된 코발트 블루에 가까운 청량감 넘치는 푸른색이 남다른 순수함을 그림에 부여해주고 있다.

<여배우 마르가리타>에서 마르가리타의 손에 들려진 꽃의 색깔이 눈길을 끈다. 보즈네센스키는 니코 피로스마니가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서 마르가리타에게 바친 장미가 ‘선홍빛 장미’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의 그림에서 마르가리타의 손에 들린 장미의 색상은 ‘하얀색’으로 확인된다. 여배우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리고 심지어 니코 피로스마니 자신이 여배우에게 선물한 장미색까지 하얗게 물들인 것을 보면, ‘흰색 증후근’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화가가 유독 ‘하얀색’에 집착했다는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혹자는 화가가 유독 흰색을 많이 사용한 이유 중 하나로 그가 하얀색을 가장 이상적인 아름다움의 색으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니코 피로스마니는 아마도 현실의 마르가리타와 다소 동떨어진 어린아이 같은 모습으로 그녀를 화폭에 담아내면서 마르가리타가 지닌 화려한 ‘여성성’이나 선정적인 아름다움보다는 그의 눈에만 비친 어떤 순수한 일면을 강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전체의 1/3에 달하는 화폭을 흰색으로 채색함으로써 그녀에게서 풍기는 범접하기 힘든 도도함과 영원히 깨뜨리고 싶지 않은 이상적 대상에 대한 환상을 간접적으로 구현해냈다고 볼 수 있다.


                                                   
<자화상> (니코 피로스마니 作, 1900年)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여인이 어느 군인과 눈이 맞아 밤 기차를 타고 도주한 이후에도 과거의 사랑을 추억으로 간직한 채 ‘쿨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낸 노래 가사의 화가처럼, 니코 피로스마니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버림받은 후에도 정신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무너지지 않은 채 남은 삶을 살아갔지만, 안타깝게도 경제적으로는 매우 비참한 말년을 보냈다. 거의 부랑자처럼 떠도는 신세였지만, 여전히 그림에서 손을 놓지 못했던 그는 자신의 그림을 선술집 장식용으로 파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고, 물감은 물론 그림을 그릴 캔버스마저 구입할 여력이 없었기에 선술집이나 식당 주인들이 선심을 쓰듯 내어준 낡은 간판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의 표정은 한결같이 온화하고 평온함을 유지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그림을 그리는 일을 사랑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결국 혁명이 일어난 이듬해, 빈곤층을 위한 병원에 묶고 있던 니코 피로스마니가 방에서 두문불출한 지 거의 일주일 만에 아사 직전의 상태로 발견된다. 하지만 눈을 깜박일 기력조차 남지 않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는 손에서 붓을 놓지 않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기적을 바라는 모두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결국 다음날 니코 피로스마니는 사연 많은 삶을 마감하고 세상과 작별을 고하게 된다.


                                       
<니코 피로스마니의 죽음> (라도 구디아쉬빌리 作, 1946年)

 

후일 조지아 출신의 화가 ‘라도 구디아쉬빌리’가 선배 화가의 마지막 순간을 담은 작품 <니코 피로스마니의 죽음>을 선보이게 된다. 구디아쉬빌리의 작품 속에서 니코 피로스마니의 최후의 모습과 더불어 니코의 작품 2점이 ‘그림 속 그림’의 형태로 화가의 앞뒤로 놓여있는 형상을 발견할 수 있다. 화가의 머리 뒤편에는 1905년에 그린 <기린>이, 화가의 전면에는 1915년에 완성한 <풍경 속 노루>가 배치되어 있다.
 

       <풍경 속 노루> (니코 피로스마니 作, 1915年)                     <기린> (니코 피로스마니 作, 1905年)


두 작품이 완성된 시기는 놀랍게도 화가가 자신이 모든 것을 바쳐 사랑했던 여인 마르가리타의 초상을 그렸던 시기인 1909년 전후에 위치한다. 물론 구디아쉬빌리의 상상력과 실제 니코 피로스마니의 죽음의 현장에 대한 기록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이긴 하지만, 자신의 삶의 마지막 순간에 피로스마니가 가장 보고 싶어 했으며, 또 그를 지켜줬던 존재는 아마도 마르가리타였던 것이 아닐까...? 고단했던 그의 삶 속에서 마르가리타는 한 때 빛을 선사했던 존재였고, 비록 이루어지진 못했지만 화가 자신의 기억 속에서도 마르가리타를 사랑했던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기억된 것은 아닐지...

두 가지 작품 모두 사람이 아닌 동물, 그것도 기린과 사슴이라는 반대되는 습성을 지닌 동물을 그리고 있는 점이 매우 특이하다. 기린은 본디 수컷끼리 무리지어 생활하기를 좋아하는 동물이며, 노루의 경우, 사슴과에 속하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유일하게 한 마리의 암컷과 사랑을 나누는 습성을 지닌 동물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어쩐지 피로스마니의 머리 뒤편에 놓인 기린 그림은 마르가리타를 만나기 이전 독신 생활에 젖어있던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그의 앞에 놓인 노루 그림은 한 명의 여인만 사랑했던 스스로의 모습을 반영한 작품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피로스마니는 자신의 생애 마지막을 마르가리타를 만나기 이전의 시점에 그린 그림과 그녀가 떠난 이후에 완성한 그림 그 시간의 지점 어딘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 속에 가두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피로스마니 作 <여배우 마르가리타>의 실제 인물로 추정되는 여인(좌)과 루브르 박물관에 나타난 여인(우)


그렇게 피로스마니가 자신의 고단한 삶을 마감한 후, 루브르 박물관에서 원시주의 화가 전시회가 개최되었고, 그중에는 피로스마니의 작품도 함께 포함되어 전시되었다. 그런데 당시 매일같이 피로스마니의 <여배우 마르가리타>라는 작품 앞에 나타나 말없이 한동안 작품만 바라보고 가던 여인이 있었다. 며칠 동안 그녀를 지켜보면서 심상치 않은 눈치를 챈 루브르 박물관 안내원은 마침내 그녀에게 다가가서 이름을 물어보았고, 예상한 대로 그녀는 자신이 바로 작품 속 ‘마르가리타’라고 대답했다. 이어서 작품 감정위원회가 소집되고, 자신이 마르가리타라고 주장하는 여인과 작품 속 여인의 일치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한다. 물론 작품 속에 묘사된 여인으로부터 DNA를 추출할 수도 없고, 그 여인이 실제 모델인지에 대해 답해 줄 수 있는 당사자인 피로스마니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에 진위 여부를 확실히 밝힐 수는 없다. 그저 피로스마니 생전에 그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줬던 여인이 그의 사후가 되어서야 찾아와 작품에 사연을 덧입힘으로써, 작품에 얽힌 서글픈 스토리와 화가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깊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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