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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러시아 대중문학계를 점령한 '돈초바 신드롬'
분류대중문화
국가 러시아
날짜2017-08-19
조회수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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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러시아 문학의 기원을 이야기 할 때 가장 많이 회자되는 말 중 하나인 “우리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처럼 러시아 작가들은 “우리는 모두 도스토옙스키로부터 나왔다”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곤 한다. “우리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라고 언급한 이가 도스토옙스키인 것은 우연일까? 물론 러시아 추리작가들이 ‘패러디’적 관점에서 일부러 이런 말을 지어낸 것은 아니다. 실제로 러시아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혹자는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을 ‘추리’ 장르로 정의하기도 한다. 러시아 추리소설에서는 심리학적인 요소를 넘어서는 병리학적 요소와 광기, 복수, 사랑 등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모든 불안정하고도 우발적이며 충동적인 감정이 사건의 중심에 놓여 서로 얽히고설킨 가운데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특징이다. 아마도 이런 측면에서 현대 러시아 추리작가들이 자신들의 기원을 ‘도스토옙스키’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비에트 초기에 추리소설 장르는 계급투쟁의 과정에서 생겨나는 갈등과 사건을 토대로 창작되었고, 이후 냉전의 시대에는 소련과 미국의 스파이들이 종횡무진 세계를 누비며 벌어지는 각종 사건을 추리형식을 빌어 전개하며 일종의 이념투쟁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다. 소비에트가 붕괴된 90년대 이후의 추리소설은 이전과 전혀 다른 소재와 형태를 사용하지만, 그것이 영국이나 미국 추리소설에서 관찰되는 일종의 ‘추리소설 전개 도식’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 러시아만의 독특한 논리를 지닌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또한 흔히 추리소설이라 함은 ‘남성’의 영역이라는 선입견이 발동하곤 하는데, 러시아 추리소설 작가 중에서는 유독 여성 작가가 강세를 보이는 것도 특징이다. 이들의 강세로 인해 소위 ‘여성 추리소설’이라는 전문용어와 장르까지 생겨났을 정도이다. 이러한 점을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 2016년에도 러시아 추리소설계는 소위 ‘추리의 여제’로 불리는 여성 작가 3인방이 나란히 1, 2, 3위를 차지했다.

 

러시아 도서원에서 내놓은 지난 2016년 자료에 따르자면, 예술문학분야에서 러시아 일반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가의 영예는 ‘다리야 돈초바’의 몫으로 돌아갔다. 돈초바의 뒤를 바짝 쫓으며 2위와 3위에 랭크된 작가는 각각 타티야나 우스치노바와 타티야나 폴랴코바이다. 하지만 돈초바가 무려 123종에 이르는 작품과 연간 1300만부에 이르는 책을 찍어낸 것에 비해, 우스치노바는 66종의 작품과 760만부수의 책을, 폴랴코바는 75종의 작품과 715만부수의 책을 인쇄하는 것에 그치며 이들이 돈초바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밀기엔 아직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15년간의 통계를 합치면 돈초바가 그간 써내려간 작품은 무려 180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를 수치로 계산해보면 평균적으로 연간 12권을 집필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하지만 아무리 문학적 역량이 뛰어난 작가라도 한 달에 한 권씩 다른 스토리를, 그것도 대중이 늘 열광하고 먼저 찾는 작품을 집필하는 것은 다소 벅차게 느껴질 것이다. 이로 인해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소위 ‘돈초바’라는 문학 브랜드가 돈초바 개인의 집필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돈초바를 선두로 구성된 모종의 ‘작가 그룹’이 함께 작업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이야기를 거론하기도 하고, 그녀의 작품 중 몇몇은 표절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러시아 일반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고 가장 많이 읽히는 대중 작가는 다름 아닌 다리야 돈초바이다.

           

                                           <다리야 돈초바>                              <돈초바의 작품 표지>

 

돈초바에 대한 대중의 사랑과 문학적 아성이 하루아침에 완성된 것은 아니다. 러시아 연방 출판 및 대중매체부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자면, 돈초바는 9년 전인 2008년에도 러시아 국내에서 최대 발행부수로 작품을 출판한 작가 1위에 선정된 바 있다. 당시 2위는 쉴로바가, 3위, 4위는 각각 우스티노바와 폴랴코바가 차지했었다. 역사추리물로 유명한 아쿠닌의 이름이 2008년만해도 5위에 올라와 있었던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2015년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돈초바가 자신의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우스티노바와 폴랴코바가 각각 2위와 3위로 9년 전에 비해 한 단계씩 순위가 상승한 반면, 정작 2008년 당시 2위에 랭크되었던 쉴로바의 이름은 10위권 내에서 찾아볼 수 없다. 보리스 아쿠닌의 명성 역시 예전 같지만 않은지, 9년 전 5위에서 현재 10위로 밀려났다. 또한 90년대 러시아 추리소설의 한 축을 이끌었던 알렉산드라 마리니나 역시 2008년까지만 해도 간신히 10위에 턱걸이를 하면서 체면을 유지했지만, 2016년에는 더 이상 그 이름을 찾아보기 힘들다.

