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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러시아 국민주의 오페라의 두 형식
분류공연예술
국가 러시아
날짜2019-02-01
조회수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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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를 좋아하는 많은 이들이 잘 알고 있는 사실 한 가지, 즉 오페라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소규모 학술 토론 모임인 ‘카메라타’에서 발생의 기원을 찾고 있다는 것. 이러한 오페라가 러시아로 들어와서 유행하기 까지 아주 오랜 기간이 필요했지만, 그 유행의 시작은 미하일 글린카(Mikhail Ivanovich Glinka, 1804~1854)이다. 미하일 글린카는 러시아 ‘고전음악의 아버지’로서 러시아 민족주의 음악에 영향을 준 러시아 음악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는 긍정적인 평가 – 러시아의 음악 수준을 서구 유럽 수준으로 격상시킨 글린카의 위상이 러시아 문학의 푸시킨과도 비교된다는 시각도 존재 (이덕형 저,  <천년의 울림>, 328페이지 참고)- 와 러시아 음악가 중 가장 바람둥이였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공존하는 음악인이다. 상기했듯이 이러한 극단의 평가를 받는 글린카에서 러시아 오페라의 발전이 시작 되었다. 

스모렌스크의 노바스파스코예 마을에서 1804년 대규모 영지를 소유한 귀족의 자제로 태어난 미하일 글린카는 두 가지 경로(인물들)를 통해서 음악을 어린 시절부터 접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할아버지와 삼촌이다. 할아버지는 노보스파스코예 지역 교회에서 음악을 담당하고 있었고 삼촌은 러시아 노래 공연으로 유명한 농노 오케스트라를 갖고 있었다(올랜도 파이지스, 채걔병 역,  <러시아 문화사: 나타샤 댄스>, (서울: 이카루스 미디어), 2005, p 190.). 두 번째는 자신의 친구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처럼, 자신을 길러준 평민 유모를 통해 러시아 농민의 생활을 알 수가 있었는데, 특히 그  유모를 통해 어린 시절부터 러시아 민요를 접할 수 있었다. 귀족태생의 비범한 음악가와 러시아 민요의 접촉이 러시아 국민음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 민요를 좋아한  미하일 글린카는, 특이하게도 러시아가 아닌 이탈리아 유학 중에 러시아의 음악 유산의 소중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 이후 글린카는 지속적으로 러시아 민요를 수집, ‘러시아 민족음악’을 연구하면서 창조적 작업도 병행 하였다. 이 같은 노력의 결실이 바로 오페라 <이반 수사닌>의 창작이다.


                                                                         미하일 글린카


러시아 국민주의 오페라의 첫 번째 형식:  역사-영웅 오페라

 <이반 수사닌>
12월 혁명(데카브리스트 혁명)의 시인으로 잘 알려진 릴레예프(Kondrary Fyodorovich Ryleev, 1795-1826)가 1823년에 쓴 장편시를 기반으로 작곡된 <이반 수사닌>는 1612년 폴란드와의 전쟁에서 조국과 황제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농민 이반 수사닌의 애국사상(1812년 글린카의 집은 프랑스군이 모스크바로 진격하면서 약탈당했다. 글린카는 당시 겨우 8살이었지만 후에 이 사건은 농민 유격대를 줄거리로 한 오페라 <황제에게 바친 목숨>을 작곡하게 되는 그의 애국심을 자극했음이 분명하다. 올랜도 파이지스, 채걔병 역,  <러시아 문화사: 나타샤 댄스>, (서울: 이카루스 미디어), 2005, p 190.)을 주제로 하는 작품이다. 초연은 1836년에 마린스키 극장(구: 제정러시아 황실 대극장)에서 이루어져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러시아에 낭만주의의 도입한 시인 바실리 주코프스키(Vasily Andreyevich Zhukovsky, 1783-1852))의 제안과 그레고리 로센 백작의 노래 가사를 기초로 하여 오페라 작업이 시작된 <이반 수사닌>은 그 당시 제정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이1세에 의해  <황제에게 바친 목숨>으로 제목이 변경되면서, 이작품은 황제에게 헌정되게 된다.
<이반 수사닌>은 러시아에서 최초로 국민주의 오페라가 성공한 작품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러시아 오페라의 한 가지 전통적인 축을 만들었다. 그 축은 바로 러시아의 민족적, 토속적인 내용을 가진 역사-영웅 오페라이다.

