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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블라디미르 비소츠키에게도 노벨문학상을!
분류문학
국가 러시아
날짜2016-12-13
조회수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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봅 딜런은 어떻게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나?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가 미국의 팝가수 봅 딜런에게 돌아가면서 문단 및 예술계 인사들 사이에서 수많은 논란과 더불어 이제는 바뀌어야 된다는 개혁의 목소리가 동시적으로 들끓었다. 지난 해 벨라루스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호명되면서 아쉬움과 어딘지 모를 씁쓸함을 느꼈을 러시아 문학계는 다시 한 번 작년과 동일한 감정을 남몰래 삼키는 처지가 되었다. 봅 딜런의 수상 소식을 접하면서, 아마도 러시아 문학계 인사들은 물론 러시아 국민 대다수가 전설이 되어버린 자신들의 음악 영웅 '블라디미르 비소츠키'를 떠올렸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노벨문학상을 비롯하여 모든 ‘노벨~’ 관련 상은 모두 현존하는 인물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므로 비소츠키는 수상자로서 자격미달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인들은 봅 딜런의 소식을 듣자마자 오쿠자바나 빅토르 초이가 아닌 유독 블라디미르 비소츠키의 이름을 떠올리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림 1. 봅 딜런>                                                       <그림 2. 블라디미르 비소츠키>

 

러시아 현대작가 빅토르 예로페예프는 봅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 논란과 관련하여 ‘이즈베스티야’지와의 인터뷰 자리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봅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것은 운명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뛰어난 시와 멜로디를 겸비한 전문적인 반골기질의 가수가 세계에서 가장 ‘기름기가 뚝뚝 떨어지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것이다. 이는 봅 딜런에게 노벨상의 무덤에 누워달라고 제안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르트르는 노벨상을 거부했지만 딜런은 아마도 거절하진 않을 거다...”

 

예로페예프의 예상은 한 치의 틀림도 없이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비록 마지막 순간에 봅 딜런이 노벨상 위원회에 “상은 감사히 받겠으나, 다른 일정으로 인해 시상식에는 참석할 수 없다”는 연락을 넣었지만, 어쨌든 평생에 걸쳐 나름 ‘제도권 바깥’의 음악적 취향을 내세웠던 딜런도 ‘노벨’ 프리미엄이 붙은 상에 부여된 무게와 그것이 주는 유혹을 뿌리치긴 힘들었던 것 같다.

 

지인들과의 모임 자리에 있던 중에 2016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 소식을 접하게 된 나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그럼 응구기랑 하루키 어쩔...?”하면서 마치 스치듯 나지막하게 흘러나온 안타까움과 다소 간의 황당함이 뒤섞인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만큼 모든 사람들에게 봅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은 예상 밖의 일이었고, 소위 ‘경계’와 ‘권위’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혁신에 가까웠다.

 

봅 딜런의 뜻밖의 수상은 1953년 역시 예상 밖의 수상자로 지목되며 화제의 중심에 섰던 윈스턴 처칠의 사례에 비견될 수 있다. 당시 처칠은 역사적 서사와 전기적 특징을 잘 살린 뛰어난 작품을 집필했다는 심사평을 후원자 삼아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거머쥔 바 있다. 올해 봅 딜런의 수상은 “미국의 시적 전통 틀 속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 양식을 창조”했다는 점을 높이 인정받으며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현대 러시아 팝 가수 중 한 명인 유리 로자(Ю. Лоза)는 “미국의 시적 전통이라니, 그것이 과연 전통으로 언급될만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가? 봅 딜런은 미국 문화에만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이다. 어째서 세계적인 문학상이 미국이란 특정 지역에서 활동하는 가수에게 주어져야 하는가? 그렇게 따지자면, 러시아 문화에 딜런보다 훨씬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블라디미르 비소츠키에게도 노벨문학상을 수여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왜 누구도 비소츠키의 이름은 거론도 하지 않는단 말인가?”라는 열변을 토로하며 봅 딜런의 수상에 대한 못마땅한 시선을 대놓고 표현했다. 유명한 러시아 판타지 작가 세르게이 루키야넨코 역시 “솔직히 오늘 아침에 수상자 소식을 접했는데, 난 봅 딜런의 노래도, 노래 가사도 거의 모른다. 봅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전 세계적 규모로 시상되는 상의 가치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해당 상에 대한 모독이라 할 수 있다”라는 말로 역시 남모를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바 있다.

