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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유라시아 문화권력 메커니즘에 작용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 모델로서의 КВН 현상
분류대중문화
국가 러시아
날짜2019-03-01
조회수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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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대중문화 지형도 내 КВН 프로그램의 역사와 위상>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구소연방 내 유라시아 국가들은 소련붕괴와 자본주의 경제체제로의 급속한 편입 속에서 이른바 주권선언으로 상징되는 정치적 독립을 주창했다. 이들 국가들은 사회 전반에 걸친 제도에서 소비에트 스타일에서 벗어난 자민족중심주의 색채를 도입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당시에는 이것이 각국의 독립성을 드러내는 주요 요인들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되었고 문화의 독자성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예견되었다.

하지만 구 소련말기부터 가동된 민족주의 정서를 기반으로 하는 무수한 변화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비에트 체제하에서 이들 국가들의 정치·사회문화를 구성하는 제도들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들 국가들의 독립이 선언된 지 25년 이상이 지났지만 자국 민족의 독자성을 드러내기 보다는 소련시기에 확립된 문화예술의 형식을 규정짓는 프레임들이 그대로 계승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중적 구조는 특히 대중문화 영역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그 대표적 예가 “재미있고 창의적인 사람들의 클럽”으로 번역될 수 있는 КВН(Клуб Весёлых и Находчивых) 프로그램이다.

1957년에 시작해 오늘날까지 60년 이상 지속된 КВН은 러시아 텔레비전 역사상 가장 오랜 세월 방영된 정규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이 КВН 프로그램은 소비에트 체제에서 온전히 독창적으로 탄생된 것은 아니었다. КВН은 1957년 세르게이 무라토프가 제작한 프로그램인 ВВВ《유쾌한 질문쇼(Вечер весёлых вопросов)》를 원형으로 하는데, 이것은 체코의 방송 프로그램 «Гадай, гадай, гадальщик»를 모델로 하고 있다. 제작 당시 BBB 프로그램은 청중들이 방송 진행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었으며, 여기서는 유머가 반영된 답변이 선호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소련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가운데 진행자 이외에 청중이 참가한 최초의 생방송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매우 신선한 접근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BBB 프로그램은 높은 인기에 불구하고 3회에서 종영되었다. 당시 제3회 방송에서는 일종의 드레스코드로 겨울 의류인 가죽코트, 방한모자 및 펠트부츠와 전년도 12월 31일자 신문을 가져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입장을 예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2회 방송에서 프로그램 진행자인 작곡가 니키타 보고슬로브스키는 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고, 거의 모든 방청객들이 두터운 방한복의 겨울 옷차림을 하고 3회 방송 스튜디오에 들어오게 되면서 혼란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방송은 중단되었으며, 다른 프로그램으로 대체되지 않았다. 프로그램 종료시까지 텔레비전 화면에는 ‘기술적인 이유에 따른 중단’ 자막이 송출되었다. 방송 종료 이후 열린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결정에 의해 ВВВ 방송은 종결되었다.

  이후, 4년이 지난 1961년 11월 엘레나 갈페리나는 세르게이 무라토프에게 이 프로그램의 필요성에 대해 주장했고, BBB 제작인이 이를 КВН이라는 새로운 포맷으로 제작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КBH은 소비에트 국영 채널인 ‘페르비 카날’(Первый Канал)에서 첫 방영되었다. 이 프로그램의 초대 진행자는 알베르트 악셀로드였다. 하지만 알베르트 악셀로드는 제작진인 세르게이 무라토프, 미하일 야코블레프와 함께 1964년에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이후 진행자는 러시아 교통대학교(МИИТ) 학생이었던 알렉산드로 마슬랴코프 및 아나운서 스베틀라나 질초바로 교체되었다. 


KBH은 두터운 팬 시청자층을 확보한 인기 프로그램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7년동안 생방송으로 방영되었다. 하지만 참여 대학생들의 즉흥적인 유머와 반체제적 풍자에 위협을 느낀 검열당국에 의해 1972년 종영되는 수난을 겪게 된다. 이러한 시대적 격변 속에서 КВН 프로그램은 15년동안 방송이 금지되었다. 여기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은 것이 페레스트로이카였다. 이는 1960년대 모스크바 엔지니어링 건축대학(МИСИ) KBH팀 주장이었던 안드레이 멘쉬코프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여기서 프로그램 진행은 1970년대 중단 시 진행을 맡았던 알렉산드르 마슬랴코프가 맡게 되었고, 이후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오늘날까지 방송을 이끌어가고 있다.