 

    

            <보리스 아쿠닌>                               <알렉산드라 마리니나>

 

그렇다면 돈초바가 타 작가들에 비해 유독 인기를 끌며 러시아인들에게 꾸준히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서 잠시 소비에트 붕괴 이후 러시아 추리소설계의 흐름을 살펴보자. 2000년대 초중반 추리소설 애호가들 사이에서 열풍을 일으켰돈 아쿠닌은 지식인을 위한 무겁고 진중한 스토리를 무기로 인기를 독점했다. 동일한 시기에 마리니나 역시 ‘카멘스카야’라는 여주인공을 앞세워 사건에 바라보는 치밀한 분석과 논리를 바탕으로 ‘영국 전통 추리소설의 계보를 잇는다’, ‘영국식 스토리라인과 형식에 러시아적 감성을 입힌 작가’라는 극찬을 받으며 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2008년과 2014년에 일어난 글로벌 위기와 우크라이나 사태로부터 비롯된 일상의 무게로 인해 사람들은 아쿠닌 소설을 대상으로 ‘고급 취향’을 과시하는 여유를 부리기가 더 이상 힘들어졌다. 게다가 한때 러시아 도로순찰대를 지칭하는 ‘ДПС(дорожно-патрульная служба)’라는 약어가 ‘백루블 내놓으쇼(Дайте, пожалуйста, сто рублей)’라는 의미로 읽힐 만큼 도로순찰대는 물론 경찰 전반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불신과 악명은 유명하다. 하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경찰의 모습과 달리 마리니나의 소설에 등장하는 경찰수사대는 어디에서나 정의를 사수하며 과학적 추리에 능할 뿐만 아니라 친절하기까지한 상당히 ‘비현실적인’ 캐릭터들로 더 이상 대중의 공감을 얻어내지 못하게 된다.

 

돈초바 역시 2005년 잡지 <포브스>에 연간 백만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러시아 작가 명단에 아쿠닌과 마리니나와 함께 나란히 이름을 올린 바 있다. 돈초바의 소설이 다른 여성 추리작가들의 소설과 다른 점은 우울하고 부정적인 측면을 최대한 배제하고, 소위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나 존재할 법한 주인공’의 범주를 훌쩍 벗어나 흔한 일상에서 마주칠 법한 사람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것에 있다. 그녀의 작품에는 우스티노바의 소설에 등장하는 ‘캔디형 주인공’이나 ‘신데렐라형 주인공’도, 마리니나의 여주인공 ‘카멘스카야’와 같은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고전적인 탐정형 주인공’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돈초바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시피 그녀의 소설은 대부분의 러시아 추리작가들이 자신들의 기원으로 자랑스럽게 인정하는 ‘도스토옙스키’적 계보를 따르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소위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을 쓰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그저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일상의 이야기를 쓰는 것에 만족한다고 공공연히 말하곤 한다.

 

돈초바 소설의 경향을 굳이 정의하자면, 소소한 일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에 추리라는 양념을 버무린 ‘일상추리’ 장르 정도가 되겠다. 때문에 그녀의 작품을 읽는 동안 독자들은 마치 이웃에서 일어나는 뭔가 수상쩍은 사건을 관찰하는 기분을 느끼면서, 때로는 자신이 추리소설을 읽고 있다는 것도 잠시 잊은 채 훌쩍 소설 한 권을 읽어버리는 건지도 모른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어쩌면 돈초바는 ‘현대인의 관음증’을 가장 영리하게 이용하고 있는 작가인지도 모른다.

 

한때 이러한 돈초바 소설의 소재가 이제는 한계에 달했다는 우려의 목소리와 함께 그녀의 명성이 이제 잦아들 것만 같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중은 아쿠닌과 마리니나 대신 여전히 돈초바에 대한 무한 애정을 어필하고 있다. 추리소설계를 점령한 이러한 ‘돈초바 신드롬’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혹은 그녀를 능가하는 또 다른 신예 추리소설 작가가 탄생할 것인지 지켜보는 것도 러시아 대중문학의 흐름을 간파하기 위한 흥미로운 관찰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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