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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엔도 슈사쿠(遠藤周作)의 소설 “침묵(沈默)”으로 본 일본 기독교의 역사(吉利支丹教の史, キリスト教の史)
분류문학
국가 일본
날짜2015-10-07
조회수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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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일본인들은 태어나면 신도(神道)종교의 신사(진자, 神社)의 우지가미(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에게 가고, 결혼식은 기독교(キリスト教) 교회에서 하며, 죽어서는 절(오테라,お寺)에 가서 성불(成佛)을 빈다는 다원적인 종교의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신앙 차원이라기보다는 생활 관습으로 종교를 받아들이는 미신(迷信)의 나라라는 인상이 강하다. 비록 현재 일본의 기독교 인구는 1% 내외에 불과하지만, 놀랍게도 일본은 깊은 기독교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일본인들에게 널리 사랑 받았던 소설가인 엔도 슈사쿠(遠藤周作)는 기독교(천주교)의 사상과 역사를 담은 여러 편의 소설을 발표하였는데, 그 중 “침묵(沈默)”이라는 소설을 통해 일본의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려고 한다.

그림 1. 엔도 슈사쿠의 침묵 (沈默) 한국어판(좌) 일본어판 (우)

소설 “침묵”의 배경

일본에 처음으로 기독교가 전파된 것은 유럽의 르네상스(Renaissance) 시대와 함께, 유럽인들의 대항해 시대(Age of Discovery or Exploration; 어떤 학자는 이 시기를 동서양이 만나는 대조우의 시대라고 명명했다)가 시작된 이후 예수회(Jesuit, Society of Jesus)선교사들에 의해서였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Francisco Xavier, 1506-1552)가 그의 동료들과 함께 1549년에 가고시마(鹿兒島,かごしま)에 상륙한 것을 기점으로 아리마(有馬)․아마쿠사(天草)․나가사키(長 崎) 등지의 규슈(九州) 지방과 혼슈(本州)의 최남단인 주고쿠(中国)지방, 관서(간사이, 関西)지방 등지에서 전도활동을 시작하고 일본문화의 중심지인 교토(京都)까지 영역을 확장하는 전기를 마련한다. 이는 일본 영주들이 금욕적이고 군사적 체계를 가진 예수회의 조직에 매료 되었기 때문에 영주를 중심으로 한 개종이 이루어 졌다. 그들은 1561년에 교토에 남반사(南蛮寺)라는 교회를 세웠다. 그리스도교의 세기는 포르투갈과 스페인, 그리고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온 유럽인들이 각각 무역거점을 확보하면서 상업과 무역, 종교에서 활동하면서 깊은 관계를 맺었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おだのぶなが)는 커지고 있었던 사원 세력을 억제하기 위해서 기독교를 적극 보호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とよとみ ひでよし)도 무역에 도움이 되는 선교사들에 대해 우호적이었다. 특별히 도요토미의 정치적 후원자였던 나가사키, 교토, 사카이의 상인들이 해외 진출을 원했기 때문에 기독교를 배척하지 않았다. 게다가 핵심 참모였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 行長; 그는 우리에게 임진왜란기에 이순신 장군과 노량해전에서 대결한 왜군의 장수로 이 전투에서 패하여 후퇴한 장수로 알려져 있다)와 같은 장수도 아우구스티노(Augustino)라는 세례명을 가진 기독교인이었다. 이시기에 기독교인구의 통계를 살펴보면 1549 년부터 1598 년까지 500,000 여명 1598 년부터 1614 년까지 152,900 여명 1614 년부터 1630 년까지 25,000 여명 총 677,900 여명이 기독교인이라고 알려져 있고 이 통계 중에는 유아 세례자 수는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기독교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1586년 5월 4일 도요토미는 임진왜란(壬辰倭亂) 조선(朝鮮)과 중국의 명(明)을 정벌하는데 포르투갈의 배를 빌려달라고 부관구장 가스빠르 꼬엘로(Gaspar Coelho, 1531-90)에게 요청한다. 이때 가스빠르는 그 제안을 거절했을 뿐 아니라 인도에 머물던 포르투갈 군인들을 일본에 요청할 수 있다고 말하며 도요토미를 불안하게 했다. 이에 도요토미는 기리시탄의 세력을 위협으로 느꼈고, 1587년 규슈 정벌을 마치고 하카다에서 도요토미는 20일 이내로 선교사들이 일본을 떠나라는추방령을 내렸다. 게다가 16세기 말, 마닐라에서 활동하던 스페인계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선교사들이 일본에 서 선교 활동을 하기 시작했으며, 그러던 와중 1596년 산 펠리페 사건(サンフェリペ号事件 (San Feripe gô jiken, 시코구의 토사 해안가에 스페인의 무역선 산 펠리페 호가 좌초된 사건)이 터졌다. 도요토미는 일본 법률에 따라 좌초한 배의 모든 교역 물자를 압수할 것을 명령했다. 이에 불응했던 산 펠리페 호의 선장은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스페인의 군사력에 의해 귀속된 세계 각국의 영토를 보여 주며 자신들의 무력을 과시했고, 모든 선교사들이 스페인의 정복을 위해 전 세계로 흩어져 자신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고 엄포했다. 이에 분노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7년 수사와 일본인 신자 등 26명을 나가사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니시사카 언덕에서 처형했다. 이것이 ‘26인 성인 사건’이다.


그림 2. 일본26성인 (日本二十六聖人) 그림(좌) 기념성당의 벽(우)

또한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 이후, 1612년 에도 막부 초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기리시탄 금지령이 공포하였다. 1614년에 에도막부는 기독교 선교 금교령(禁敎令)을 선포한다. 이와 같이 일본에서는 메이지(明治) 정부가 기독교 선교 금지를 폐지한 1873년까지 320년간 동안 기독교에 대한 탄압 정책이 계속되었고 수많은 기독교 인들이 순교를 당했다.

