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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조수리 단편소설 “登記”를 통해본 신중국시기 중국의 결혼문화
분류문학
국가 중국
날짜2016-10-05
조회수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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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 소설가 조수리(趙樹理:1905~1970)는 산서성 심수현 한 중농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민간문예와 희극, 민간 악기를 좋아하였으며 농촌생활에 대해 이해가 깊었다. 1925(19) 山西省立 4사범학교 재학 당시 1927년 공산당이 이끄는 학생운동에 참여하고 공산당에 가입하였으나 이로 인해 고향으로 피신하느라 학교를 그만두었다. 중일전쟁 당시 국공합작에 참여하게 되어 이후 공산당에 입당하였고, 이후 향성현(鄕城縣)에 파견되어 항일운동을 하였다. 1943년 처녀작 소이흑의 결혼(小二黑的結婚)이유재의 판소리(李有才板話)를 발표하였고, 19459년 만에 돌아가서 들은 고향의 변천사를 소재로 한 이가장의 변천(李家莊的變遷)을 창작하였다. 이외에도 다수의 우수한 단편소설들을 썼다. 특히 1943년 단편소설 소이흑의 결혼(小二黑的結婚)으로 단숨에 명성을 얻었다. 이후 여러 편의 작품을 썼는데, 그 소설들은 대중성을 띤 독특한 풍격을 갖추고 있다. 1949년 이후 베이징(北京)에서 간행물 편집장 및 곡예연구회 부주석을 맡기도 했다. 그의 몇몇 유명한 작품들은 영어·일어·러시아어 등 여러 외국어로 번역출간되었다. 그는 산약단파의 수장으로 공산당 지도부의 후원 아래 연안문예강화(延安文藝講話)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하는 작가로 활동하였다.
 


