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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니콜라이 게 (Н. Ге)의 ‘절규하는 그리스도’
분류회화
국가 러시아
날짜2019-02-15
조회수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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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이콘과 유럽 성화에서 묘사된 그리스도의 형상은 대부분 ‘고요함’과 ‘평안함’의 분위기 속에 묘사되곤 한다. 심지어 십자가에 매달린 고통의 순간조차도 그리스도는 물론, 그를 에워싼 주변의 인물들마저 크게 울부짖거나 동요하지 않은 채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고요 속의 슬픔’을 잠잠하게 전한다.

이렇듯 ‘정형화’ 된 그리스도의 형상은 러시아 이콘에서는 물론 르네상스 시대까지 화가들 사이에서 전통처럼 이어져 내려갔다. 하지만 르네상스 말기에 접어들면서 ‘한스 홀바인’과 같은 화단 내 이단아들이 출현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온화하고 고요한 그리스도의 형상에서 벗어나, 종종 다분히 인간적이고 ‘物’적인 존재로 묘사된 그리스도의 형상이 관찰되곤 한다.

니콜라이 게 역시 러시아인들이 이콘을 통해 접했던 전통적인 그리스도의 형상과 다르게 자신만의 미학적 소신과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의 그리스도 형상을 창조해내게 된다.

그리스도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행보와 그의 죽음은 니콜라이 게의 창작 말년에 이르러 그의 작품을 구성하는 중심테마가 된다. 또한 그의 말년 작품에서 ‘빛’은 표현주의적인 기법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진실을 조망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리스도를 테마로 삼은 니콜라이 게의 작품은 대중은 물론 동시대 작가들로부터도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진리란 무엇인가?>는 이동파 전시회 목록에서 제외되었고, <산헤드린 재판> 역시 황제의 명으로 전시가 금지되었다.

<산헤드린 재판>에서 니콜라이 게가 묘사한 그리스도의 형상은 알렉산드르 3세에게 영 못마땅했던 같다. 그는 작품 속 그리스도를 보자마자 “니콜라이 게의 그리스도는 허약해 빠져서, 키도 작고, 볼품이 없어. 누가 이걸 그리스도라고 하겠나, 이건 병에 걸린 ‘미클루호-마클라이’야!”라는 평을 내놓으며, 당장 그림을 전시장 벽면에서 철수시킬 것을 명했다.

                                                <산헤드린 재판> (니콜라이 게 作, 1892年)


실제로 <산헤드린 재판>에서 니콜라이 게의 손끝에서 탄생한 그리스도의 형상은 공회의 지도자들에게 묵묵히 맞서는 당당한 그리스도의 모습이 아닌, 다소 겁먹고 움츠린 듯한 ‘작은 인간’의 모습에 가깝게 묘사되어 있다. 얼핏 그리스도의 모습은 러시아 국민작가 ‘푸시킨’의 모습을 닮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회 지도자는 그리스도의 옷깃을 쥐어 잡고 턱을 치켜든 채로 “어디 변명이라도 좀 해보시지?”라는 표정으로 조롱하듯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스도의 형상만 놓고 보면 알렉산드르 3세가 왜 이 그림을 못마땅해 했는지 다소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림의 전체 구도를 놓고 보면 니콜라이 게의 숨겨진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니콜라이 게는 단순히 ‘기술적’으로 빛을 사용하는 화가가 아니라, ‘의미적’으로 빛을 다룰 줄 아는 화가였다. 니콜라이 게가 자신의 작품 속에서 어느 인물에게, 혹은 어느 방향으로 빛은 주는가에 따라서 그림 속 숨겨진 의미가 강화된다. <산헤드린 재판>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엄연히 ‘그리스도’이다. 일반적으로 작품의 테마와 주요 인물이 중앙에 배치되고 빛에 노출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 그림에서 그리스도는 볼품없고  움츠러든 형상으로 묘사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림 좌측 벽면에 밀려서 빛에 거의 노출되지 못한 상태로 그려져 있다. 그림에서 가장 빛을 많이 받는 존재는 우측 전면에 위치한 대제사장과 백성 대표로 뽑혀온 듯한 젊은 청년이다.

우리나라 말로 ‘공회’로 번역되는 ‘산헤드린’은 당시 유대인들의 최고정책의결권을 가진 의회와 같은 구실을 했으며, 사형을 제외한 판결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또한 산헤드린은 안식일과 유대인 절기를 제외하고는 매일 열렸는데, 야간에는 소집되지 않는 것이 관례였고, 재판 시 두 명의 증인이 배석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니콜라이 게의 그림에서는 그리스도의 죄를 입증할만한 증인도 보이지 않고, 이것이 과연 재판장인지 시장통인지 알 수 없는 형태로 공회의 내부가 묘사되어 있다.