 

봅 딜런이 ‘타란툴라’라는 소설과 자서전을 집필한 경력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 그가 전문 시인이나 문학가로 인정받거나 그의 작품이 시적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매우 최근의 일이다. 이러한 봅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기까지의 여정에는 몇몇 전략적 징검다리들이 놓여있었다. 2008년 봅 딜런은 이미 퓰리처상 특별상을 시상한 바 있다. 그리고 정확히 8년이 지난 올해, 퓰리처상을 받으면 노벨상을 탄다는 속설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딜런은 당당히 노벨문학상을 거머쥐게 되었다. 하지만 단순히 퓰리처상을 받은 전적을 쌓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미 봅 딜런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낙점되게 할 다양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중 하나로 2009년 캠브리지 대학에서 발간된 ‘봅 딜런 연구논집’을 들 수 있는데, 논집에 실린 다양한 논문에서 딜런의 문학적 완결성은 보들레르와 헤밍웨이의 그것에 견주어질 정도였다. 또한 봅 딜런이 ‘세익스피억적인 깊이와 매력’을 지닌 가수라고 여기는 보스턴 대학의 크리스토퍼 릭스 교수는 봅 딜런에 관한 단행본을 출판하기도 했다. 이렇듯 세계적 문호와 나란히 이름이 거론되면서 봅 딜런의 노래를 ‘시적 문학’으로 인정해야 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고, 이는 노벨상으로 향하는 길을 여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게 된다.

 

 

2. 봅 딜런 수상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시각은 어떠한가?

 

이런 점에서 볼 때 음유시인이자 배우였고, 동시에 작가였던 비소츠키는 비록 봅 딜런에 비해 전 세계적인 지명도는 낮을 지언정, 종합예술가적 기질과 그 내공으로만 따지자면 분명 봅 딜런보다 한 수 위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소비에트라는 이념적 장벽과 더불어 비소츠키의 다재다능함이 오히려 상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고, 반대로 봅 딜런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문학권력과 그에 힘입은 문학적 특화가 노벨문학상에 성큼 다가서게 만든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봅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결정된 이후 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인들, 특히 예술가 및 문인들 사이에서 부러움과 아쉬움이 섞인 다양한 의견들이 오갔다. 러시아 웹진 ‘로크롤’ 사이트의 편집주간이자 음악평론가인 안드레이 부를라카와 롤링스톤지 논평가 안드레이 부하린은 노벨상의 특수성에 입각하여 봅 딜런의 수상이 주는 의미를 지적했다. 부를라카는 봅 딜런의 수상을 통해 록 음악이 더 이상 언더그라운드에 속하는 문화가 아니라 주류 문화의 일부라는 점, 그리고 대중문화와 진지한 예술 간의 차이는 없다는 점, 그리고 봅 딜런 이전에는 록 음악이 ‘사랑해 베이비’를 반복하는 노래에 불과했지만, 봅 딜런을 통해 비로소 록이 사회적, 정치적 문제와 같은 진지한 대상에 대해서도 노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측면에서 딜런의 수상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언급했다. 알렉산드라 바줴노바는 노래를 작곡하고 가사를 입히는 작업과 문학 작품을 쓴다는 것은 분명 다른 작업이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봅 딜런을 문학가로 인정하지 않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언급되는 ‘멀리 있는’ 작가가 아니라, 지나가던 거리의 벽 한 귀퉁이에서도 그의 노래가사를 발견할 정도로 수많은 민중에게 사랑받는 ‘살아있는’ 작가라는 점에서 봅 딜런을 높이 평가했다.

 

물론 훨씬 더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코메르산트’의 논평가 안나 나린스카야는 자신의 페이스 북에서, 노벨상 위원회가 매우 혁신적인 결정을 내린 것처럼 보이지만 봅 딜런의 수상을 가능하게 만든 결정타는 결국 ‘미국의 시적 전통’이었고, 이를 통해 노벨상 위원회는 자신의 보수적인 명성을 해치 않는 범위 내에서 모두를 만족시키는 교묘함을 발휘했다며 야유어린 목소리를 담아냈다. 이미 앞서 언급한 러시아 가수 유리 로자의 다소 과격한 불평과 세르게이 루키야넨코의 볼멘소리를 다시 반복하지는 않겠다. 그렇다면 봅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바라보면서 이들을 비롯한 대다수 러시아인들의 뇌리 속을 동시에 스쳐간 인물, 블라디미르 비소츠키는 어떤 점에서 노벨문학상 후보감으로 거론되는 것일까?

 

3. 블라디미르 비소츠키에게도 노벨문학상을!