 

엔도 슈사쿠(遠藤周作)의 소설 “침묵(沈默)”

위에 서술한 것과 같은 기독교 박해의 시대를 배경으로 엔도 슈사쿠의 침묵은 그려졌다. 

 “주교였던 페라이리 신부가 배교(背教)했다.”
‘침묵’은 이렇게 시작한다.  일본에서 주교(主教)라는 중요한 위치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성직자 페레이라 신부가 배교(背教)는 놀라운 소식이었다. 은혜로운 선교 보고서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그가 배교했다는 소식은 그를 따르던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뜨렸고 그의 제자 로드리고 신부도 그 중 하나였다. 그는 그 소식을 믿을 수 없어 직접 일본으로 가기로 결심한다.

 일본에 도착한 로드리고 신부는 기독교가 박해 받던 잡히지 않기 위해 작은 숯 창고에서 숨어 지내며 비밀 조직을 꾸려 세례를 주고 포교 활동을 한다. 하지만 결국 누군가의 밀고에 의해 로드리고 신부는 체포 당한다. 그리고 눈 앞에서 죽어가는 동료와 신도들을 지켜보며, "네가 배교를 하지 않으면 일본인 교인들이 하나 둘 고문 당하고 죽어갈 것"이라는 협박과 회유를 당하며 고뇌한다.   그 자신이 배교하지 않으면, 무고한 신도들이 ’아나츠리 (穴吊り, 구멍에 매다는 형벌)’라고 하는 귀 뒤에 작은 구멍을 뚫어 구덩이에 거꾸로 매달아 죽게 하는 고문으로 한 명씩 죽어 가는 것을 눈앞에서 보아야 하는 극단적인 정신적 고문을 당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선택에 기로에 설 수 밖에 없었다. 순교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따르던 신실한 이들을 살리기 위해 배교할 것인가?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희생한 예수, 자신이 믿고 따르는 예수를 위해 당당히 순교하는 것이나, 십자가에 못 박혀서 매달린 예수나 성모 마리아가 새겨진 목제 또는 금속 성화상을 밟고 지나가는 후미에(일본어: 踏み絵)로 자신의 신앙을 부인하는 것이나 둘 모두 가슴이 찟기는 아픔의 경험이다. 바로 그때 그는 후미에가 실행되는 나무판 성화(聖畵)에서 잔잔한 울림이 있는 호소를 듣게된다.  “밟아도 좋다.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나는 존재한다”




그림 3 후미에(踏み絵) (좌) / 아나츠리(穴吊り) 형벌(우)

그는 결국 “지금 그리스도가 살아계셨다면 지금 자기의 얼굴 그림을 밟고 배교했을 것이다”라는 판단으로 다음과 같은 기도를 한다.

주여, 오랫동안 저는 헤일 수 없을 만큼 당신의 얼굴을 생각했습니다. 특히 이 나라에 온 후로 몇 십 번, 저는 그렇게 했는지 모릅니다. 도모기 산속에 숨어있었을 때, 바다를 작은 배로 건널 때, 산속을 헤맬 때, 저 옥사에서의 밤. 당신의 기도하는 얼굴을 기도드릴 때마다 생각하고, 당신이 축복하고 있는 얼굴을 고독할 때 떠올리고, 당신이 십자가를 지신 때의 얼굴을 붙잡힌 날에 되새기고, 그리고 그 얼굴은 저의 영혼 속에 깊이 새겨져,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가장 고귀한 것이 되어 저의 마음속에 살아 있습니다. 그것을 이제 저는 이 발로 밟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결국 후미에를 실행하면서 배교를 한다. 로드리고 신부는 발을 올렸다. 발에 둔중한 아픔을 느꼈다. 그것은 형식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 생애의 목적이자 이상이었고, 삶이 었다. 그는 자신의 믿음을 위해 이역만리 일본에까지 와서 자신이 믿는 예수를 전했다. 그는 그의 모든 것을 부인하는 행위인 후미에를 실행한다. 기독교의 상징을 아로새긴 목판을 밟고 지나 갈 때의 아픔은 아픔이 아니라 슬픔이고 절망이었며 자기 부인이었다. 하지만 목판 속의 하나님은 신부를 향해 말했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은 바로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들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나, 너희들의 아픔을 나누어 갖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졌다”라고 말이다. 

나가며
 교회의 법률과 전통을 생각하면, 성화(聖畵)가 있는 나무판을 밟는 후미에는 배교(背敎)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작가는 법률이나 전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삶과 고통의 문제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래서 종교적 불명예에도 불구하고 후미에를 실행한 신부들의 행위도 그리스도의 삶에 대한 통찰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숭고한 자기희생의 또 다른 모습이고 다른 의미의 순교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작가는 신앙을 지키다 죽어간 사람에 대한 존경과 경의를 표하지만, 고문 속에서 결국 배교를 한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않는다. 오히려 연민을 표현하면서 종교적 형식주의를 고발하고 진정한 기독교의 정신을 일깨워 준다.  그래서 엔도 슈사쿠(遠藤周作)의 소설 “침묵(沈默)”은 이런 관점에서 종교를 떠나 형식주의나 체면문화에 익숙한 우리에게 울림을 주고 문학과 인간의 삶에 대해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준다. 형식주의와 체면 이라는 이름으로 가면을 쓰고 살아갈 것을 강요 받는 사람들에게 “침묵”의 한 구절로 위로하고 싶다. “인간은 이리도 슬픈데, 주여 바다는 푸릅니다” (人間がこんなに哀しいのに, 主よ海があまりに碧い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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