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메뉴
웹진 문화로(文化路) 내용 시작

<이콘에 절하는 러시아의 블라지미르 푸틴 대통령>
강력한 신정일체의 특징을 가진 동방정교의 모스크바 공국과 제정러시아 시기, 러시아 제국의 이미지와 동일체의 표상을 창조한 차르들. 그들의(특히 남편인 표트르 3세의 권력을 쿠데타로 탈취(奪取)한 제정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 도발적이고 집요한 영토 확장 과정에서 복속된 이 민족들에게도 ‘세 번째 로마의 시민’으로서 슬라브족의 존재의 이유가 된 ‘러시아 정교’를 이식하는 ‘정교신자화 프로젝트’를 열성적으로 시도하여, 이러한 종교적 열망은 결국 한반도의 80배의 크기의 영토를 가진 ‘러시아 연방’의 국가 종교를 ‘러시아 정교’로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이민족 정교화 프로젝트’ 과정에서 운 좋게도 종교적으로 희생양이 되지 않았던 몇몇 피지배 민족이 러시아 연방 내에 존재하는데, 대표적인 민족이 바로 ‘칼미크 민족(칼미크 공화국)’이다. (물론 이러한 행운을 표트르 대제의 딸인 엘리자베타 여황제의 불교를 허용하는 칙령(1741년)에서 찾는 역사가들도 있다).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인 푸시킨이 1829년 방문하여 ‘칼미크 여인의 야생미(野生美)’에 매혹되고, 입체파의 대표적인 시인 흘레브니코프가 유년기를 보내면서 ‘러시아의 동양’을 체험한 칼미크 민족은 러시아연방에 속하는 몽골계 유목인으로서 현재 ‘유럽 유일의 불교국’으로 동양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유목민 특유의 샤머니즘과 불교가 융합된 칼미크 불교는 티베트 불교의 강력한 영향아래 놓여 있다. 칼미크의 선조들(오이라트)이 카스피해 북쪽 볼가강과 돈강 유역에 정착하면서 몽고에서 바이칼호 근처의 부랴트에 이르기까지 북쪽으로 전파된 티베트 불교의 전통이 함께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티베트 불교의 상징이면서 세계적인 종교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칼미크 불교신자에게는 숭배의 대상이다. 2000년대 초 칼미크 공화국을 방문한 달라이라마는 최근 몇 년 동안 칼미크 불교인과의 만남을 지속적으로 러시아 정부에 요구하고 있지만, 중국정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러시아 정부의 강력한 통제로 인하여 달라이라마의 방문은 더 이상 성사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2016년 말 라트비아를 방문한 달라이 라마를 접견하기 위하여 많은 칼미크 인들이 리가를 방문한 것은 칼미크인들의 불교에 대한 독실한 신앙심과 달라이 라마에 대한 존경심을 볼 수 있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칼미크 공화국을 방문한 달라이 라마>

<칼미크 공화국 수도 엘리스타의 황금사원>

<칼미크 민족 불교 지도자(샤진-라마 텔로 툴구 린포체)>
현재 러시아 정부는 표트르 대제의 제국주의적 향수를 자극하는 ‘신유라시아’ 사상을 설파하고 있다. ‘신유라시아’의 핵심은 거칠고 강력한 제국주의 건설의 정치적인 이상과 러시아 정교의 정신적 아름다움의 혼합이다. 이때 러시아 정교는 천상적인 초월성과 지상의 아름다움이 혼합된 따뜻한 숭고함이 내재된 비가시적인 영역의 시각적이고 촉감적인 매개체이다. 이러한 특성이 러시아 연방정부가 자국영토에서뿐 만아니라 전 세계적 지역에서 ‘러시아 정교’의 확장성을 최대한으로 추진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 소비에트 시기 칼미크 불교를 민족주의로부터 분리하여 최종적으로 칼미크민족으로부터 불교를 제거하려는 종교적인 위난(危難)을 불교지도자들은 슬기롭게 이겨냈다. 현재 상기한 ‘러시아 정교’의 강력한 영향력 확대 정책 속에서 칼미크 불교의 종교적인 영향력이 축소되는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칼미크 불교의 미래에 희망의 빛이 밝게 비추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칼미크의 젊은 불교 지도자 린포체의 정열적인 역동성에서 우리는 바로 이러한 전망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