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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중국 경극의 거장 매란방
분류문학
국가 중국
날짜2017-08-07
조회수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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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중국의 경극 200년사에서 최고로 지칭되는 천재 경극배우 매란방. 경극에서 여자역할을 맡는 남자 배우를 지칭하는 화단(花旦)연기의 일인자로 중국은 물론 미국 브로드웨이에 까지 진출하며 전세계에 경극의 아름다움을 알린 신화적 존재이다. 매란방은 1894년 강소성 양주에서 할아버지, 아버지, 큰아버지 모두가 경극계의 명배우들인 경극세가(世家)에서 태어났다. 1934년경 두각을 나타내었고 그 후 20여 년 간 북경을 중심으로 활약하며 경극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그는 새로운 형식의 여장남우를 연기하면서 형식문제에만 그치지 않고 고전극에 일대전환을 가져왔는데, 극의 내용과 연출법에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일본, 미국, 소련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순회공연을 통해 경극의 존재와 그 진가를 세계에 널리 인식시켰다. 그의 미모와 아름다운 목소리는 경극사상 으뜸으로 손꼽히며, 대표작으로는 경극 작품으로는 “천녀산화(天女散花), ”백사전(白蛇傳)”, “귀비취주(貴妃醉酒)”, “패왕별희(覇王別姬)”, “대옥장화 (黛玉葬花)” 등이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 이후에도 경극의 전통적 체계를 보전하면서 그 개혁과 발전에 힘썼다. 배우로 활약하는 한편, 중국 희곡연구원 원장을 맡아 후배 육성에 힘쓰고 많은 배우를 배출했다. 나아가 전국인민대표, 중화전국문학예술계련합회 부주석 등 요직에 있으면서 문화적, 정치적으로 많은 공적을 남겼다. 1961년 지병인 협심증으로 같은 해 8월 6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그림 1 매란방 초상화

 

그는 타고난 예술성에 피나는 노력까지 겸비한 천재적 배우였다. 그는 부지런했고 끊임없이 새로운 무대를 보여주려 진력하였다. 그는 중국 전통극계의 장로로서 단역의 계승자였으며 또한 개척자였다. 그는 선배들의 훌륭한 전통을 이어받아 이를 더욱 과학적으로 연마하여 예술적 시각을 넓혔다. 노래와 춤과 연기는 중국 전통 극의 3대 요소인데, 그는 이들 모든 기예를 한 몸에 성취하여 칭이, 화단, 다오마단의 대가가 되었다. 50 여 년의 무대 생활을 통해서 그는 경극의 전통적 레퍼토리 가운데 백 개 이상의 역을 소화해냈다. 그가 무대에서 보여준 잊을 수 없는 명연기들은 모두 그의 혹독한 수련과 끊임없는 연구에 힘입은 바이다. 그는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무대의 혁신을 과감히 꾀하여 중국 경극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연기의 폭을 넓혀서 모든 단역을 완벽하게 소화해 낸 최초의 배우였다.

먼저 중국 경극의 역사에 대해 알아본다. 풍부하고 다채로운 발자취를 더듬어 온 전통연극 중 17세기 중엽 후베이성, 안후이성 등 양쯔강 연안 지방에 탄생된 이황조라는 곡조가 경극으로 발전해 왔다. 이것은 후베이·안후이 두 성의 민요와 익양강이라는 장시성[江西省] 일대의 곡조가 결부된 것으로, 후베이성의 황강,황피출신의 배우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황조라는 이름이 생겼다. 원나라의 잡극, 명나라의 전기물의 뒤를 이어 청나라에 이르는 300년 동안은 쑤저우의 꾼산 지방에서 발생한 곤곡이 왕좌의 자리에 있었지만, 18세기에 들어와 왕후·귀족을 위한 오락이 되어 쇠퇴의 기미를 보인 곤곡에 대하여 민중 속에서 성행하기 시작한 것이 이황조이다. 문학적이며 우아하기는 하지만 난해하고 장황한 곤곡에 대해서, 이해하기 쉽고 동작이 많으며 민중의 생활감정이 담긴 이황조는 대중들이 받아들이기 쉬워 곧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연극인 동시에 양식에 있어서도 융통성이 있어 이황조는 곤곡을 비롯하여, 많은 이전의 극으로부터 기술이나 스타일을 탐욕스럽게 받아들여 청나라 말인 1830년경에는 산시[陝西]지방의 진강의 흐름을 이어받은 서피(西皮)라는 곡조와 합침으로써 피황강, 즉 경극으로 비약하였고 곤곡을 대신하여 극계를 주도하게 되었다. 피(皮)는 가사를 의미하며 강(腔)이란 곡조를 가리킨다. 본래부터 곤곡을 좋아했던 상류지식인들에게는 저속한 대중극이라고 멸시당하기도 했지만 초창기에 정장경, 후에는 담흠배 등 명배우들이 배출되면서 개혁을 거듭하여 격조를 높여 왔다. 1919년의 5·4운동을 비롯한 신문화운동 속에서 경극은 구극 취급을 받으면서도 여자역을 맡은 남자명배우 매란방 등에 의해 극장이나 상연 형식의 근대화가 시도되고 연기도 한층 더 세련되어졌다.