그림 1. 조수리 사진
 

그의 작품은 주로 중국 농촌에서 전해져 오던 옛날이야기식의 형식을 쓰고 있으며, 농민들이 직접 쓰던 통속적이고 해학적인 어투를 그대로 채용하여 농민들의 생활 방식과 감수성을 친근하게 작품화하고 있다. 그의 소설은 대부분 사회주의 혁명시기 太原지역 농촌을 배경으로 농촌 사회가 변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보편적인 문제를 묘사하였다. 그는 자신의 생활 체험에서 느낀 점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을 가리켜 문제소설이라고 하였다. 또한 새로운 현실의 정책적 지원하에 상업성을 별로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도 일반의 통속문학과 구별되는 점이다. 그의 단편소설 登記(결혼신고)”를 통해서 당시 중국인들의 결혼문화에 대해 엿보고자 한다. 이 소설은 194910월 신중국 이후 조수리가 처음 발표하였던 단편소설로, 19505월에 공포된 중화인민공화국혼인법을 선전하기 위해 창작하였는데 작은나방(小飛蛾)’이라는 구세대 여성의 불행한 결혼 생활을 통해 봉건적 강제 혼인의 폐해를 드러냄으로써 신세대 젊은이들의 자유 결혼의 합리성을 강조하고 있다. 먼저 줄거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張家庄張木匠(장목수)의 부인 小飛蛾(작은나비)가 주인공이다. 먼저 작자가 직접 羅漢錢의 내원에 대해 설명하고, 또한 소비아에 대한 이름이 어떻게 불리어졌는가를 설명한다. 20년전 張木匠이 음력 1230일에 장가를 갔는데, 그 신부가 너무 아름다워서 사람들이 이르길 마치 날아다니는 작은 나비와 같다고 하여 小飛蛾(작은나비)’라고 불러지게 얘기해준다. 하지만 장목장에게 결혼한 소비아는 결혼전에 같은 마을에 살던 남자 保安이 자신에 준 애정의 신표로 준 羅漢錢을 매일 침상옆 상자에 넣어두고 꺼내 보면서 그를 못 잊고 그리워하면서 지낸다. 어느 날 남편인 張木匠(장목수)에게 들키어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다. 남편은 소비아를 마구 구타 학대하면서 자연스레 부부사의 애정은 식고 냉담하게 된다. 하지만 소비아는 이전 사랑하던 애인이 준 나한전커플링 한짝을 보며 남편의 온갖 학대와 수모를 참고 견딘다. 동네에 살던 이웃언니 燕燕小進도 서로 연애를 통해 결혼을 하려고 村公所의 민사주임에게 수차례 방문하여 청탁하지만 거절당한다. 한편 장목장과 소비아의 딸 艾艾도 동네의 청년 소만과 연애해서 결혼을 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혼인법은 부모가 주재하는 것만 인정하지 자유연애를 통한 결혼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그래서 동네 언니인 燕燕艾艾의 결혼커플매니저로 자처하고 나서서 도와주려고 온갖 계책을 모의하지만, 당시 區公所民事主任은 당시 자신의 외생질인 管保艾艾가 혼인하지 않는데에 대해 개인적인 악감정을 가지고 고의로 서신을 써줄 수 없다고 하면서 단호하게 거절한다. 매번 검토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할머니, 엄마 소비아, 艾艾 삼대로 이어지는 결혼의 운명이 전부 같음을 탄식한다. 燕燕은 애애가 지금 사귀고 있는 小晩과 결혼하도록 엄마 소비아를 설득시키자, 애애는 미친듯이 기뻐했다. 이에 소비아는 이전 자신이 사랑하던 남자친구 保安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날 밤 상자에 넣어둔 羅漢錢을 몰래 꺼내 보니 현재 이전 자신의 처지와 같았던 딸 애애가 생각났다. 이에 나한전을 딸 艾艾한테 주게된다. 이후 부모님이 자신의 결혼에 대해 동의하게 되어 村區公所에 가서 결혼신고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전에 민사주임은 소개 서진을 써주지 않자, 연연이 애애의 결혼신고를 돕기 위해 자신이 소개 서신을 대신 써주지만 주도면밀한 민사주임의 날카로운 질문에 우물쭈물 대답하다가 조작된 거짓임이 발각되고 결국 결혼신고를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렇게 되자 艾艾는 매일 민사주임의 관료주의적이고 봉건적인 사상을 비판하고 욕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애애의 남자친구 小晩이 합작회사에 갔다가 우연히 새로운 婚姻法이 공포되어 자유연애 결혼을 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애애와 소만은 다음날 바로 구공소에 가서 결혼신고를 하러간다. 이전의 태도와는 완전히 다르게, 村區公所의 직원 王助理員은 아무것도 묻지않고 결혼증을 바로 끊어주었다. 곧 촌구공소 통지게시판에는 소만과 애애의 자유연애 결혼을 모범결혼이라고 알리고, 마을의 동네사람들은 물론 區分委書記, 민사주임, 왕조리원 등의 간부들이 모두 참석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이 그동안 결혼신고을 못한 우여곡절을 모두 털어놓으면서 민사주임과 왕조리원의 관료주의적 태도와 봉건적 태도를 맘껏 질책하고 욕한다. 이에 區分堂書記는 이런 사실을 인정하고 앞으로 중국인민정부가 공표한 婚姻法이 발효된 이후 누가 다시 이런 행위를 하면 법원에 가서 처벌을 받는다고 공식적으로 표명한다. 결혼식이 끝난후 모두들 이런 종류의 결혼이 훨씬 좋다고 여기고, 두사람은 반드시 행복한 결혼생활이 될거라고 말하면서 끝맺는다. <延安文藝講話>의 문학정신을 잘 구현한 이 소설은 어떤 한 농촌에서 한 쌍의 청춘남녀가 부모들의 봉건적 혼인관습에 대항하고, 자신들의 결혼을 방해하고 관료주의와 지주계급에 대한 술책에 맞서 싸우면서 연애 혼인의 자유를 성취한다는 내용의 플롯을 밟고 있다. 작자는 이 작품에서 단순히 혼인의 자유만을 찬양한 것이 아니라, 현명한 村區公所 간부 민사주임과 왕조리원이 당의 영도 하에서 이루어지는 봉건세력에 대한 농민대중의 승리를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작자는 아울러 이 작품을 통해 봉건적 혼인제도 즉 부모가 주주도가 되 중매를 통한 혼인만 인정해주는 당시의 농촌문화의 낙후성과 이로 인해 그렇게 변질되어 버린 농촌사회의 혼인제도의 실상을 폭로, 고발하고 있다.