정작 이 사건의 중심이 되는 그리스도는 후면에 밀려 어둠 속에 침잠되어 있으며, 재판의 ‘내용’과 ‘의미’는 완전히 상실된 채, ‘의식’과 ‘의전’만 남아 화려한 빛에 노출되어 있다. 게다가 의회의 출구가 어둠으로 뒤덮인 형태는 ‘일출에서 일몰까지’로 규정되어 있는 의회 소집 시간이 아닌 ‘불법적인 시간’에 ‘불법적인 행위’가 일어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이렇듯 니콜라이 게는 자신만의 독특한 구도와 묘사 방식을 통해 그리스도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재판이 불법적인 행위였으며, 아무도 진실을 보려고 노력하지 않은 채 ‘보여주기’식 의전에 집중했던 역사적 사실을 비판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골고다> (니콜라이 게 作, 1893年)


니콜라이 게의 또 다른 말년작 <골고다>에서 그리스도 좌측에 있는 험악한 표정의 죄수는 마치 아프리카 지역의 아랍계 사람처럼 묘사되어 있다. 이는 기독교를 믿지 않는 ‘이방인’을 상징적으로 지시하기 위해 화가가 취한 방편으로 보인다. 당시 기독교에서 칭하는 ‘이방인’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유대민족이 아닌 이민족을 의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비기독교인’에 대한 상징어처럼 사용되었다. 십자가 처형을 앞둔 상태에서도 ‘믿음없는 이방인’으로 묘사된 인물은 자신에게 십자가형 집행을 지시하는 간수를 험악하기 이를데 없는 표정으로 노려보며 맹수와도 같은 이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스도 우측에 위치한 또 다른 죄수는 좌측의 죄수처럼 발에 족쇄를 차고 있지는 않지만 양 손은 뒤쪽으로 포박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짐작건대, 그는 좌측의 죄수처럼 흉악범은 아니며, 뭔가 좀 더 경미한 죄로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역시 죄를 뉘우치기보다는 아직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인지하지 못한 듯 여전히 뭔가 속세의 일을 걱정하는 듯한 눈빛으로 땅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오로지 중앙에 위치한 그리스도만이 두 손과 두 발 모두 결박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로 묘사되어 그의 무고함을 암묵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작품 속에서 그리스도만이 유일하게 자신의 얼굴을 하늘로 향한 채 탄식하고 있다. 그의 탄식하는 모습은 뭉크의 <절규>와 비교된다.


                                                                <절규> (뭉크 作, 1893年)

 
뭉크의 작품에서는 화폭에 위치한 주인공 몸속 마디마디로부터 외부를 향해 절규가 울려 퍼지는 것으로 보이지만, 니콜라이 게의 화폭에 담긴 그리스도는 세상의 모든 소리와 절규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형상을 취하고 있다. 이는 성서에 기록된 바와 같이, ‘세상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와서 지상에 있는 모든 고통과 아픔, 죄와 연민을 자신의 몸속에 가두고 떠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골고다>보다 약간 앞선 시기에 제작된 니콜라이 게의 또 다른 말년작 <십자가 처형>에서 묘사된 그리스도의 형상은 뭉크의 주인공보다 더 강하고 처절한 모습으로 ‘소리 없이’ 절규한다.


                                                 <십자가 처형> (니콜라이 게 作, 1892年)

 
니콜라이 게의 또 다른 그리스도 연작 <십자가 처형>은 십자가에 매달린 채 삶의 마지막 순간이 임박한 그리스도의 형상이 처절하다 못해 처연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충격적 아우라는 황제 알렉산드르 3세의 짧고 굵은 감상평 ‘이건 도살이야!’라는 말 한마디를 통해 그대로 전달된다.

<십자가 처형>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지고, 고통의 강도와 고통으로 인하여 내지르는 ‘무언의 비명’이 그대로 느껴진다. 좌측에서 그리스도를 지켜보는 다른 죄인의 표정에서 연민과 안타까움이, 우측에 그리스도와 함께 매달린 다른 죄인의 앙상한 갈비뼈와 허리가 꺾인 모습을 통해 그림을 통해 전달되는 육체적 고통의 강도가 배가된다.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는 이미 피를 많이 흘려서 더는 버틸 힘조차 없이 실신한 상태로 그려졌다. 다리 힘은 풀려서 거의 주저앉다시피 한 상태이며, 아래로 쳐진 육신으로 인해 무게를 감당하기 힘든 상태에 이른 두 손은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듯한 모습으로 십자가 기둥을 가까스로 움켜쥐고 있다.

얼핏 쭈뼛하게 선 듯한 머리칼과 동자가 뒤짚혀서 흰자만 남은 텅 빈 동공, 반쯤 벌어진 채 치아를 드러낸 그리스도의 입을 묘사한 니콜라이 게의 그림은, 성서적 테마를 기반으로 제작된 작품이라는 점을 제거해버리는 순간, 알렉산드르 3세의 말과 다를 바 없는 ‘도살’의 현장에 가까운 그림이 되어버린다. 도스토옙스키의 장편 <백치>의 한 장면이 오버랩 되는 순간이다.