1957년에 하나의 퀴즈 프로그램으로 시작되었던 КВН은 이러한 역사를 바탕으로 오늘날 러시아 미디어시장에서 시스템이 갖추어진 하나의 문화현상이 되었다. 초창기 КВН은 소비에트 전 지역에서 각 대학을 대표하는 학생들이 팀을 구성해 사회자 질문에 재치 있는 답을 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퀴즈 형식이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하며 노래와 춤, 그리고 개그 콩트가 가미되고 일정한 규칙에 따라 체계적으로 운영되면서 유라시아 국가 청년들을 사로잡는 쇼 프로그램으로, 나아가 유라시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전형이 되어 대중문화를 이해하는 바로미터로 비약적인 성장을 해 나간 것이다. 

<대중정치와 연계된 방송문화 아이콘으로서의 КВН 역할>

오늘날 КВН의 위상은 유라시아 국가들이 참여하는 단순한 인기 방송 프로그램의 차원을 넘어선다. 이는 페레스트로이카 무렵부터 소연방 내 유라시아 국가들의 КВН 참여가 더욱 활발해지면서 가능해졌다. 모스크바에서 개최되는 결승에 진출하기 위해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이들 국가 출신 참가자들이 지역구 예선에서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지역구 예선전은 지역방송 및 중앙방송의 전파를 탈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지역구 예선에 승리하여 결승에 진출한 팀은 공화국의 대표로 큰 호응과 지지를 얻었으며, 향후 지역 방송에 진출하여 핵심인물로 성장하기도 했다.

КВН은 화려한 심사위원단으로 유명한데, 그 판정단은 대중에게 영향력이 있는 연예인, 배우 및 작가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각 팀의 재치, 유머, 제작의 질적 가치 및 관람객 반응을 평가하며, 여기서 가장 고득점을 얻은 팀이 승리한다. 프리미어 리그 심사위원단은 대개 유명한 과거 КВН 참가자들이 참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방송계를 장악해 간 КВН 출신자들의 전례를 따라 러시아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내 수많은 팀들이 연예인 등용문으로 КВН 참가를 지향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러한 대중성과 그로 인한 사회적 영향력에 힘입어 여러 정치인들 역시 인지도를 높일 기회로 КВН에 출연하기도 하는데, 보리스 옐친, 블라지미르 푸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선거를 앞두고 КВН에 등장했다. 또한 KVN 게임은 외교 관계에도 도움을 주기도 했다. 1992년 9월 19일에 열렸던 CIS-이스라엘 게임은 러시아와 이스라엘(주로 러시아 측)의 관계를 완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블라지미르 푸틴의 KVN 50주년 행사 참여 사진>

КВН연합 공식 사이트에 따르면, 매년 5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КВН을 시청하며, 40,000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경쟁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경쟁하는 팀이 약 3,000개에 달하며, 100개 이상의 도시가 КВН 게임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КВН은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CIS권 내 여러 국민들이 즐기는 놀이문화로 자리 잡았으며, 러시아 및 CIS권 방송‧대중문화에서 하나의 거대한 사회현상으로 자리매김해 나간 것이다. 

КВН 프로그램이 오늘날까지 지속 번영할 수 있었던 토대에는 소비에트 시대와 현 러시아 방송계를 장악해 온 진행자 알렉산드르 마슬랴코프의 위상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그는 1964년부터 КВН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동시에, «АМиК» («Александр Масляков и Компания») 설립자이자 소유자이기도 하다. 오늘날 ‘알렉산드르 마슬랴코프’라는 이름은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가고 있으며, КВН 행사장에서 그의 인기 역시 실로 놀랍다. 하지만 문화 권력에 대한 그의 욕망을 간파한 비난 역시 적지 않다. 이에 따르면 마슬랴코프는 КВН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이용하면서 공연 참가자들의 성장과 함께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수입과 효과를 거두는, 즉 참가 희망자들에게 일종의 열정 페이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저널리스트들이나 문화평론가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드르 마슬랴코프는 기네스북에 올라야 할 정도의 경력을 지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의 50년 동안 그는 TV스크린에 등장해 있었다. КВН 프로그램은 마슬랴코프와 마찬가지로 세계 텔레비전에서 유일하며 독특한 현상이다. 반백년 이상 청중들을 웃긴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КВН 출신자들에게 있어 마슬랴코프라는 존재는 반박할 수 없는 권위이며, 절대 군주이다. 마슬랴코프의 독점적인 권력에 대한 비난도 존재하지만, 그의 말 한마디만으로도 КВН 프로그램을 스타제조기로 변화시켜온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늘날에도 TV방송계 수많은 유명인들이 “우리는 모두 КВН 출신이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 역시 아직은 공고한(?) 그의 문화왕국의 단면을 엿보게 한다.