 


그림 2. 소이흑의 결혼표지
 

1940~1950년대 당시 봉건이데올로기에 의해 조장된 남성중심주의 여성을 남성의 보조물이나 성적인 대상으로 인식함으로써 여성의 독립적인 인격을 철저히 부정했다. 신문화운동을 통하여 여성문제가 사회문제의 주요한 일부로서 간주됨에 따라 우선적으로 여성의 독립된 인격을 보장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 당시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여성의 권리를 가장 철저하고 심각하게 파괴하였던 것은 봉건적 혼인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여성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는 혼인문제에 있어서 전적으로 소외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오랫동안 악습으로 전해져온 매매혼과 조혼은 물론 부모의 독단에 의해 강제결혼으로 인해 비인간화를 강요하고 있었다. 당시 중국은 봉건적 혼인제도에 의한 여성의 비극적인 문명이었다. 이에 수많은 작가들은 혼인문제를 둘러싼 여성 억압적 현상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고 보다 중요하게는 당시 중국 여성들이 가장 절실하고 첨예하게 느끼고 있는 바로 봉건적 혼인제도였다. 이러한 봉건적 혼인제도는 결혼이 애정을 토대로 한 남녀의 자유로운 결합이라기보다는 후사를 잇고 가계를 계승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사회적 통념, 그리고 남녀 당사자의 자유의지보다는 부모나 집안의 이해관계를 우선하는 봉건적인 사고에 의해 유지되어 왔다.

신해혁명이후 <中華民國民律親屬編草案>에서는 결혼은 부모의 허락을 거쳐야 한다. 만약 繼母嫡母가 고의로 결합을 허락하지 않을 경우 자녀는 친족회의 동의를 얻어 결혼할 수 있다. 또한 당사자가 결혼을 원하지 않는데도 부모가 강요한다면 그 혼인은 무효이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이처럼 강제결혼에 대해 금지하고 당사자의 자유의지를 보호하고 있지만, 전통적인 중국의 구데이데올로기의 폐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신중국 수립 이후 중국의 여성은 종법제도의 억압과 남성중심적 권력으로부터 해방되어 평등을 지향하여 왔다. <중화인민공화국혼인법>은 남녀평등을 위한 투쟁의 성과물이자, 이후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법률 및 제도적 장치의 토대가 되었다. 그 내용을 보면 1950413일에 중앙인민정부위원회 제7차 회의에서 통과되어 195051일부터 공포 시행되었다. 1장 총칙, 2(결혼), 3(부부간의 권리와 의무), 4(부모자녀간의 관계), 5(이혼), 6(이혼후 자녀의 양육과 교육), 7(이혼 후의 재산과 생활), 8(부칙) 등 총8장 총27조로 되어 있다. 신중국수립이후 남녀평등의 법률적 보장 및 여성의 사회적 지위향상은 당시의 소설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조수리의 <결혼신고>에서 형상화하였듯이 남녀의 자유결혼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은 봉건이데올로기의 잔재이며 부모의 독단에 의해 강제결혼은 사회주의 중국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결혼을 둘러싼 해결과정에 공산당의 정책의 무오류성에 대한 찬양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이 소설은 당시 농민 대중의 큰 환영을 받았고, 현대소설의 발전에 대해서도 독특한 공헌을 하였다. <결혼신고>작품에 나타난 예술특징을 크게 3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소설의 안배에 있어 그 내용이 마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처음부터 소설에 등장하는 시간과 지점, 인물을 상세히 전달하려는 식의 완전한 문장 형식을 중시하였다. 농민을 배려한 것이고 또한 줄거리와의 연관되는 사건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배치하여 결말이 Happy Ending 으로 끝났다. 이것 또한 농민 대중의 기호에 맞게 하기 위함이었다. 둘째, 이 소설에서 조수리는 언어의 사용에 있어 구형식을 채용했다. 즉 농민들의 구어, 속어, 성어, 유머를 잘 사용하였다. 셋째, 이 작품에 등장하는 농민 계층의 인물 묘사가 가장 두드러진다. 이는 농촌의 노년층, 청년층, 그리고 낙후된 계층으로 구분하여 이들은 중국 각 농촌중의 서로 다른 출신, 경력, 지위 등의 배경인물로서 제각기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인물간의 대화나 행동을 통해 그들의 성격을 나타내고, 지방색의 토속어 및 유머러스한 해학을 통해 당시의 세태를 암암리에 풍자하고 있다. 결국 조수리는 자신의 창작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질 수 있느냐의 여부를 가장 중시했다. 그는 대중, 그 중에서도 특히 농민들에게 어떻게 하면 가장 쉽게 다가갈 수 있느냐를 염두에 두며 창작활동에 임했다. 구형식의 운용이 당시 독자들에게 가장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는 유용성을 판단하고 그것을 작품에 도입했으며, 농민들의 구두어 사용과 묘사의 생략 기법 또한 최대한 농민들의 정서에 밀착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보여진다. 그는 일반 사람들이 즐겨 듣고 읽을 수 있는 현대소설의 형식을 제시함으로써 중국 소설의 대중화와 현대화를 위한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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