                                       <무덤 속 그리스도의 주검> (한스 홀바인 作, 1522年)


<백치>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이폴리트는 로고진의 집에 걸려있는 한스 홀바인의 그림 <무덤 속 그리스도의 주검>을 보고 ‘그리스도의 죽음’이 아닌 ‘주검’에 주목한다. 그림 속에서 그가 발견해 낸 것은 그리스도가 고통 속에서 죽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그런 죽음에 대한 연민도 아닌, 그저 고통 속에 소멸되어 버린 한 인간의 처참한 시신이었다. 이런 그림을 보고 있자면 가지고 있던 믿음조차 없어지게 될 것 같다는 말은 비단 도스토옙스키의 주인공들만 느낀 것이 아니라, 니콜라이 게의 <십자가 처형>을 보는 관객들도 동일하게 느끼는 감정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였을까? 니콜라이 게는 전통적으로 이콘의 작품명에 적용되곤 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 혹은 <십자가에 못 박히심>이라는 명칭에서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지워버린 채 <십자가 처형>이라는 단어만 남겨놓았다. ‘죽음’이라는 사건이 아닌 ‘주검’이라는 대상을 전면에 배치하여 당시 교회의 행태에 대한 비판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홀바인처럼, 어쩌면 니콜라이 게 역시 ‘처형’이라는 처절한 ‘역사적 팩트’를 전면에 위치시킴으로써 역설적으로 그리스도 죽음이 가지는 의미를 곱씹을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니콜라이 게는 <십자가 처형>이라는 작품을 2가지 버전으로 완성했다. 하나는 1892년에 완성되었고, 두 번째 작품은 2년 뒤인 1894년에 완성되었다. 우리가 현재 만날 수 있는 작품은 1892년에 완성된 작품의 첫 번째 버전으로 현재 오르세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작품의 제작은 1884년부터 시작되었으며, 첫 번째 버전은 8년 만에, 두 번째 버전은 10년 만에 완성된다. 니콜라이 게는 이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무려 19차례에 걸쳐서 수정을 거듭했으며, 그리스도의 죽음이 일반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전달하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게의 작업을 옆에서 줄곧 지켜보았던 며느리 예카테리나조차 과연 그림이 완성될 수 있을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게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열정을 이 그림에 바쳤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니콜라이 게는 자신의 작품에 담길 의미와 사상의 근거를 찾기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성경을 탐독했다고 한다. 그의 작업일지에서 다음과 같은 글귀를 찾아볼 수 있다.     

“난 오랜 시간에 걸쳐서 왜 십자가 처형이 필요한 것인지 생각해봤다. 십자가 처형은 연민이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필요한 것이 아니다... 십자가 처형은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느끼기 위해 필요하다. 난 그리스도의 고통으로 그들의 뇌에 강한 충격을 줄 것이다. 난 그들이 감동에 젖게 만들지 않고, 목놓아 울게 할 것이다.”


두 작품 모두 관객들에게 충격과 형언할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안겨주었으며, 알렉산드르 3세가 ‘도살’과 다름없다고 표현한 그리스도 처형의 현장은 니콜라이 게의 일련의 ‘그리스도 연작’이 겪은 운명과 다를 바 없이, 일반인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하라는 황제의 명령에 따라 전시 첫날 전시장 벽면에서 바로 철거되었다.

한편 니콜라이 게와 종교적, 사상적으로 친밀하고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를 지지해줬던 작가 레프 톨스토이는 한 지인의 집에서 개최된 니콜라이 게의 비공식 전시회에서 <십자가 처형>을 보고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게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을 그려낸 작품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처음으로, 그리고 마침내 난 끔찍하고도 어수선한 공포 속에서 이런 무시무시한 비극의 이미지를 보게 되었다. 난 꽤 오랜 시간 동안 이 그림에서 발을 떼지 못했고,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초의 인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점잔빼는’ 그림들, ‘그 누구의 마음도 상하지 않게 하는’ 그림들이 얼마나 많은가! 난 수많은 군중과 대중들, 거의 모든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이 그림을 위해 얼마든지 갤러리와 박물관을 내어줄 수 있다!”


현재 <십자가 처형> 중 첫 번째 버전은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지만, 다른 한 작품은 경매장 입찰에 나와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의 소유가 된 후 그 행방이 묘연해졌다. 소비에트 시절에 한 개인 컬렉터가 소비에트 문화부에 게의 <십자가 처형>을 구입할 의사가 없냐는 의뢰를 해왔지만, 문화부에서 거절 의사를 표명하자 그림은 다시 자취를 감춘 후 지금까지 그 행방을 모르고 있다. 


*미클루호-마클라이: 유명한 러시아 여행탐험가이다. 여행지에서 병에 걸리는 바람에 40세의 젊은 나이에 이미 주변 지인들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외모가 변하고, 건강이 악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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