 

                                                           오페라 <이반 수사닌>의 한 장면

<보리스 고두노프>

<이반 수사닌>식 오페라 형식의 전통을 잇고 있는 작품이 바로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Modest Petrovich Mussorgsky, 1839~1881)의 <보리스 고두노프>이다. 심리-음악 드라마로 평가 받고 있는 오페라 <루살까>의 작곡자 다르고뮈즈스키를 지도 했던 밀리 발라끼레프(M.Balakirev : 1836-1910))의 영향을 받았던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는 러시아 국민악파 5인조 중 가장 번뜩이는 창조적 영감과 기발한 독창성을 가진 이 말썽꾸러기 천재이다. 그는 또한 가장 러시아적인 성격(나태, 폭발적인 감정 표출 등)을 강하게 보여준 작곡가이기도 하다. 그의 이러한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과  페테르부르크(서구식 도시인) 보다 모스크바(슬라브족의 전통적인 도시인)에서 더 작곡이 잘되는 그의 민족주의적인 신비한 습관을 통해 러시아적인 전통성과 고유성이 유감없이 드러난 작품이 <보리스 고두노프>이다. 초연에서 좋지 않은 흥행기록을 보여준 <보리스 고두노프>는 몇 번의  수정을 거쳐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 시기가 바로 1874년, 이 시기 이후 무소르그스키는  러시아 음악계에서 비범한 독창성을 소유한 가장 러시아적인 작곡가로서의 자신의 이름을 뚜렷하게 알리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명성도 자기관리의 실패로 인하여 말년에는 많이 훼손된다. 그의 나태한 생활습관, 알콜의존성이 그의 천재적인 재능의 만개를 방해하는데, 30대부터 죽음을 맞이한 42살까지 무소르그스키는 번뜩이는 천재적인 영감을 ‘보드카의 바다’로 버리게 된다.

<보리스 고두노프>는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동명 서사시 ‘보리스 고두노프’와 까람진의 <러시아 역사>를 바탕으로 1598년에서 1605년까지 실제로 러시아를 통치했던 러시아 최초의 선출된 차르였던 보리스 고두노프라는 인물의 비극적인 일생을 다루고 있다. <보리스 고두노프>는  무소르그스키의 모든 음악적인 재능과 역량이 최대한으로 표출된 국민주의 오페라의 수작이다. 더욱이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 이후, 무소르스키가 작곡한 여러 개의 오페라 (<호반시치나>, <소로친치의 시장>)들이 미완성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는 무소르그스키의 작품목록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보리스 고두노프>는 단순히 음악상에서 뿐 아니라 연극적 내용에서도 17세기 초 역사적으로 실제로 있었던 혼돈의 시대와 그 시대의 살아간 러시아 민중의 강인한 활동을 노래하고 있는 점 등을 볼 때 <이반 수사닌>과 함께 진정한 국민음악적인 오페라라고 할 수 있다.


<이고리공>
<이고리 공>은 러시아 국민악파 5인조 중 가장 아시아적인 성향의 음악을 많이 작곡한 보로딘의 오페라이다. 공연시간 3시간 10분, 4막의 오페라(서곡 9분, 프롤로그 20분, 제1 막45분, 제 2막 약 65분, 제3막 30분, 제4막 22분)로, 초연은 1890년 러시아 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서 이루어졌다.

글린카의 오페라 <이반 수사닌>의 오페라적 형식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이고리 공>은  <황제의 신부>라는 제목으로 의욕적인 출발을 하였지만 마무리가 신통치 않았다. 보로딘이 중도포기의 선택적 고민이 깊어지는 그 순간, 러시아 국민악파 5인조의 강력한 후원자이면서 동시에 그 당시 러시아 문화계의 차르(폭군적 기질을 가진)인 평론가 블라디미르 스타소프가 구세주처럼 러시아의 중세 서사시 〈이고르공 원정〉의 영웅서사적인 이야기를 토대로 한 오페라의 기본 골격을 구성하여 보로딘에게 보냈다. 보로딘에게는 구세주와 다름없었다.

보로딘은 스타소프의 글을 바탕으로 하여 대본집필 및 작곡을 하여(프롤로그와 4막의 내용을 가진) 러시아 오페라 중 가장 동양적인 향기가 나는 오페라를 작곡했다. (보로딘은 끝내 이 오페라를 끝까지 완성하지 못했다. 구소련에서 정식 연주되던 오페라는 림스키-코르샤코프와 글라주노프가 이어받아 완성한 것이다. 특히 서곡은 글라주노프가, 보로딘이 생전에 대강의 계획을 짜서 친구들에게 피아노를 치며 들려준 기억을 더듬으며, 남겨진 초고에 따라 작곡한 것이다).

아쉬운 점은 오페라 <이고리 공>은 대중들에게 잘 노출되지 않았던 작품이라는 것이다.  상기했듯이 이 곡이 미완성으로 끝났고 3막과 4막의 음악이 예술적인 깊이가 떨어진다는 이유에서 공연 횟수가 다른 오페라에 비해 현저히 적었다. 그래서 보로딘의 음악적 재능을 전 곡으로 감상할 기회가 많지가 않았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2막에 나오는 <플로베츠인의 춤>(사실 이 민족주의 오페라 형식을 갖춘 이 작품이 초연할 당시부터  <플로베츠인의 춤>의 장면은 논란이 많았다. 왜냐하면 플로베츠인을 낭만적인 매력을 지닌 긍정적인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는 반면 러시아인들 부정적인 형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오페라 <이고리 공>을 빛나게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오페라의  상징적인 얼굴이 된 <플로베츠인의 춤>의 높은 대중적인 인지도 획득에는 디아길레프의 노력이 있었다. <발레 뤼스>의 단장인 세르게이 디아길레프(Sergey Pavlovich Diaghilev, 1872-1929)는  특유의 흥행사의 본능으로 동양적인 요소가 가득한 <플로베츠인의 춤>의 서양에서의 흥행의 가능성을 감지한 이후, 이 춤을 독립된 발레작품으로 만들었다. 안무는 미하일 포킨(Mikhail Mikhaylovich Fokine, 1880-1942)이 담당했고, 디아길레프의 유명한 파리의 샤툴레 극장의 공연(1909년 5월 19)에서 처음으로 일반관객들을 대상으로 선보였는데,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러시아 국민주의 오페라의 두 번째 형식:  신화-동화 오페라