<쇼 비즈니스 수익확장 모델로서의 КВН 현상>



КВН 프로그램은 오늘날 단순한 TV쇼를 넘어서서 엔터테인먼트 산업 및 비즈니스 수익 모델로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이것은 1990년 알렉산드르 마슬랴코프가 TV프로그램 제작업체AMiK을 설립해 КВН 프로그램을 직접 제작하기 시작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이 기업은 КВН 프로그램 제작과 함께 КВН 참가팀들의 음악 축제인 «Голосящий КиВиН», 소치 여름 КВН 대회도 만들어서 이를 주관하고 있다. 1997년 이후에는 방송제작용 КВН 이외에도 추가로 КВН 경연대회가 열리게 되면서 일반인들도 입장권을 사서 바로 관람할 수 있게 변경되었다. 그리고 2013년에는 КВН하우스-멀티미디어센터 “Planet КВН”(ММЦ «Планета КВН»)이 개관하여 TV 프리미어 리그용 КВН을 비롯해 다양한 КВН 프로젝트들이 이곳에서 제작되고 있다.

현재 КВН의 모든 권리는 Amik company에 있는데, 이 회사를 마슬랴코프가 소유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2015년 Forbes 러시아판은 생방송 및 녹화방송을 통한 Amik의 연소득이 350만 달러 이상일 것이라 기재한 바 있다. КВН의 지방 지부들 역시 КВН 프로그램에 참여하는데, 다시 말해 КВН이라는 거대한 방송문화 생태계에 참가하는데 돈을 지불해야 한다. ‘КВН’이라는 브랜드를 사용하는 팀들 역시 그들 수익의 10〜20%를 Amik company에 지불해야 한다. 또한 마케팅 과정에서 발생하는 광고업과 부차적인 수입 역시 적지 않다. КВН 콘텐츠의 일부분(연기, 유머, 노래 등)이라도 다수의 사회 미디어 플랫폼과 연동되거나 주요 TV채널들을 포함한 전략적 배포방식들(웹사이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신문을 통한 유머의 재발행, 라디오 방송 등)과 연접되면서 수익구조를 구축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КВН 측의 사업 확장에서 동반되는 다양한 양상은 러시아에서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산업, 즉 TV 방송콘텐츠를 엔터테인먼트 사업과 접목하는 선도적인 입장을 그대로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6년 6월 1일 Amik company는 Gazprom미디어와 함께 새로운 TV채널인 КВН TV를 런칭한 바 있다(http://kvnru.ru/06.04.2016/1/comments/). 더 나아가 이 방송의 주 타겟이 되는 관객층이 러시아뿐만 아니라 유라시아지역 내 이웃인 발트해 국가들과 조지아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은, 향후 КВН TV의 진출 전략을 가늠하게 하는 지표가 아닐 수 없다.

КВН은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쇼 비즈니스의 상업적 생산물이자 비즈니스 모델로서 설명될 수 있다. КВН이 러시아 내에서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사업체로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동력에는 정부의 협력을 배제할 수 없다. 사실 크레믈린 측이 КВН 소유주와 매우 가까운 관계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러시아 정부가 Planeta КВН 콘서트홀을 건축하는데 재정적 지원을 한 것, КВН 50주년 행사에서 마슬랴코프가 표창장을 받은 것, 블라지미르 푸틴과 드미트리 메드베제프가 КВН 행사 프로그램이나 КВН센터 공식 오프닝행사에 참여한 것 등 이미 적지 않은 단서들이 존재한다.

마슬랴코프가 정부의 지지로 부동산을 획득하면서 상당한 자산가로 변신할 수 있었다는 것 역시 КВН 브랜드의 오너와 크레믈린의 특별한 관계를 유추하게 한다. 또한 КВН이 러시아에서 시청자층이 가장 넓은 제1채널의 가장 시청률 높은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라는 점, 특히 이 방송이 가장 시청률이 높은 prime-time에 방영됨으로 해서 КВН 소유주는 가장 감성적인 콘텐츠를 통해 정부체제에 봉사하고, 크레믈린은 방송 콘텐츠 장악을 통해 전략적으로 정부를 지지하는 관객층을 확보하는 상호 호혜적 관계를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유라시아 국가들은 소련 시기에 정착된 КВН 프레임을 그대로 답습하는 면모와 함께, 이 방송콘텐츠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과 문화의식을 확인받고자 하는 노력을 동시에 경주하기도 한다. 이는 크레믈린과 마슬랴코프의 유착관계에 대한 일종의 저항으로서 이미 КВН을 경험했던 과거의 참가자들이 마슬랴코프의 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КВН과 유사한 콘텐츠들을 생산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또한 КВН과 유사한 포맷으로 양질의 시청각 콘텐츠를 제작·소통할 수 있는 채널의 증가 역시 КВН에는 일종의 도전인 셈이다. 이처럼 유라시아 대중문화 및 방송문화에서 나타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과도한 집중화와 이에 대한 반작용은, 포스트소비에트 시대에도 불구하고 문화 제국주의에 대한 부활을 꿈꾸는 러시아(КВН 현상)에 대한 모방(선망)과 저항이라는...... 유라시아지역 문화지형도 내에서 꿈틀거리는 헤게모니 쟁탈의 한 단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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