빅토르 예로페예프는 “미국인들에게 봅 딜런이라는 인물은 아마도 우리 러시아인들에게 있어서 블라디미르 비소츠키와도 같은 존재일 것이다”라는 말로 소비에트-러시아로 이어지는 역사적 시간 속에서 변함없이 ‘문화 영웅’으로 우뚝 서있는 비소츠키의 위상을 역설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한편 2010년도 전러시아 여론조사센터(ВЦИОМ)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자면, 블라디미르 비소츠키는 ‘20세기를 빛낸 우리들의 우상’ 명단에서 1위를 차지난 유리 가가린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또한 타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비록 예전에 비해 그의 작품에 대한 관심이 감소된 것은 사실이지만, 대다수의 러시아인들이 ‘블라디미르 비소츠키’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과반(70%)을 훌쩍 넘는 숫자의 사람들이 그의 노래를 사랑하고, 그의 작품을 20세기 러시아 문화에 있어서 중요한 현상 중 하나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비소츠키가 자신의 노래에서 다루지 않은 장르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는 은어와 속어가 난무하는 노래에서부터 러시아 음유시인의 전통에 기댄 바르드 풍의 노래(하지만 정작 비소츠키 자신은 그가 바르드 가수로 불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랑의 세레나데를 비롯하여 당시 소비에트 사회 체제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의 시선을 가득 담은 정치적 테마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세대’를 노래하는 음유시인으로서 위상을 지닌 인물이다. 게다가 그의 노래는 대부분 1인칭 화자가 주인공이 되어 이끌어 나가는 형식을 취하기에 ‘독백적 노래’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이라한 ‘독백적 노래’에서 마치 비소츠키 자신의 내면이 투영된 듯한 1인칭 화자의 목소리는 ‘이상’과 ‘현실’의 기로에서 이상을 좇다가 전설 속 이카루스처럼 추락할 수도 있다는 것을 직감하면서도 아슬아슬 내달리는 자아와 이를 저지하려는 현실 속 자아가 갈등하는 양상을 표현하는 주요한 수단이 된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야생마’ 역시 이러한 갈등하는 자아의 내면에 담긴 이중적 목소리가 서로 뒤엉켜 구르는 듯한 모습을 ‘절벽을 향해 내달리는 야생마’와 이를 멈추게 하려는 목소리의 힘겨루기를 통해 표현해내고 있다.

 

절벽을 따라, 낭떠러지 위를 따라, 벼랑 끝 언저리를 따라

가죽채찍으로 나의 말들을 내려치며 전속력으로 내몰아간다.

내게는, 대기 중에는 뭔가가 부족해, 바람을 마시고, 안개를 삼키며,

치명적인 황홀함과 더불어, 직감한다, 난 끝장이다, 난 끝장이야!

 

아주 조금만 더 느리게, 말들아, 아주 조금만이라도 더 느리게!

네 녀석들은 이 굼뜬 채찍에 굴하지 말거라!

뭔가 괴팍한 야생마 녀석들이 내게 걸려들었구나,

난 내 명줄대로 다 살지 못하겠구나, 난 내 노래를 다 부르지도 못하겠구나!

 

난 말들을 노래하겠네,

난 노래 한 구절까지도 다 부르겠네,

설령 여전히 절벽 언저리에 잠시 발붙이고 있는 처지가 될 지라도!...

 

1972년 비소츠키가 작사한 ‘야생마’라는 곡은 영화 ‘백야’의 한 장면을 통해 유명해진 곡이다. ‘백야’는 실제로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의 전기적 사실이 투영된 영화이다. 남자들 사이에서 종종 오가는 대표적인 '웃픈'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군대'이야기인데, 그 중에서도 제대 이후에 다시 영장이 나오거나, 뭔가 행정적인 처리 미숙으로 다시 군대에 끌려가는(!) 악몽을 꾸는 경우가 가장 최악의 경우라고 한다. 영화 '백야'에서도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이와 유사한 악몽을 현실에서 경험하게 된다.

 

 

<그림 3. 영화 ‘백야’에서 비소츠키의 ‘야생마’에 맞춰 춤추는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영화 속에서 서구 세계로 망명한 발레리노로 등장하는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불의의 사고로 인해 다시 소련 땅에 불시착하여 억류되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극중 니콜라이)를 다시 소련의 무대에 서게 만들려는 소련 정부의 압박과 자유를 되찾아 떠나려는 그의 열망은 비소츠키의 '야생마' 선율에 맞춰서 표현된다. 목청을 찢을 듯한 기세로 터져 나오는 비소츠키의 음성과 노랫말, 그리고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의 격정적인 몸짓이 자유를 향한 그의 갈망이 얼마나 다급하고 큰 것인지를 그대로 드러낸다.

 

비소츠키의 또 다른 대표작 '아침 체조'는 '야생마'와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숨은 깊게 쉬고, 팔은 넓게 벌리고

서두르지 말고, 셋, 넷!

정신의 건강, 우아함과 조형성을 갖추고

모든 것을 강화시켜주며

아침에 숙취를 해소시켜 주는

아직 여전히 살아 계시다면

체조합시다!

 

만일 당신이 자기 집에 있다면

바닥에 누워보세요, 셋, 넷!

