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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새로운 이론은 어떻게 오는가? ― 러시아 형식주의 백년을 돌아보며
분류철학과 사상
국가 러시아
날짜2019-03-14
조회수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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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한 문예지로부터 러시아 형식주의에 관한 글을 한 편 써달라고 청탁받았다. 한국 현대 시인들을 주로 다루는 잡지인데, 러시아 형식주의가 세상에 나온 지 백 년여가 지나는 시점에서 한국의 어떤 잡지도 특집을 내지 않았길래 한번 다루어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청탁을 받은 후 관련서적을 뒤적이며 연대를 따져보았다. 빅토르 슈클롭스키나 보리스 에이헨바움, 유티 티냐노프와 로만 야콥슨 등이 모여 오포야즈 즉 시어이론연구회(ОПЯЗ, Общество изучения теории поэтического языка)를 결성한 게 1916년 무렵이니 형식주의가 등장한지 얼추 백 년 정도 흐른 게 분명했다. 러시아 전공자인데다 나름대로 이론 연구가에 속하는 나조차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던 문제였던지라 저도 모르게 부끄러움과 탄식이 솟아나왔다. 하긴 형식주의뿐인가? 관련 학회야 분기별로 열리기는 하지만, 학문뿐만 아니라 문화 일반의 영역에서도 러시아산(産) 이론이 주목을 끌었던 게 대체 언제적 일인가? 전공 영역을 제외한다면 이른바 ‘러시아 이론’이라 불릴 만한 학문적 근거에 대한 관심과 탐구가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유효하게 작동할 수 있을까? 새삼스러운 질문들이 고개를 든다.

학문에도 유효기간이 있을까? 특정한 관점과 방법론을 갖고 현실과 사물에 관해 연구하는 체계를 학문이라 부른다면 여기에도 시한이 있음은 당연할 것이다. 현실은 날것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역사와 사회적 조건에 따라 상이한 양상을 보이기에, 각각의 조건마다 무엇을 학문으로 인정하고 인정하지 않을지가 매번 다르게 결정되기 때문이다. 가령 데카르트의 17세기까지만 해도 동물은 인간보다 기계에 더 가까운 존재였다. 영혼은 인간만의 유일한 특징이자 특권이었기에 그것이 결여된 동물은 기계적 원리에 가까운 조직체로 분류되었고, 인간과는 다른 방법에 따라 연구되어야 했다. 하지만 진화론적 인식은 인간을 동물의 일종으로 보게 만들었고, 양자는 생명 현상의 연속성 아래서 고찰되며 탐구된다. 나아가 오늘날엔 인간과 동물조차 기계적 특징을 통해 포착되는데, 라섹처럼 간단한 일상 의료도 유기체와 기계의 연속성을 상정해야만 집도 가능한 수술이 된다는 것이다. 단순한 사례지만 이 모두는 학문의 체계란 어디까지나 그것이 놓여있는 역사와 사회의 조건에 따라 상이한 분류법의 산물이며, 그 조건이 사라지거나 교체되면 학문 자체의 존립 여건도 변화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애초에 러시아 형식주의에서 시작했으니, 인문학적 사례로 이야기를 보충해 보도록 하자. 형식주의 이전에 문학이론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영국의 맑스주의 문학이론가 테리 이글턴은, 형식주의가 나오기 전의 문학이론이란 한담(閑談)에 불과했노라고 단언한다. 저 멀리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가 <일리아드>나 <오딧세이아>를 지었을 때부터 문학작품에 대한 품평의 기술로서 비평은 있었을 것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보여주듯 문학이론에 값하는 텍스트도 존재했다. 그러나 순수한 ‘이론’으로서 문학이론이란 19세기까지 제대로 고찰되거나 고안된 적이 없다. 17~18세기에 등장한 고전주의는 귀족들에 의해 전유되었으며, 여기서 비평이란 문체의 우아함과 천박함을 따지는 것이었기에 딱히 ‘이론적’이라 부를 지점이 거의 없었다. 