이어서 경극의 내용과 형식은 어떠한지 알아본다. 다른 여러 전통극과 마찬가지로 노래·대사·동작·활극 등으로 구성되는 독특한 양식을 가졌다. 특히 가창(歌唱)이 중시되어 배우에 대해서 <극의 가수>라는 별명까지 있고 북쪽 지방에서는 관극을 청극이라고도 한다. 각본은 원곡·전기·곤곡 등에 비해 문학성이 높지 않아 거의 상연용의 대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현존하는 1300여 종의 대부분이 작자 미상이다. 원곡이나 전기물을 개작한 것 외에 《삼국지》의 부분각색이 특히 많으며, 《수호전》, 《서유기》, 《홍루몽》, 《요재지이)》 등 사전소설과 신화·전설에서 따온 1시간 전후의 작품이 태반이다. 반주악기로는 현악기에 경호(京胡)·삼현(三絃)·월금(月琴)이 있고, 관악기로는 횡적, 타악기에는 대고·동라가 있으며, 특히 타악기는 극 전체의 진행에 리듬을 잡고 가창과 동작, 무용에도 악센트를 주는 효과가 있다. 사용되는 멜로디는 20곡 남짓하지만 내용에 따라 리듬과 템포에 변화를 준다. 이처럼 약속에 바탕을 둔 과장이 무용적·상징적인 양식의 연기로 승화된다. 의상은 명나라의 옷을 기본으로 한 초시대적인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색깔이나 모양에 따라 신분이나 직업이 상징된다. 남자배우만이 등장하는 연극으로 여자역도 남자가 했지만 근대 이후에는 여자배우도 많아졌다. 역은 엄밀하게 정해져 있어 크게는 생(生;주연남우), 단(旦;여인역 남자배우), 정(淨;호걸·원수역), 축(丑;익살꾼), 말(末;단역)로 나누어지고 정과 축은 물감으로 얼굴에 분장을 한다. 배역은 각각 문무(文武)의 2계통이 있고 다시 세분화되어 있으며 그 역에 따라 발성법에 차이가 있음은 물론이고, 육체적·정신적으로도 완전히 그 역할에 알맞도록 개조되어야 하며, 그것이 또한 이들 배우들의 자랑이기도 하다.

  

 

그림 2 경극 배우 공연 장면

 

끝으로 중국의 경극은 어떻게 시대에 따라 변화되어 왔는지 알아본다. 1949년 중국정부 수립과 동시에 만들어진 중국전통극연구원과 중국경극원을 중심으로, 국가 문화정책의 하나로서 전통극에 대한 개혁운동이 추진되었다. 백화제방이라는 방침 아래, 경극에 대해서도 각본·연출의 양면에서 봉건적인 내용을 제거하고 민중의 창조에 관련되는 것들을 발굴하는 작업이 조직적으로 실시되었다. 이것은 1920년대부터 매란방 등 유명한 배우들에 의해 시작된 바 있는, 경극의 근대화를 더욱 강력하게 추진한 것으로 <낡은 가죽부대에 새술을 담자>라고 하여 현대연극의 종목도 창작되었다. 1964년 베이징에서 현대경극경연대회가 개최되어 이들 연극 개혁이 문화대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는데, 그 주도자 장칭 등은 《홍등기》, 《지취위호산》, 《사가빈》 등 5개의 현대경극을 모범극으로 하고 고전연극 작품의 상연을 일체 금지한다는 폭정으로 경극뿐만 아니라 중국연극계 전체에 10여 년에 달하는 질식 상태를 가져왔다. 현대경극은 경극혁명화의 이름 아래 영웅을 주인공으로 하여 무대구성·연기와 함께 대화극에 크게 접근시키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문화 혁명의 종결과 함께 70년대 말에는 연극계도 새롭게 소생하여 고전종목도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하기 시작하였다. 매란방·주신방 등의 명우도 이제는 고인이 되었지만, 외국 공연도 증가하고 중국을 대표하는 경극은 착실하게 부흥의 길을 걷기 시작하고 있다.

중국 경극 역시 한국의 판소리, 정가, 민요와 같이 중국의 역사와 민족의 정서가 잘 반영된 하나의 문화인 것 같다. 요즘에 유행하고 있는 락이나 팝 사이에서도 그 명맥이 유지되는 것은 중국인들 가슴 속에 깊게 스며들어 있는 민족정서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때 귀족들의 향연으로만 이루어지던 것이 이 황조에 의해 서민들의 문화로 자리잡으면서 베이징으로 들어오게 된다. 또 청나라말엽 서피라는 곡조와 합침으로서 한층 세련된 경극으로 비약하게 된다. 경극의 정치적 개혁도 이루어진다. 이전의 봉건적 내용에서 탈피하녀 민중의 창조와 관련된 작업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경극은 근대화되기 시작한다. 바로 이것을 이끈 이가 바로 매란방이며 1964년 베이징에서는 현대경극경연대회를 도화선으로 시대의 흐름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경극은 부흥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한국의 민속무용이나 전통가요 등도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개혁으로 역사에 잊혀지는 일이 없도록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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