동작을 똑바로 따라 하세요,

외부에서 들어오는 영향에는 신경 쓰지 말고

새로운 시각에 익숙해지세요!

기진맥진할 때까지 숨을 깊이 들이쉬고.

 

전 세계적으로 감기 바이러스가

엄청나가 증가했습니다, 셋, 넷!

병이 점점 퍼지고 증가하고 있어요.

만일 허약체질이라면, 당장 관에 누울 신세입니다!

여러분, 마찰요법을 사용해서

건강을 지키세요.

 

혹여 벌써 피곤함을 느낀다면

앉았다 일어났다, 앉아다 일어났다를 해 봅시다.

당신은 남극이 있는 북극이 두렵지 않잖아요.

중요한 학술원 회원 이오페는 코냑과 커피가

당신의 운동과 예방법을

대체할 것이란 점을 증명했죠.

 

대화는 필요 없습니다,

기진맥진 할 때까지 쪼그린 채 앉아있으세요.

우울해하지도, 얼굴을 찡그리지도 말아요!

만약에 정 그렇게 못하겠거든

손에 잡히는 뭔가로 몸을 닦아보세요.

물에 젖는 과정에 몰두하세요!

 

바보 같은 뉴스는 두렵지 않아요,

우리는 그 대답으로 제자리 뛰기를 하지요,

처음 하는 사람도 이길 수 있습니다.

일등은 없고 뒤쳐진 채로 뛰어가는 사람들 속에 아름다움이!

누구나 인정하는 제자리 뜀 속에 아름다움이 있지요.

 

이 노랫말은 얼핏 아침체조 장면을 코믹하게 묘사한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아침체조를,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 보자면 ‘집단 활동’을 ‘강요’하는 소비에트 정부의 억압적 목소리를 풍자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게다가 노랫말 곳곳에 20세기 러시아 작가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중편 소설 ‘터파기(Котлован)’를 연상시키는 부분들이 등장한다.

 

특히 제5연의 가사에서 ‘대화는 필요 없다’, ‘기진맥진 할 때까지 쪼그린 채 앉아있으세요’, ‘손에 잡히는 무언가로 물에 젖는 과정에 몰두 하세요’ 등의 문장은 플라토노프 작품에서 ‘공동으로 속도를 맞춰 일하는 도중 종종 생각에 잠기는’ 사유로 인해 직장에서 해고된 보셰프, 죽은 나스탸를 위한 특별한 무덤을 만들기 위해 ‘15시간동안 쉬지 않고 무덤을 파내려 가는’ 치클린의 모습, ‘쉬지 않고 날아다니다가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은 채 공중에서 떨어진’ 작은 새에 비유된 소비에트 노동자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일등’은 존재하지 않은 채 뒤쳐졌을 지언정 함께 발맞춰 뛰어가는 사람들 속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은 다름 아닌 형제애와 평등이라는 환상으로 포장된 소비에트의 미덕과 연결된다. 플라토노프의 작품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정작 그들이 꿈꾸는 프롤레타리아들이 모여 사는 ‘공동의 집’ 건설은 시작도 하지 못한 채 마치 ‘제자리 뜀뛰기’를 하듯 아래로, 아래로 땅을 파내려가듯, 나스탸의 죽음도 모른 채 목적을 상실한 집단 활동이 아름다움으로 찬양되고 인정받는 소비에트적 ‘선’이 씁쓸함을 자아낸다.

 

비소츠키가 처했던 사회와 시대의 특수성은 그의 노래 가사와 작품에도 절실함과 갈급함을 담아내게 했고, 이는 봅 딜런의 그것보다 훨씬 더 강렬하고 힘이 실린 문학성을 느끼도록 해준다. 봅 딜런이 록 음악이 매일같이 반복되는 사랑타령에 그치지 않고 ‘진지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낼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비소츠키는 때로는 현실과 현실로부터 탈주하려는 자아 간의 갈등을 절박하게 묘사하지만, 때로는 너무 진지해서 숨 막히는 현실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여유를 보여준다.

 

     

<그림 4. (왼쪽에서부터) 빅토르 초이, 블라디미르 비소츠키,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얼마 전 실시된 설문 조사에서 “현재 생존해있다면 노벨문학상을 탈 것 같은 러시아 작가” 명단에 비소츠키의 이름과 더불어 플라토노프의 이름이 나란히 올라와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종종 비소츠키의 키즈로 명명되는 또 다른 소비에트 록 가수 빅토르 초이는 28세에, 블라디미르 비소츠키는 43세에, 안드레이 플라토노프는 51세에 모두 세상을 등졌다.

 

살아가는 내내 자유로운 영혼을 갈구했던 그들에게 소비에트 체재는 살아내기에 너무도 버거운 상대였던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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