다음 세기의 낭만주의 역시 마찬가지인데, 사변에 포획되지 않는 상상력의 힘을 신봉하던 시대에 이론이 자랑하는 논리적 언어가 기를 펴긴 힘들었기 때문이다. 19세기 사실주의는 어떠했을까? 부르주아 사회의 모순과 질곡에 대항하던 ‘사실’의 문학은, 피사레프나 도브롤류보프, 체르니셰프스키의 이름에서 금세 확인할 수 있듯 ‘강령’의 문학이자 ‘이념’의 예술에 더 가까웠다. 고발과 폭로를 통해 사회를 바꾸려던 그 시대의 문학가들에게 분석의 과학으로서 이론은 차라리 반(反)사회적 유희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형식주의의 기여는 그처럼 현실과 사회에 대한 목적의식을 넘어서는 관점과 방법에서 기인한다. 이념 비평이 특정한 목적론적 내용을 향한 열정과 사유의 추동이라면, 형식 비평은 서로 다른 형식들 사이의 단차와 격차, 간극에 주목하고 그것이 인간에게 어떤 식으로 자극을 주고 어떻게 즐거움을 만들어 내는지, 그 지각의 양식에 관심을 기울인다. 예컨대 19세기 초엽 미국의 선원들이 처음으로 나팔바지를 만들어 입었을 때는 그것이 패션의 상징이 되리라곤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것이 전 사회적 유행이 되고, 얼마 후 시들해졌을 때는 더 이상 누구도 나팔바지를 입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패션의 역사에서 나팔바지는 여러 차례 재등장하여 세간의 관심을 끌었고, 한국에서도 1960~70년대 청년 문화의 아이템이 되어 크게 유행하다가 사라졌다. 최근에는 노래가사를 통해 재음미되면서, 다시 새로운 유행의 순환을 기대하는 형편이다. 이 현상을 통속적으로 정리한다면, 모든 유행은 돌고 돌아 되돌아온다는 것일 게다. 이를 인문학적으로는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인간은 익숙함과 낯섦 사이의 감각적 차이를 통해 세계를 인지하고, 그로써 쾌감과 불쾌감을 맛보는 존재라고. 슈클롭스키의 저 유명한 ‘낯설게 하기’(остронение)는 어떤 대상으로부터 우리기 얼마나 익숙함과 지루함을 느끼는가, 낯선 대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새로움과 즐거움을 느끼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론적 개념이다. 통념과 달리 형식주의는 단지 형식에만 몰두하는 유파가 아니라, 형식이 빚어내는 감각의 차이와 그 불쾌 및 쾌감의 정도를 검토하는 인간과학적 관점과 태도를 말한다.

인간은 무한수의 차이를 일일이 지각하며 각자마다 다른 감각을 느끼지는 않는다. 오히려 인간에게 뚜렷하게 지각되는 것은 서로 대립적인 감각, 차이로서 인지되는 이질감이다. 남성과 여성, 홀수와 짝수, 청색과 적색, 좌측과 우측 등의 전통적 대립항들은 그 같은 차이의 체계들이 오랫동안 관행화되고 굳어져 사회적 기호들로 굳어진 것들이다. 그러한 이항대립의 체계는 다양하게 분해되고 조합됨으로써 모든 문화가 갖는 다채로운 특이성 속에서 나타나고 다시 사라진다. 결국 유행이든 경향이든, 세계관이든 특정 시대를 규정짓는 특징들이란 그와 같은 차이들의 체계가 어떤 식으로 변주되고 변화되는가를 나타낼 뿐이다. 형식주의자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이론가들이며, 형식주의가 현대 이론의 출발점에 서 있노라는 이글턴의 지적은 이로부터 타당성을 얻는다. 모든 문화는 유행과 패턴의 체계이고 돌고 도는 가운데 반복된다는 사실 자체는 20세기 이전에도 잘 알려져 있었다. 하다못해 고대 세계의 화장실에도 “요즘 젊은 것들은 예의가 없다”는 낙서가 적혀 있다지 않은가? 관건은 그렇게 잘 알려진 상식 혹은 통념이 어떤 식으로 인식으로 알려지며, 사라지고 되돌아오는지 개념적으로 밝혀주는 데 있다. 러시아 형식주의가 20세기의 이론으로서, 모던시대의 이론이자 포스트모던의 이론으로서도 손색없이 작동할 수 있던 근거에는 그 같은 통찰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 시대로 돌아와서 이야기해 보자. 문학뿐만 아니라 예술과 문화, 나아가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으로서 형식주의는 죽었는가? 역사적 대상으로서 러시아 형식주의는 그것이 처음 세상에 나타난지 십여 년 만에 사라지고 말았다. 