<루슬란과 루드밀라>
<루슬란과 루드밀라>는 1817-1820년 사이에 푸시킨이 옛 민화를 소재로 쓴 환상적인 서사시를 바탕으로 시르코프(Valerian Fiodorovich Shirkov, 1805~1856)가 대본을 만들어 1837년에서 1842년 사이에 미하일 글린카가 작곡한 오페라로, 1842년 11월 27일 페테르부르크 황실 대극장에서 카를 알브레히트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그 이후  <루슬란과 루드밀라>는 러시아 오페라의 또 다른 축으로 형성된 러시아 ‘신화-동화’ 오페라 계보의 선구적 작품이 되었다.  <루슬란과 루드밀라>의 계보를 잇는 중요 작품을 보면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Nikolay Andreyevich Rimsky-Korsakov, 1844-1908)의 <금계>, <눈의 요정>, <황제 술탄 이야기>, 이고리 스트라빈스키(Igor Fedorovich Stravinsky, 1882-1971)의 <나이팅게일>,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Sergey Sergeyevich Prokofiev, 1891-1953)의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사랑> 등이 있다.

                                                   오페라 <루슬란과 루드밀라>의 한 장면


<금계>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동명의 동화를 기초로 하여 벨스키(V. I. Belsky, 1866-1946)가 작사를 한 <금계>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마지막 작품이다. 3막의 오페라로 2시간(프롤로그와 제1막막 45분, 2막 50분, 3막과 에필로그 25분)의 공연시간을 가지고 있는  <금계>는 제정러시아의 우둔한 귀족사회를 풍자한 푸시킨의 동화를 원작으로 기초한 대본에 문제가 있어서 러시아 정부의 검열 위원회로부터 45행을 삭제해야 공연 및 출판허가를 해 줄 수 있다고  통보했지만 림스키-코르사코프가 대본의 수정 및 삭제를 거부했기 때문에 작곡가 생전에는 상연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작곡자 사후, 1909년 9월24일 모스크바의 사설국민극장에서 초연을 했다.

<눈의 요정>
<눈의 요정>은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자신이 창작한 오페라 중 최고라고 평가한 작품으로서 알렉산드르 오스트로프스키(1823-1886)- 오스트로프스키는 19세기 후반의 러시아 연극계에서 활약한 러시아인 극작가로, 세로프(1820-1871)의 오페라 〈적의 힘)(1867-1871),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지방장관- 0867 - 1868) 등의 대본도 작성한 바 있다 -의 <눈의 요정>이 원작이다. 작곡가는 이 원작을 1879년 다시 읽게 되는데, 열정적인 독서 이후  원작의 다양한 매력, 등장인물의 시적 분위기, 태양숭배의 배경 등에 끌려서 1880년 2월에 작곡을 시작하여 1881년 3월 26일에 동명의 오페라를 작곡한다.  4막의 오페라로 3시간 15분(프롤로그 45분, 1막 35분, 2막40분, 3막 40분, 4막 약 35분)공연시간을 가진 이 오페라는 1882년 1월 29일 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에서 초연을 했다. 이 초연 이후 <눈의 요정>은 대성공을 기록하는데, 무대 장치도 이 성공적인 신화를 쓰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무대장식을 책임진 화가 바스네초프는 이 오페라의 무대에 무대에 민간 전통의 힘찬 원색을 적용했다.  화려하게 장식된 민속풍 장식과 러시아 부활절 달걀 같은 형태로 칠해진 환상적인 기둥들이 세워졌다. 이와 같은  무대장치로 인해서 오페아의 모든 장면은 마법 같은 러시아적 영역을 만들어냈다. 과거의 오페라 공연에서 본적이 없는  민속예술에 관객들은 깜짝 놀라며 빠져들었다.(올랜도 파이지스, 채걔병 역,  『러시아 문화사: 나타샤 댄스』, (서울: 이카루스 미디어), 2005, p 310.)

*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러시아 국민악파 5인조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지만 쿠치카 중에서 그 누구보다도 많은 곡을 작곡한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총 15개의 오페라를 작곡했는데,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역사 장르 오페라인  <프스코프의 하녀>, <차르의 신부>, <세비야>, <판보에보다>,  ‘신화-동화’ 오페라 장르에 속하는 <오월의 밤>, <눈의 요정>, <성탄전야>, <황제 술탄 이야기>,  <금계>, 민속 서사시 장르 오페라인 <사드코>, <보이지 않는 도시 키테쥬와 처녀 페브로니야의 이야기>, <믈라다> 그리고 심리적 오페라인 <모차르트와 살리에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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