초기 창시자 중 하나인 슈클롭스키는 1984년에 사망했지만 그가 관여했던 새로운 이론 자체는 1925년 무렵에는 더 이상 유효한 관점이나 방법이 아니었다. 거기엔 물론 스탈린주의 사회라는 정치적 문제가 얽혀있으나, 형식주의 자체의 문제도 없지 않았다. 아무리 뛰어난 분석이며 논리라 해도, 그것 하나만으로 모두의 관심사를 영원히 사로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떤 이론이라 해도 역사와 사회의 조건이 바뀌면 소명을 다하고 수명마저 다할 수 있다. 그렇게 학문의 역사적 유행으로서 형식주의는 역사적으로 막을 내렸던 것이다.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란 사실이다.

형식주의가 이론으로서 진정 사람들을 주목하게 만들고 큰 흐름을 이끌어 냈다면, 그것은 세계와 인간, 문화와 일상을 다르게 보고 다른 식으로 읽을 수 있게 해준 힘 때문이었다. 변화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 현상의 공시적 특징만이 아니라 통시적 흐름조차 조명했던 착안의 신선함이 거기 있었다. 이는 어쩌면 사회와 역사의 변혁이 한참이던 20세기 초엽 러시아 지성계의 분위기, 혁신과 전복을 가능하게 만든 낯선 시선과 목소리가 어울림으로써 가능했던 현상이었을지 모른다. 그 같은 지성적 감응의 ‘분란’이 없었다면 과연 러시아 형식주의가 이 세상에 나타날 수 있었을까? 아카데미의 권위와 전통에 억눌려 이질적인 감성을 길러낼 수 없었더라면, 청년 지식인들이 문화와 학문, 사회를 근저에서부터 뒤집어 볼 수 있는 이론을 계발할 시도조차 할 수 있었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기에, 이런 질문은 그저 물음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후진을 면치 못했던 1세기 전의 러시아가 돌연 세계사의 선구가 되어 내달릴 수 있었던 백년 전의 상황을 돌아보면, 현재 러시아의 침묵이 어떤 의미로 우리에게 와 닿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당연하게도, 이와 같은 성찰과 반성은 저 먼 북국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세기의 끝 무렵, 우리는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루었다고 자부심에 차서 이제 문화적 대국이 되리란 예언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십수년도 더 지난 지금 우리의 문화는 어떤 상황인가? 문화를 풍요롭게 가꾸고 진작시키는 것은 물론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을 돌보기 이전에, 우리의 감각을 예민하게 다듬고 차이에 대한 안목을 길어내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학문적 체계로 형성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하지만 시쳇말로 ‘현실은 시궁창’이라던가. 최근 강사법 시행을 두고 벌어진 논란은 학문 자체의 진로나 미래를 논의하기에 앞서, 생계와 이권에 관련된 논쟁만을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고, 학문이란 것도 결국 그로부터 가능한 것일 테지만,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연구 자체보다 그 조건에 대한 문제에 신경을 온통 쏟아부어야 하는 것은 너무 억울한 느낌이다. 물론 그런 기분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탐구의 작업을 수행하는 연구자들이 있으리라 확신한다. 비록 현실은 복잡다단한 혼돈이 지배하더라도 이질적인 시선과 감각으로 새로운 형식주의, ‘지금-여기의 낯설게 하기’를 고안해 내는 학자가 분명 있을 것이다. 다만 그 힘겨운 과정이 희미하게나마 전망을 가져볼 수 있도록 작은 희망의 불씨가 조성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러시아 형식주의 백년의 소회를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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